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訪韓…'열린 민족주의' 논의 계기로
하인즈 워드가 몰고 온 열풍(熱風)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는 혼혈(混血) 또는 순혈(純血)의 문제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민족주의·국적(國籍)주의의 본격적인 담론(談論) 필요성을 던져주고 있다.
한 일간지는 작년 10월 광복 60년을 맞아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한 <한국에서도 '혈연 민족주의'가 아닌, '국적(國籍) 민족주의'가 뜨고 있다>는 내용의 결과물을 내놓았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현실로 만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식 '열린 민족주의'는 우리의 그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또 우리는 앞으로도 순혈(純血)주의식 '닫힌 민족주의'를 고집해야 할 것인가를 자문자답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민족국가'의 표상이 되어있다면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식자들은 "민족주의의 본령(本領)조차 모르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다양한 인종'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실은 이런 우려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햄버거 가게나 가정집 문 앞에 연중 성조기(星條旗)가 펄럭이고, 공립학교에서는 매일 교칙에도 언급이 없는 '충성맹세'(Pledge of Allegiance)가 행해진다. 미국에서는 이렇듯 성조기가 미국인들의 일상(日常) 속으로 들어와 있다. 미국을 처음 방문한 이들이 겪는 낯선 풍경은 이것만이 아니다.
운동장에서는 게임 전(前) 거의 예외 없이 국가(國歌)가 울려 퍼진다. 각종 선거유세에서는 입후보자가 상대후보로부터 '비(非)애국적'이라는 이유로 공격받기도 한다. 국민개병(皆兵)제가 아닌데도 병역문제가 자주 선거쟁점으로 떠오른다. '민족주의 강도(强度)'가 우리보다 '한 수 위' 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총인구는 약 2억8천만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점하는 인종이 게르만족(6천∼7천만명)과 앵글로색슨족(5천수백만명)이다. 이 두 인종을 합쳐도 50%에 미치지 못한다. 프랑스계와 동(東)유럽계까지 모두 합쳐야 과반(過半)을 넘어설 것이다. 1억7∼8천만 명을 헤아리는 백인 인구에 1억 이상의 황인종·흑인종·라틴아메리카족(族)을 더한 '다(多)인종의 나라'가 미국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 또는 '민족주의'라 함은 같은 피(血緣)를 전제로 한 개념이지만,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같은 과거(common past)' 보유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통의 미래'(common future) 지향에 그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은 동족(同族)·동류(同類)의식 등 혈연(血緣) 중시의 '순혈(純血)주의'에서 민족주의의 근원을 찾고있지만, 미국은 과거가 비록 다를지라도 '미래를 함께 할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민족주의 의식을 응집시켜 나가고있다.
학문적으로는 민족주의 구성요인으로 관습 습관 사상 문화 전통 역사 언어 등에 이어 마지막(8번째)으로 '혈연'(피)을 들고있다.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과거와 혈연'에 집착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미국은 '미래의 가치 공유(共有)'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이 민족주의의 근거를 우리나라에서처럼 '피'에서 찾는다면 미국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 국가가 되어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새로 익히고 터득해야 할 대목이다. 미국의 '민족주의 중시'는 도처에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50년 지나 그 가족들마저 다 사망한 상황에서도 수십 년 전의 북한지역 전쟁터를 누비며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국 병사들의 뼈를 찾아내고 의례(儀禮)를 갖추어 장례식을 치뤄주는데 소홀함이 없는 그들이다. '미래의 공유'에 바탕을 둔 이 같은 '민족주의 확대·재생산' 의식이야말로 '오늘의 미국'을 떠받치고있는 힘일 것이다.
미국 민족주의 색깔은 전문적인 안목으로도 '식별'이 쉽지 않다. 전형적인 민족주의 패턴과는 흡사한 양상을 띄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여타 민족주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성을 읽을 수 있다.
4년 전(2002년) 부시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메시지에서 "미국 인종이라는 것은 없다. 미국 신조(american creed)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미국이 중시하는 민족주의 의식의 원천은 이 같은 '정치적 사고(思考)의 동질성(同質性)이다.
'미국 신조(信條)'라 함은 미국의 민주주의 이념과 자유 및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다. 미국 민족주의는 '개인적(個人的)이고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국가 차원에서 강요하는 민족주의'가 결코 아니다. 미국 스스로도 과거 민족주의가 걸어온 문화적·인종적 해악(害惡)을 벗어던지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최신예 병기 보유'에서 미국을 능가할 나라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미국에사는 독립기념일로 정부가 주관하는 '대규모 군사(軍事)퍼레이드'를 찾아볼 수가 없다. 불꽃놀이 행사비용마저도 이 행사를 공동기획한 시민단체들의 몫이다. 권위 지향적인 모습들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민족주의가 '승리하는 민족주의' 기록이라는 것도 미국만의 장점이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반복해서 대중들에게 학습하며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 사회를 구축한 이슬람 민족주의·이집트 민족주의처럼 '고통받는 민족주의' '패배의식이 주축을 이루는 민족주의'가 아니다.
'우리민족끼리'의 실체(實體) 역시 패배의식에서 출발한 '김일성 민족주의'가 그 교과서이다. 분명한 사실은 민족주의 태동단계에서 이런 패배의식을 강조하는 나라일수록 여전히 가난과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명 '승리의 역사로 점철된 '민족주의'도 있다. 건국 과정에서 쟁취한 승리를 바탕으로 한 '긍정적 사고방식'이 주축이 된 민족주의는 민족적 패배감을 이어받아 성장해온 '고통받는 민족주의'와 그 토양이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역시 미국 민족주의처럼 '보다 나은 미래(better future)를 지향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자국(自國) 제도의 우월성을 확신하면서도 과거의 역사적 영광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외부인들과 그들의 생각을 나누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생각을 외부에 전파하는 외연적(外延的) 행동에 더 익숙해있다.
이런 도도한 민족주의로 인해 미국은 지구촌의 다른 민족주의와 적지 않은 분쟁과 마찰을 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쟁일 것이다. 교토 국제기후조약·국제사법재판·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등에서도 미국은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의 위선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이런 위선(僞善)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 초일류 국가를 건설한 미국의 민족주의 경험을 본받아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승리하는 민족주의 △미래 지향적 사고를 배우고 익혀 세계 초일류 국가로 가는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계로 향한 문(門)을 닫아걸고 반미(反美)를 외치는 것은 '세계화'의 빗장을 걸어잠그고 등지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수백만 명을 굶어 죽이면서도 '수령(首領)체제 구축'에만 몰두하며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로 포장하고있는 북한의 위선적(僞善的)인 '김일성 민족주의'를 따라하지 못해 안달할 필요는 없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해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를 굴종과 오욕의 역사로 인식하고서 비통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제까지 살아온 '승리하는 역사' 이상으로 '상승(常勝)하는 민족주의'를 기록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韓)민족 민족주의'가 아닌, '대한민국 민족주의'로, 순혈(純血)이 아닌 '정치공동체의 이념적 정체성(正體性)'을 기준으로 삼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상을 유감없이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워드 방한(訪韓)이 가져다준 선물은 바로 이것이다. (konas)
정 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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