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앞에서도 "납치가 아니다"는 김영남의 억지
납북자 문제 해결 더 어렵게 만들어
김영남씨 가족의 상봉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됐다. 북한이 납북자 김영남을 통해 '납북자는 없다'는 종래의 주장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영남씨는 29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요구해 자신이 북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납치도 자진 월북도 아니다"는 말로 '납북'을 전면 부인했다. 북측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할 때부터 김영남씨가 납북 사실을 전면 부인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했었다. 그러나 "깜박 잠들었다 깨보니 북한이더라"는 웃지 못할 증언 대목에서는 듣는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어설픈 코메디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김영남씨는 자신의 사생활이 정치화 되거나 국제화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순간 자신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고 있는 줄은 모른채 말이다. 김영남씨야 누군가 써 준 각본대로 회견을 했겠지만 그 내용이 유치하기가 그지없었다. 28년만에 만난 어머니를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김영남씨의 처지가 정말 불쌍할 따름이였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지만 한 매친 어머니 가슴에 다시한번 대못을 박는 거짓 증언이 아닌가.
탈북자 김성민씨는 김영남의 기자회견을 보고 "국가적 사기(詐欺)가 가능한 곳이 북한"이라며 "'메구미는 자살했다' '자신은 납북된 게 아니다'라는 김영남씨의 주장은 북한의 공포와 독재의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국내 납북자 단체들도 일제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납북자 입을 통해 납치가 아니라고 말하게 하는것이야말로 반인륜적"이라며 북한당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영남씨가 납북됐다는 사실은 그를 직접 납치했던 귀순간첩 김광현씨와 최정남 부부간첩에 의해 이미 확인된 것이기에, 그의 이날 증언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애처로운 몸짓에 불과했다. 인륜의 정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김정일 독재체제와의 관계 개선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영남씨의 거짓 증언의 피해는 결국 다른 납북자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김씨의 증언을 계기로 모든 납북자들이 '자진입북자' 내지는 '돌발적 입북자'로 둔갑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북측이 김영남씨를 시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게 한데는 이런 꼼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북한은 김영남씨 가족상봉을 통해 납북자는 없다는 메시지를 남한과 국제사회에 다시한번 내 보냈다. 이제부터의 문제는 우리 정부가 어떤 태도로 나오느냐다. 생각이 있는 정부라면 이번 김씨의 기자회견을 통해 북측이 납북자 문제를 일거에 정리해 보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측의 억지에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납치자 문제 해법은 납북자 가족을 이산가족 상봉단에 한두명씩 끼어서 만나게 하는 방식이였다. 2000년 11월에 열린 제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부터 지금까지 26가족 104명이 상봉했다. 그냥 일회성 '상봉'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납북자 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김씨는 이날 증언에서 '돌발적 입북'이라는 말로 '납치'를 부인 했지만 또다른 대목에서는 납치를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과거 대결의 시대에는 북남 사이 별별 사건이 다 있었다. 그 과거는 6.15를 계기로 다 털어버렸다"는 대목이다. 『··· 북남 사이 별별 사건』이 바로 자신과 또다른 이들의 납치 사건 아닌가. "이제와서 콩이냐 팥이냐를 따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김씨의 주장은 북한당국이 시켜서 하는 말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더우기 485명의 납북자와 수십년 동안 한 매친 삶을 살아온 그 가족들은 결코 받아드릴 수 없는 말이다. 북한당국이 『··· 북남 사이 별별 사건』중에 '납치 사건'이 있었음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 순리다.
김씨 회견 이후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우리정부는 이 기회에 납치가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북측에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어설픈 연극으로 '납치자 없음'을 강조하려들지 말고 김정일 정권이 납북자의 존재를 사실대로 인정하고 공개 사죄와 함께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배상, 그리고 남쪽 고향으로의 송환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정부가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납북이냐 월북이냐는 명분 싸움 보다는 납북자 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 줄 알지만 납북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과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사실을 인정한 후래야 진솔한 대화가 이뤄지고 근본적인 해결 방법도 나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김정일 정권과 납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 (konas)
김 철 기자 konasnet@kor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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