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열들에 대한 '기억의 정치'
몇 년 전 처음 갔던 러시아의 인상은 복합적이었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는 보리스 파스테나크의 『닥터지바고』에서 느꼈던 대지의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활한 영토를 운영하는 시스템은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구소련이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인간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운영 시스템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보다 10여 년 전에 러시아를 찾았던, 그 결과 동경했던 사회주의를 버리게 되었다는 한 지인의 경험담은 필자의 경험이야말로 속된 말로 양반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많이 나아진 시스템조차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때보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믿고 싶고, 또 그렇게 듣고 있다.
그러던 러시아의 인상이 달리 여겨지는 사건은 결혼식이었다. 필자가 모스크바에 머물던 날이 길일이었는지 결혼식이 많았는데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이 결혼식을 마치고 가장 먼저 찾는 장소가 뜻밖에도 크렘린 궁 근처 무명용사의 묘였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싸우다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인데, '꺼지지 않는 불'이, 글자 그대로 그 혹한의 추위에도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는 것이다. 결혼식만 갓 마친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무명용사의 묘라는 사실은 그간 러시아를 여행하며 느꼈던 불편한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상당 부분 씻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필자가 그런 전통이 확립되게 된 배경을 유추 못할 바는 아니었다. 스탈린의 절대권력에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히틀러의 침공을 격퇴한 것이었다. 그런 체제 수호 교육의 결과가 '꺼지지 않는 불' 참배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북경의 천안문 광장 남쪽에는 높이 약 38m의 인민영웅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중국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정면에는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 즉, 인민영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모택동의 글씨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 D.C.와 마주보고 있는데 전몰장병기념일(Memorial Day)에는 국가적 의식으로 무명용사 묘에 화환을 바친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1864년 5월 13일 인근 지방병원에서 죽은 남군 포로가 처음 묻혔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남북군을 막론하고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매장하던 곳이었고, 전몰장병기념일 역시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이후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날로 확대되었다.
영국도 런던 중심가에 2차 대전 전사자 기념비가 있으며,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아래에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무명용사를 기리기 위한 '영원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또한 그리스 아테네의 국회의사당 정면에도 무명용사를 기리는 무명용사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국가들은 무명용사들을 기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것이 국가라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불가결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민족국가인 미국이 위기 때마다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비결은 바로 미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기념하는 '기억의 정치'에 있다. '기억의 정치'의 핵심은 바로 보훈정책이다. 필자가 무명용사들에 대한 여러 사례를 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명용사에 대한 대접을 보면 눈에 보이는 국가유공자나 그 자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그 사회의 보훈정책의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선열들을 기념하는 것만큼 자녀교육에 좋은 것도 없다. 한 자녀 가정이 일반화되면서 이기주의를 당연한 권리로 알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국가나 민족, 또는 사회라는 공동체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을 위해 죽어간 이들과 그들이 남긴 가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인성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를 위해 죽어간 그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보답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보훈정책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이덕일(역사평론가)
** 이 글은 보훈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나라사랑' 6월 20일자에 실린 보훈시론 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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