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는 대한민국의 영웅인가?
右翼단체들이 白凡기념관에 걸린 金日成 사진 철거를 요구하자, 서울신문 명예논설위원 홍원식 교수가 비난에 나섰습니다.
홍 교수는 6·25의 책임을 金日成이 아닌 일본, 미국, 러시아에 돌리면서, 白凡은 외세(外勢)에 의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막으려 했던 영웅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金日成과 白凡이 남북연석회의에서 합의한 미군철수를 내용으로 한 공동선언문에 대한 칭송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金日成 사진철거를 주장하는 右翼들을 ‘도착(倒錯)적’이라고 매도했습니다.
별 것 아닌 이 칼럼에는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否定)이 녹아있습니다. 홍 교수가 말하듯 6·25, 동족상잔의 비극은 일본, 미국, 러시아 같은 외세가 아닌 金日成입니다. 金日成의 무력적화(武力赤化) 음모에 속아 남북연석회의에서 미군철수 공동선언문을 만들어 낸 白凡의 행동은 一生에 걸친 영웅적(英雄的) 항일투쟁에 먹칠을 한 ‘옥의 티’였습니다.
홍 교수가 자신의 주장의 논거로 ‘신창균’이라는 인물을 든 것도 어이없는 일입니다. 몇 해 전 사망한 신창균은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남측본부 의장으로서 일생을 대한민국 파괴(破壞)에 몸 바친 者입니다.
홍 교수는 또 白凡이 참석한 남북연석회의를 白凡이 제안한 애국애족의 마지막 안간힘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사실(史實)이 아닙니다.
흔히 좌파적 사가(史家)들은 이승만 박사는 1946년 6월‘정읍 단독정부 수립발언’으로 민족분열을 기도했다고 비판하면서, 白凡은 1948년 4월 평양의 ‘남북諸정당연석회의’에 참석하는 등 민족통합을 시도했다고 칭송해왔습니다. 이 같은 시각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나타나듯 “대한민국 역대 정권은 분열세력”이라는 편향된 역사관을 확산시켜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 白凡의 평양행은 金日成의 첩자인 성시백이라는 인물의 공작으로 이뤄졌습니다. 성시백은 해방공간에서 1948년 김구, 김규식 등 임정요인들을 포섭해 남북諸정당연석회의에 참석케 했을 뿐 아니라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의 배후인물로 암약하다 1950년 6월27일 남한당국에 의해 처형됐던 인물입니다.
북한은 성시백의 김구 포섭은 물론 국회프락치사건의 실체를 부정해왔지만, 1997년 5월26일자 북한 ‘로동신문’과 2002년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인 통일여명 편집국 특집보도(181호)에서 이를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민족의 영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열사’라는 제하의 로동신문 2면 톱기사에 실린 성시백의 김구 포섭 관련부분을 일부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 관계로 하여 성시백 동지는 김구선생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 생각에는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위해 한 생을 바쳐 오시는 분인데 金日成 장군님을 직접 만나 뵈옵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북에서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자주역량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대표자들의 련석회의를 개최할 데 대한 제의를 내었는데 이 거사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입니다.>>
김구선생은 그의 이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네 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하나도 없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무조건 경원시하며 적으로 규정한 이 김구를 북의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반가와 할 리야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시백 동지는
<<바로 그것이 선생님의 고충이시겠는데 오늘 나라가 영영 둘로 갈라지느냐 아니면 통일이 되느냐 하는 시국에서 지나간 일을 두고 중상 시비할 것이 있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선생님이 결단을 내리시어 북행을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미국사람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리승만과 손을 잡겠습니까? 아니면 북에 들어가서 金日成장군과 마주 앉겠습니까>>
<<음 그러니 군은 金日成장군을 신봉하고 있군, 알겠네. 네 알아서 용단을 내리겠네>>
...중략...
<<우리 민족의 태양이시니 金日成장군님께서 白凡선생에게 보내시는 남북련석회의 초청장입니다>>
이 순간 과묵하고 고집스럽던 김구 선생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졌다.
<<金日成 장군께서 그처럼 믿어주실 줄은 내 미처 몰랐습니다. 장군님께서 불러주시었으니 기어이 평양으로 가겠습니다. 내 이후로는 다시 일구이언하는 그런 추물이 되지 않겠습니다>>
...중략...
성시백 동지는 4월 남북련석회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극단한 반공분자로 있던 김구 선생을 돌려세우는 사업에도 큰 힘을 넣었다.”
金日成은 성시백에 대해 1992년 12월에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성시백의 활동이 컸다고 하면서 아래와 같이 교시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회고록을 쓸 때 해방 후 남북련석회의 대목에 성시백의 활동내용을 적어 넣으려고 합니다...성시백 동무는 나를 위해, 자기 당과 자기 수령을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잘 싸운 충신입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충실한 사람은 없습니다...성시백을 남조선전체를 쥐고 흔들었는데 박헌영의 패가 밀고하였습니다.”
북한의 과장된 표현이 엿보이지만 성시백이 白凡을 포섭해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이끌었으며, 성시백이 金日成이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남한 측 사료(송남헌 해방3년사 등)에서도 확인되는 사실(史實)입니다.
원광대 이주천 교수(사학)의 해석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좌파 사학자들은 김구의 평양행으로 일편단심의 애국충정이나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남북협상통일의 물꼬를 트는 효시로 높이 평가해왔다. 6·15공동선언 이후 평양을 들락날락 하는 인물들은 김구의 행적을 통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左편향 무드를 타고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우익의 진정한 지도자로 재해석되고 있는 세태는 문제가 있다.”
白凡은 항일(抗日)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영웅이 될 순 없습니다. 적어도 남북교류라는 미명 아래 국가해체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白凡의 ‘남북연석회의’는 反逆의 본보기일 뿐 愛國의 선례가 될 순 없습니다.
김성욱(미래한국신문 기자)/출처:프리존(http://www.freezone.co.kr)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