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을 생각할 때
-남주홍 교수의 '통일은 없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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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교안보문제 전문가인 경기대의 남주홍 교수(국제정치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 역임)가 『통일은 없다』는 저서를 펴냈다. 이 책은 남 교수가 지난 5년간 500여회에 걸친 특별강연에서 한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대충 훑어보니 전략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간명하고 명쾌한 논리로써 북핵의 국제정치를 비롯한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안보적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는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통일은, 남북한이 단순히 분단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복고적 개념이 아니다. 2개의 정치실체가 공간적으로 하나 되는 영토적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통일은 미래의 시간 속에서 21세기 탈민족, 탈국경, 탈주권의 ․세계화 흐름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은 민족성원의 자유와 번영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부당하고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통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러면 대한민국 헌법 제4조가 명시하듯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국민의 헌법적 결단이며, 세계사적 조류와도 합치된다. ‘어떤 통일도 선’이라는 감상적 통일론은 곤란하다.
현재 남북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서로 상극적 이념과 체제를 견지하면서,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을 지속하고 있다. 통일을 이룩하려면 상호간에 체제가치의 동질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러한 기본조건이 성숙돼 있지 못하다. 따라서 먼저 북한을 자유민주주의로, 곧 개혁-개방, 인권 개선과 체제 민주화로 유도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목표와 방향은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외형적인 남북화해-협력은 그 자체 목표가 아니며, 북한의 ‘변화’를 이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체제 생존을 위해 전술적인 변화를 보일 뿐, 본질적인 체제개혁과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반면 핵무장을 시도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또 군사병영체제 구축과 극심한 인권탄압을 통해 2천3백만 주민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낮은 단계 연방 구성 등 ‘6.15방식’에 의해 ‘빠른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만일 무리하게 통일을 시도하다간 예멘처럼 내전을 촉발할 수도 있다. 평소 필자는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은 대북관과 통일관을 갖고 있었다. 이는 비단 필자 개인만의 것은 아니며, 건전한 우파 지식인들이 대부분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남주홍 교수의 책은 바로 이 같은 우파의 통일철학을 안보적 관점에서 잘 담아내고 있다. 그의 통일론은 적대적 분단의 현실에서 ‘북핵문제 해결이 없이는’ 또 북한의 ‘근본적인 체제변화가 없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스탈린식 전체주의체제요 최악의 인권유린국인 현재의 북한과 통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 변화의 지표는 수령제 포기, 정치적 다원주의 채택, 시장경제체제 정착, 적법절차 보장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저자는 다른 무엇보다 ‘군사안보적 신뢰’ 구축과 검증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 교수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 북한의 핵무장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구조와 북한체제의 미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고 본다. 당면한 북핵 위기는 본질상 김정일식 선군정치의 산물로 이해한다. 김정일의 북한은 핵무장을 체제 수호, 경제회생, 외교현안 해결, 한반도 통일을 일거에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이 140여 차례 고폭실험을 해온 사실과 여러 경로의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이미 북한은 핵폭발장치를 경량화 형태로 완성했거나 적어도 완성이 임박한 것으로 추정한다. 기술적 측면의 핵무장은 끝났다는 말이다.
아울러 북한은 고체연료를 사용해 정확도와 기동성이 뛰어난 단거리 미사일로 무장하고, 야전에 작전배치를 완료하여 우리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는게 저자의 관측이다. 그래서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로도 방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미사일수출 규제를 위한 MTCR체제 등 국제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가운데 미사일 확산을 추진해 왔다고 한다.
남 교수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 등 한반도 위기 관리를 위한 올바른 해법을 찾으려면 북한의 협상전략을 꿰뚫고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공(主攻)의 방향을 설정해 놓고 다양한 협상카드를 개발해 기습제안을 하고 이를 반복하는 등 기정사실화 공세를 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명적 투쟁의 정신으로 외교협상에 임하되, 공갈, 협박, 조작 등 모순 수단을 다 동원한다. 협상에 승리하기 위해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때로는 이율배반적 협상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 같은 협상의 원칙과 전술은 북한지도부의 정세인식 변화와는 별도로 아직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현단계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적극적 활용과 한반도 평화외교가 절실하다. 그러나 이 점과 관련해 저자는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 외교에 우려를 표명한다. 특히 자주국방론과 평화체제론의 문제점을 따지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를 추진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의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금 교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의 성패는 상호교화 과정의 의사소통력, 정책의 신뢰성과 집행능력에 달려 있다고 남 교수는 말한다. 저자는 한․미공조를 기초로 중국의 중재자 역할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점차 다자회담의 동력이 꺼져가는 사실에 유념할 것을 촉구한다.
남 교수는 한반도 긴장의 원인인 북핵문제를 풀고 평화를 일궈내려면 ‘강온양면전략’을 구사하되, 원칙을 견지하면서 ‘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분단의 평화적 관리 정책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 내 급변사태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급변 가능성까지 고려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 안보의 건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협력-지원 위주의 ‘햇볕’ 논리, 안보 불감증과 통일지상주의가 가득한 작금의 실정에서, 『통일은 없다』는 한국의 안보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냉철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앞으로 노무현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남 교수의 뼈 있는 경고와 충고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을 포퓰리즘으로 현혹하지 말고, 부디 올바른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출처:프리존)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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