게임이론으로 본 북한의 '핵(核) 도박'
바둑에서 아무리 악수(惡手)를 많이 두어도 상대가 더 많은 악수를 두면 승리는 '내 것'이 된다. 반대로 뛰어난 전략을 쓸지라도 상대가 이를 능가하는 전략으로 맞선다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패배' 뿐일 것이다.
똑같은 이치로 북한이 지난 94년에 이어 또 다시 '핵(核) 도박의 승자'가 된다면 김정일이 상대적으로 더 잘했거나 아니면 그 상대인 한국과 미국이 김정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간 북한에 강온(强穩)전략을 구사하기보다는 미국이 강수(强手)를 쓸 듯한 기미가 보이면 그때마다 생뚱맞은 소리를 해가며 미국의 팔뚝을 잡아당기기에 바빴다.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3월9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증언한 내용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사정(射程)거리 안에 두는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대포동 3호'의 3단식 고형 연료실험에 성공했음은 ① 액체연료에 비해 이동이 쉽고 ② 명중 정밀도가 높으며 ③ 최대 5발까지 연속발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격한 진보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리 근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이 뉴욕에서 북한 위폐(僞幣)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접촉을 가졌던 일자(3/7)에 맞춰 단행됐다는 점은 북한의 음험함과 숨겨진 의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문제의 발단은 '수령 결사옹위(擁衛)체제'를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주민 수백만이 굶어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북한 김정일을 상대로 미국이 승패가 이미 결정되어있는 것이나 진 배 없는 제로섬게임을 벌인 데에 도사리고 있었다.
1991년 8월 소비에트연방(聯邦)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북한체제 역시 이내 멸망할 것으로 믿었었다. 그런 미국에게 북한의 핵 위협은 그야말로 '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결국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해법(解法)을 찾지 못한 채 지난 15년 세월을 허송했다.
남한(南韓) 입장은 또 어떤가. 우리는 당초부터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되뇌며 미국에 투정을 부렸을 뿐, 북한을 상대로 '핵 개발' 명분을 따지거나 북핵(北核)저지에 나선 적이 없었다. 북핵 관련 우리 상대는 어이없게도 북한이 아닌 미국이었고, 우리의 지속적인 구호는 반북(反北)이 아닌 '반미(反美)'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초(超)강수를 동원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 핵(核)카드의 핵심을 바로 치고 들어가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가 한쪽 손발을 묶어둔 채 세월을 허송하면서 김정일의 패배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상급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세월 원칙 없는 유화(宥和)정책을 내세우면서 김정일의 배포만 키웠다. 북핵 관련 스코어는 현재 한국이 아닌,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저들은 '전쟁 위협만 하면 우리가 꼼짝 못한다'는 약점을 이미 오래 전에 간파했다.
게임의 승패는 이처럼 '전략적 상호작용' 결과에 따라 판가름난다. 그것이 게임이론의 실체이다.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온(强穩)- 양 수단이 적시에 적절한 강도로 동원되어야 하는데도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강수(强手) 대신 '북한 비위 맞추기' '북한 감싸기' '북한 대변인 노릇하기'만이 있었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면 북한에 할 말을 해야 하는데도 '강경한 대응'은 '반(反)민주' '반(反)민족' '반(反)통일'로 매도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미국을 상대로 '북한 달래기' 협상을 해왔고, 결과적으로 미국을 말리는 일에만 열중했다.
'중심고리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북한용어사전은 이를 "혁명발전단계마다 제기되는 수많은 연쇄적 과업 중에서 어느 한 과업이 해결되면 다른 모든 과업이 잇달아 해결되는 핵심고리를 찾아내어 거기에 공격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의 김정일의 대미(對美)·대남(對南)정책 중심고리가 '핵(核)무장'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북한은 핵무장으로 국력의 열세(劣勢)를 일거에 만회한 후 이를 지렛대로 대미 담판을 벌여 '수령(首領)체제 결사옹위와 경제회복'-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계산법을 염두에 두고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이 대북정책의 중심고리로 삼아야 할 곳은 어디인가. 정책수단을 집중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자면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을 느낄 '결정적인 급소(急所)' 이거나 '치유 불가능한 아킬레스건(腱)'이라야 한다. 달리 말해 김정일이 전력투구하고있는 부문을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야말로 김정일 정권의 아킬레스건(腱)을 직접 겨냥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지난 15년간을 한 텀(term)으로 한 '게임 이론'(核 도박)은 북한 페이스대로 움직였을는지 모르나 내일의 포커(poker)는 분명 미국의 손에 들려있다.
미국이 '북핵(北核)의 해결'에 앞서 북한인권문제·북한의 위폐(僞幣)제조와 거래·북한의 ·마약재배 및 수출 등을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한 불법비리 바로잡기 차원에서 뒤늦게나마 적극적으로 '방어적 조치(defensive measures)' 강구에 나섰음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이 김정일 정권유지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을 북한에 강력하게 인식시켜주고, 한미동맹의 강력한 억지력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간 한미공조의 엇박자로 인해 소중한 세월을 허송해왔음은 더 넚이 부끄러운 일이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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