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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인권'의 양극화

정부여당, 남북 인권 양극화의 실상을 호소할 생각은 없는가

Written by. 곽대중   입력 : 2006-04-17 오전 11: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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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공개처형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원 출신 탈북자 안명철 씨. <사진 = 2005년 5월 20일 일본 N-TV 방송>
 최근 들어 양극화(兩極化)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사용되는 것 같다. 이른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에 벌어진 큰 격차를 두고 양극화를 말한다.

 그러나 당면한 미래에 미칠 영향의 크기에 비추어 보자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양극화는 ‘남과 북의 차이’에 있다. 이는 간단히 ‘큰’ 격차가 아니라 그야말로 ‘극단적인’ 격차다. 북위 38도선에 있는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나라의 부문별 격차는 적게는 20년에서 많게는 100여 년 이상 차이가 난다.

 흔히 그것을 경제적 차이에 두고 이야기한다. 남북의 ‘경제적 양극화’가 심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권의 양극화’다. 경제력의 수준이 20~30년 차이가 난다고 한들, 어쩌면 그것은 단 몇 년 만에 간극을 메울 수도 있다. 쌀밥 먹는 사람이 잘 살게 된다고 금(金)밥 먹게 되는 것이 아니듯, 기본적 생활욕구가 충족된다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핸드폰을 구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과 ‘어떻게 하면 라디오 하나를 장만해볼까’를 고민하는 사람의 행복도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참으로 안타까운 차이는 남북 주민들이 현재 어떠한 인간적 처지에 놓여있는가를 들여다보면 쉽게 드러난다. 국경의 남쪽에서 가족 시청 시간대에 잔혹한 장면이 TV에 여과 없이 방영되었다고 들썩이고 있을 때, 국경의 북쪽에서는 온 몸에 총알 9발을 맞고 사체가 갈기갈기 찢기는 공개처형의 장면을 온 가족이 함께 보아야 한다. 국경의 남쪽에서는 특수 임무에 종사하는 국가공무원을 채용하면서 신장이나 연령에 제한을 둔 것이 차별이라고 눈을 부릅뜰 때, 국경의 북쪽에서는 전 주민을 핵심 ∙ 동요 ∙ 적대의 3대 계층으로 나누고, 그것도 부족해 51개 부류로 나누어 그야말로 ‘왕후장상의 씨’를 구분하는 봉건적 성분제도가 당연한 듯 운영되고 있다. 그 체제가 스스로를 ‘평등사회’라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어디 그 뿐인가. 국경의 남쪽에서는 ‘재소자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교도관의 성추행 사건이 연일 대서특필 되고 있을 때, 국경의 북쪽에서는 하루 18시간 동안 고정 자세로 앉아 엉덩이가 썩어 문드러지고, 하루에 옥수수밥 한 그릇조차 제대로 주지 않아 수인(囚人)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쓰러져 시체로 실려나가는 죽음의 구류장이 있다. 국경의 남쪽에서는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가 진보의 표상이 되는 때, 17~18세의 나이에 군복을 입고 휴가 한 번 없이 10여 년을 보내야 하는 국경 북쪽의 청소년들이 있다.

 남한의 인권시계가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배부른 소리 좀 그만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이렇게 가슴 아픈 ‘남북 인권 양극화’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북의 그것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 말고도 숱한 인권 양극화의 사례가 있다.

 어떤 사람은 ‘생존’이 우선이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다 보면 그 내부가 스스로 변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굳이 이 말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신의 지원이 인민을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원하든 원치 않든 인민을 비극의 수렁에 빠뜨린 독재자의 생명까지 살려주고 있다”는 말은 꼭 해주고 싶다. 그래서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다소 무책임한 생각이 북녘 주민들의 고통의 시간을 하루 또 하루 연장시켜주고 있다.

 경제적 지원도 좋지만, 물밑 오리의 발처럼 쉼 없이 북녘 체제와 정권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전자에 쏟는 노력이 70%라면 후자에 최소한 30%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남한 정부의 사람들은 후자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70:30이 아니라 99:1 정도의 사고방식이고, 북한의 인권을 이야기하면 무언가 큰 일이라도 날 듯 팔짝 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지원’이라는 초심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지원을 위한 지원’의 덫에 빠져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만 총력을 기울인다. 회사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나왔는데, 자기가 왜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 이유를 잊은 채 열심히 제자리를 뱅뱅 돌며 페달만 굴리고 있는 격이다. 다만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앞서 언급하였듯, 남북 경제의 차이는 기본적 생존을 지원해주는 정도이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는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그들이 겪는 불행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찾아가 어린 학생들 앞에서 양극화를 선동하고 있을 시간에 남북 인권 양극화의 실상을 호소할 생각은 없는 것인지, 그들의 ‘평등한’ 사고력에 호소하고 싶다. (출처:뉴라이트닷컴)

 곽대중 (DailyNK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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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따라   

    힘없는 쪽이 무너지고 고개 숙이게 되어 있다. 모든것은 양면성이 있다. 어느쪽이 우세 하냐에 따라 우세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어짜피 통일이 되어도 2세대정도는 지나가야 어느정도 남,북이 융화가될것이다. 너무 양극화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4-19 오전 10:21:57
    찬성0반대0
  • 삘리리   

    북한을 퍼주기 보다는 농사짓는법,나무심는법,고기 잡는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너무 못사는 북한동포들 무엇이든지 부족하기만한 북한 금강산을 가면서 밖에 펼쳐진 전경을 봐도 못사는것이 눈에 보인다. 통일되면 양극화는 더심해질것이다. 동포들을 한국수준으로 올리려면 긴 날들이 필요하다. 서대지 말자.</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

    2006-04-18 오전 11:13:18
    찬성0반대0
  • pakiwj3697    수정

    남북한은 모든분야에 양극화되어 있다고 할수있다. 상기내용은 일부분적인 양극화를 예를들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설마 북에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라는 반심반의하거나 북한체제를 미경험한자들의 핑크빛 환상에서 나온 작은 목소리에 현혹된 무리들의 언행이라 생각하면 서글프기만하다. 좌파정부가 낳은 잘못된 사회현상을 하루빨리 원위치시켜놓아야 그러한 환상에서 벗어 날수 있을텐데 아쉽기만하다.</title><style>.ar

    2006-04-17 오후 4:17:33
    찬성0반대0
  • 대중아 정신차려!    수정

    곽대중이 이거.. 믿어도 되는 넘이야? 이랬다 저랬다 하더라구..</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4-17 오후 4: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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