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6·25참전군인 가족을 위한 관광정책 필요
그들 나라에선 ‘한국통’, 격전지에 작은 전시관이라도
그러나 후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은 화려한 궁전이나 웅장한 건축물보다는 전쟁이 휩쓸고 간 허허벌판에서 얻은 역사적 교훈 같은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이야기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6·25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크고 작은 산이나 언덕, 강과 벌판, 나무 하나하나에도 6·25 전쟁과 얽힌 이야기들이 스며있다.
우리 역사 가운데 기쁜 것, 슬픈 것, 자랑스러운 것, 부끄러운 것까지도 자원이 될 수 있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다. 이 ‘잊혀진 전쟁’의 교훈을 알리는 것은 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우리 한국인들이 할 일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외국의 6·25 참전용사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한국통’으로 불린다고 했다. 혼자 아리롱고(아리랑)도 부르고, 한국인 식당을 찾아가 혼자 불고기도 사먹기도 한다고 한다. 또 한국의 국경일이 되면 자기 집 앞마당에 태극기를 높이 게양한다는 외국인도 있었다.
이들을 위하여 외국처럼, 격전지마다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 소설이나, 시, 참전기록 등을 비치해 놓은 조그만 전시관 하나 정도 지어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국과의 왕래가 빈번한 요즘 이런 전시관은 세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역사적인 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참전군인은 6·25 전쟁이 끝난 후 반세기에 걸쳐 마흔 번 이상을 한국을 다녀갔다고 했다. 그는 올 때마다 한국 내에서 렌터카나 버스 기차 등 온갖 교통편을 이용해서 자신이 싸우던 격전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곳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올 때마다 누군가 꼭 한 사람씩을 동반하고 왔다. 격전지 순례가 끝나면 그들은 인사동 전통찻집을 찾거나 한복집, 서예가 등을 찾아다닌다.
우주과학자 아들을 동반하여 한국재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한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전사한 남편 대신 ‘평화의 메달’을 받고 울음을 터트리는 부인, 인도에서 온 의사들도 있다. 또 그리스에서 온 노인, 필리핀의 정치가, 네덜란드에서 온 선장, 호주에서 온 부인도 있고,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 유엔묘지를 뒤지고 또 뒤지는 미모의 터키 여 편집장도 있다. 평생을 6·25 전쟁 후유증으로 앓던 한 노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의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참전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한국을 방문하고 또 방문할 것이다. 6·25 전쟁이 들어 있는 달, 그들을 위한 좀더 미래지향적인 배려가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다. (조선닷컴. 6,12)
전경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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