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문제는 본질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최근 납북자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납북’ 용어 사용에 따른 북한의 보도 제한, 피랍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사망)의 남편 김영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신원확인 발표 등. 한국 정부도 예전과는 달리 보다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 달 ‘창조적 발상’을 언급한 데 이어, 11일과 14일 국회 답변에서 비용(경제적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8차 남북장관급회담 결과 24일 채택된 공동보도문을 보면, 우리 정부가 납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음이 일부 반영돼 있다. 전쟁 시기 및 전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으로는 납북자문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겠다.이종석 장관이 언급한 대규모 지원을 통한 납북자 송환도 불가능하며, 창조적 발상이라는 것은 창조적인 게 아니라, 자기모순적인 것이라는 점만 재확인한 셈이 됐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이종석 장관 아니 정부의 접근태도도 그러하고 남북공동보도문도 그러한데, 지금까지의 납북자문제 접근에는 ‘납북’의 본질이 간과돼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납북자들은 자기 의사에 반해 끌려간 사람으로 북한정권이 일으킨 납치테러의 산물이다. 이들은 지금 사지에서 원치 않는 강제억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불법은 즉각 중단되고 당사자들은 원상회복(송환)돼야 한다. 따라서 납북은 자국민 보호와 범죄행위 시정 차원에서 다뤄야 마땅하다.또 '납북'이란 개념이 성립되고 전제될 때 우리가 '송환'이라는 조치를 북한측에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북한이 납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간 북한은 납북자는 단 한 명도 없고, 의거입북자만이 있다고 강변해 왔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피랍 당사자를 상대로 ‘납북’ 사실 여부를 가려내는 일이다. 조사는 외압이 없는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자유의사와 희망을 고려한 사후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조사결과 납치행위가 있었음이 판명될 경우, 정부는 납북자의 무조건 송환은 물론, 책임 있는 북한 당국자의 사과, 납치범의 처벌, 재발방지 보장을 얻어내야 한다. 이 경우 사회간접시설(SOC) 건설 등 대규모 지원(이는 중대한 범죄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을 통한 송환 추진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북한이 우리 국민을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납치할 경우 계속 보상을 하면서 데려온다는 것이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반면에 자진 월북한 자(실제로는 납북자일 공산이 크다)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과 남쪽 가족들간의 분단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타당하다. 이 경우에는 그간 정부가 해 왔듯이 이산가족의 틀 속에서 남북에 헤어져 있는 자간의 아픔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의거입북만 있다는 북한측 주장은 여러 객관적 증거와 정황에 비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정부는 독일의 ‘정치범 석방거래’ 방식, 곧 대규모의 현물지원을 통한 납북자 송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석방된 정치범들은 동독 정권에 저항한 자였지 강제로 동독에 끌려간 자가 아니었다.
우리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난점이 있다. 서독의 대동독 접근의 전반적 구도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더욱이 북핵 외에, 위폐ㆍ마약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대규모 지원은 한ㆍ미 공조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는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아무 조건 없이 북송했다. 또 지난 10년 가까이 상당한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북한에 제공해 왔다. 이른바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논리에서. 이제는 북한측이 성의를 보일 차례다.
물론 북한의 완고한 ‘납북자 부존재’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편법을 쓰려 해선 안 된다. 정공법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은 일본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이 납북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납북자에 대해 납북 과정에 대한 조사절차를 객관적으로 보장해 주지않는 상황에서는 '납북자 송환'이라는 아이디어는 공허하고 실현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납북자 가족들이 처한 상황, 이들의 인도적 고통을 이용해(?)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적인 대북정책 한건 올리기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북한이 1-2명 납북자를 보내주는 아량을 베풀지는 모르나 1,000명에 달하는 납북자나 국군포로를 절대로 보내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대부분 결혼해서 가족을 두고 있는데다가, 이들을 대한민국에 보내줄 경우, 북한의 실상이 모두 공개되고 납북자 및 국군포로에 대한 그간의 비인도적 처우들이 낱낱이 알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납북자 송환과 관련해서 SOC등 대규모 지원 운운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대북제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납북자문제를 내건 것은 대규모의 퍼주기식 대북 지원을 실시하기 위한 포장용 명분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대규모 선 지원’을 통해 납북자 ‘송환’(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최대치)을 내걸고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가령 전면적 생사확인을 실시하고, 남쪽 가족들로 방북 상봉단을 구성해 납북자들과 재회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명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북한은 납북자문제에 대하여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하며, 북한이 납북자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 대규모 지원은 불가능하다. ) 실리를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인도적 사업은 정부가 이미 매년 실시해 온 식량 차관과 비료지원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이 옳다. 그런 지원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이며, 또 공짜로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납북자 문제는 본질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끝)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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