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방제안의 전개과정
최근 우리 사회에서 6.15 공동선언의 성격에 관하여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 낮은 단계 연방을 명시한 점과 더불어 현재 김정일 정권을 통일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지금 북한과 국내외의 친북 사회주의세력은 낮은 단계 연방 진입을 위한 ‘전민족 통일전선’ 구축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홍보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북한의 대남전략에 속지 않으며 또 말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앞으로 3회에 걸쳐 북한의 연방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북한의 대남전략과 연방제의 관계, 연방제 제안의 변천(내용과 배경 및 전략적 의도), 6.15 공동선언 제2항의 문제점(뒤의 두가지는 글을 달리함)을 살펴보고, 우리의 대응전략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1. 북한의 대남전략과 연방제 통일방안
북한은 조선로동당규약(1980.10.10 6차 당대회에서 채택) 서문에서도 명시하고 있듯이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통한 전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대남전략의 기본목표로 삼고 있다. 그 방법으로 ‘비평화적 방도’와 ‘평화적 방도’라는 두 가지를 상정하고 있다. 비평화적 방법이란 무장력을 동원하여 전쟁의 방법으로써 남한을 공산화 통일하는 것인데,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한 중심고리 전술이 바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다. 평화적 방법이란 남한 내에서 남한 주민에 의한 인민민주주의(또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이 수행된 다음, 북한이 남한의 혁명정권을 흡수하거나 또는 남한의 현체제가 연공정권이나 용공정권으로 교체된 후 이 정권과 ‘합작통일’을 실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평화적 방법을 적용하기 위한 중심고리 전술이 바로 연방제 통일방안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은 1960년 이래 계속 주장된 것으로 시대별로 그 명칭 및 내용이 약간씩 변화되어 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선 남조선혁명, 후 남북합작통일'을 기조로 하고 있음에 변함이 없다. 1964년 2월 이래의 ‘3대 혁명역량강화노선’(북조선 혁명기지역량과 남조선 혁명역량, 국제적 혁명지원역량)은 그러한 연방제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북조선(북한 내부) 혁명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로는 ① 주체사상체계에 의한 북한주민의 정치사상적 무장 강화, ② 정치력,국방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역량강화, ③ 혁명의 승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의 국방역량의 강화 등 세 가지 방법이 강조되고 있다. 1998년 이후 김정일이 이끄는 ‘선군정치’ 노선도 이를테면 북조선 혁명기지역량 강화노선의 최신판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남조선 혁명역량강화의 방도로는 남한내부 모순의 최대한 첨예화와 지하당 구축 및 확대, 나아가 반미구국 통일전선과 반파쇼민주연합전선을 비롯한 형태의 통일전선 형성에 의하여 사회혼란을 유도하고 ‘반혁명력량’을 약화시킴으로써 남한내부에서 인민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정세를 조성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셋째, 국제적 혁명역량과의 연대성 강화는 남한의 국제적 고립을 도모하고 혁명차원에서 추진되는 남한의 공산화 통일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국제적 여건을 조성하려는 목적에서 외교적 투쟁과 노력을 병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은 이처럼 통일의 방도로서 ‘비평화적 방법’과 ‘평화적 방법’을 동시에 중시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탈냉전 및 탈이념이 지배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심각한 경제난 등으로 북한 내부 혁명역량이 약화되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여 북한은 김일성체제 유지와 연방제의 실현을 위한 방법으로 ‘평화적 방법’을 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2. 북한 연방제안의 시기별 특성과 의도
가. 남북연방제(1960년)
김일성은 1960년 8월 14일 8.15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통일 이전의 ‘과도적 대책’으로서 '남북연방제'를 최초로 제의하였다. 당시 북한이 제의한 남북연방제의 골자는 대략 다음과 같다.
미국군대를 축출하고 어떠한 외세의 간섭이 없는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되, 만일 남북 총선거가 불가능할 때에는 ‘과도적으로’ 남북조선의 연방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연방제의 주요 내용은 첫째, ‘당분간’ 남북한의 현존하는 정치제도를 존속시키고, 둘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독자적 활동을 보장하며, 셋째, 양 정부대표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 남북한간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연방제가 불가능할 경우 남북한의 실업계 대표들로 구성되는 경제위원회를 설치,운영하자는 것이다. 이 경제위원회로 하여금 남북간 물자교역, 경제건설에 있어서 상호 협조 및 원조의 기능을 수행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 밖에 남북한은 문화교류 및 인민들의 자유왕래를 실시하자고도 제의하였다.
북한이 남북연방제를 제안하게 된 배경은 대내적으로는 김일성이 계속적인 숙청을 통해 노동당 내의 지위를 공고히 함으로써 1인 독재체제를 위한 기틀을 마련한 정치적 기초 위에서, 소련 및 동구국가로부터의 원조로 전후복구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제4기 인민경제 5개년 계획기간(1957 ~61년) 중 중공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데 대해 자신감을 얻은 것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힘입어 대남 통일공세 차원에서 연방제를 남한에 처음 제의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체험한 만큼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조건 하에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의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전략적 판단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요컨대, 남북연방제 제의는 북한이 1950년대 이룩한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남한의 정치불안정, 북한의 대남 경제력 및 군사력 우위, 미-소간의 평화공존에 편승하여 북한의 대외 평화이미지 구축과 통일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 고려연방제(1973년)
이후 김일성은 1973년 6월 23일 발표한 '조국통일 5대강령'(1973.6.23 후사크, 체코공산당 서기장 환영대회 연설)의 일환으로 '고려연방제'를 제의하였다.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서 북한은 당면하게는 남북한 관계개선과 평화적 통일을 촉진하기 위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과 대치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①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의 중지, ②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③ 군대-군비의 축소, ④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반입의 중지, ⑤ 평화협정의 체결을 주장하였다. 이밖에 남북한 관계개선 및 통일촉진 차원에서 남북간 정치,군사,외교,경제,문화 등 다방면적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통일문제를 인민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남북의 각계각층 인민이 조국통일을 위해 거족적 애국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대민족회의'를 소집하고, 여기서 통일문제를 협의-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통일은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하되, 통일국가의 국호는 '고려연방공화국'으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 밖에 남과 북이 두 개 조선으로 분열하는 것을 방지하고 대외관계 분야에서 함께 공동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에 의한 UN가입을 추진하자고 주장하였다.
1970년대 초 북한은 국제적 긴장완화 추세에 따라 무력통일노선을 일시 후퇴시키고 대남 평화공세를 적극 전개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목도한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실현하고 남한이 6.23선언(1973.6)을 통해 제의한 UN동시가입 주장을 저지하려는 목적에서 연방제를 제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더불어 북한이 연방제를 주장하는 데는 대내외선전에서 자기들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데 반해, 한국은 분단고착화만을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통일홍보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겠다.
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의 정립(1980년)
(1) 의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198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 연설에서 김일성이 밝힌 북한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을 말한다. 이 방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방식의 통일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으로,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 정부를 그대로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연방국가를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당시 김일성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하여 “오랜 역사에 걸쳐 같은 말과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살아오다가 일시적으로 갈라진 한민족의 두 부분을 련방제로 결합”하는 것으로서, “정치,경제,문화,군사,외교 면의 민족적 연계를 보다 촉진, 즉 완전한 합작”을 하는 데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방안은 북한이 1960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제시한 통일의 ‘중간걸음’(과도적 대책)으로서의 남북연방제와는 달리 그 자체가 완성된 통일을 실현하는 방안으로 선전되고 있다. 과거 남북연방제가 총선거를 통해 통일적 중앙정부의 수립에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태였다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연방국가 형성으로 통일국가 수립을 완성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김일성이 제시한 연방제 방식의 통일국가 수립전략이 구체화․체계화된 것인데, 김정일은 이 방안에 대하여 “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를 밝힌 설계도이다. … 나라의 통일을 북과 남의 사상과 제도를 서로 용납하는 기초 우에서 가장 공정하고 순조롭게 실현할 수 있는 기본방도가 제시되여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방안만이 한반도의 실정에 맞는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완성된 통일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정일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과 함께 '조국통일 3대원칙'(7.4 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되어 있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2) 제의 배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과 광주사태로 남한의 정치상황이 불안하였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불황기가 도래하여(1979~80년 경제성장률: -5.3%) 전반적으로 남한 내부의 정국은 극도로 혼란했다. 북한은 남한의 이 같은 사회-정치 불안에 편승하여 남한 내부의 분열을 더욱 조장함으로써 적화통일의 호기를 조성하고 평화통일의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차원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안하였다. 여기에는 1960년대의 월맹의 ‘연립정부론’과 1978년의 중국의 ‘일국양제안’ 등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고 보인다.
또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한국의 통일원칙과 노선에 반대하면서, 비동맹 중립국가의 지지 획득, 한국의 국제적 고립화 유도, 한반도문제의 한국화(민족내부 문제화)로 제3국의 내정간섭의 배제, 해외동포의 지지기반 조성 및 침투 공작의 명분 확보를 위해 제의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북한은 연방제안의 명칭에서 연방국가, 고려, 민주라는 어휘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명분상의 호소력에 의존하는 대남선전을 모색하는 한편, 한국의 점진적 통일접근 원칙의 불명확성을 강조하여 한국국민의 정부에 대한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려 시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은 새로운 연방제안의 제의를 통해 김일성 1인독재체제에 대한 북한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혁명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한편, 내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본,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접근하는 계기를 조성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3) 선결조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①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 ② 연방제 구성 및 운영원칙, ③ 10대 시정방침으로 구성된다. 아래에서는 이와 같은 순서로 설명하기로 한다.
김일성은 연방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조건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파쇼적인 악법들을 폐지하고 모든 폭압 통치기구들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와 함께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을 합법화하고 정당, 사회단체, 개별적 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며, 부당하게 체포, 투옥된 민주인사들과 애국적 인민들을 석방하고 그들에게 가해진 모든 형벌을 무효로 하여야 한다 …. 남조선에서 군사파쇼정권을 평범한 인민대중의 의사와 이익을 옹호하며 대변하는 민주주의적인 정권으로 교체하여야 할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제거하는 문제는 오직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꿈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다 …. 미국 당국자들은 남조선에서 지기의 군대를 하루빨리 철거함으로써 미국인민을 포함한 세계인민들의 일치한 염원과 의사에 맞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연방제 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은 ① 한국의 반공법, 국가보안법 폐지 및 폭압통치기구 해체, ② 모든 정당․단체 합법화 및 정치활동 보장, ③ 한국 사회의 민주화(인민민주주의적 정권으로 교체), ④ 미․북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철수, ⑤ 조선의 내정간섭 및 두 개의 조선책동 중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4) 연방제 구성과 운영원칙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의 구성과 운영원칙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위에서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 일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한다.
둘째, 북과 남의 같은 수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들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련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하여 북과 남의 지역정부를 지도한다. 연방정부는 정치문제, 조국방위문제, 대외관계문제, 나라와 민족의 전반적 이익과 관계되는 공동문제 등에 대해 토의-결정하고(토의,결정기능),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모든 분야에서 남북간의 단결-합작을 실현한다(사업추진기능).
셋째, 최고민족연방회의와 그 상임기구인 '련방상설위원회'는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로서 모든 분야에서 단결, 합작을 실현한다.
넷째, 북과 남의 지역정부는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전민족적 이익과 요구에 맞는 범위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하며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지역정부는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전 민족의 근본리익과 요구에 맞는 범위에서 독자적 정책을 실시하고, 모든 분야에서 남북간의 차이를 해소하며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도모한다.
다섯째, 연방국가의 국호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으로 한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중립국가로 되어야 한다.
(5) 10대 시정 방침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면서, 연방제가 실현되었을 때 시행할 정책으로 이른바 '10대 시정방침'을 발표했다.
이를 보면 ①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 자주적인 정책 실시, ② 나라의 전 지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 실시, 민족대단결 도모, ③ 북과 남의 경제적 합작-교류 실시, 민족경제의 자립적 발전 보장, ④ 과학,문화,교육분야에서 남북교류-협력 실시, 과학기술-민족문화예술-민족교육의 통일적 발전, ⑤ 남북간의 교통-체신 연결, 전국적 범위에서 교통-체신수단의 자유로운 이용 보장, ⑥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과 전체인민의 생활안정 도모 복리증진, ⑦ 남과 북의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 ⑧ 해외에 있는 조선동포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옹호 보호, ⑨ 남북이 통일이전에 타국과 맺은 대외관계 처리, 두 지역정부의 제활동 통일적 조절, ⑩ 전 민족을 대표하는 통일국가로서 세계 모든 나라들과 우호관계발전, 평화애호적인 대외정책 실시 등이다.
(6) 연방국가 통일정부의 장
1983년 9월 9일 김일성은 9.9절 35주년 경축대회 연설에서 남과 북이 각각 연방국가의 통일정부인 '최고민족련방회의'의 공동의장과 '련방상설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선출하고 쌍방에서 윤번제로 운영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는 곧 (연방국가) 통일정부의 장을 남북 윤번제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연방국가 통일정부의 장 선출-운영방식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발표 시점인 1980년 10월 10일의 대남제의 내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를 보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요약
위에서 살펴본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의 골자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남과 북에 현존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원칙에 따라 ‘합작과 단결’을 통해 연방제통일을 이루어 나간다(하나의 연방국가 구성). 연방국가의 국호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라 하고, 이 연방제 하에서 남과 북은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지닌 지역자치제를 실시한다.
둘째, 남과 북에서 선출한 동수의 대표와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들로써 최고민족연방회의(통일정부)를 구성하고, 이 연방회의가 상임기구인 연방상설위원회(최고민족연방회의가 휴회 중 실질적으로 연방정부의 업무를 수행)를 조직한다. 통일정부는 남과 북의 지역(자치)정부를 ‘지도’하고, 군사권과 외교권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민족의 전반적인 이익에 관계되는 사업을 전반적으로 ‘관할’하도록 한다.
셋째, 연방이 성립되면 남북간 각 분야에서 교류협력의 증대, 민족연합군의 창설 등 소위 '10대 시정방침'을 실시해 나간다.
요컨대,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남북한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의 제도, 두개의 정부'에 입각한 연방국가를 창설함으로써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라. 김일성의 '느슨한 연방제' 제안(1991년 이후)
김일성은 1991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남북한 지역정부에 대해 외교-군사권 등을 더 많이 부여하는 '느슨한 연방제'를 거론(후술 참조)한 이래 북한은 연방제 수정 제의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이것이 작금 인구에 회자되는 소위 '낮은 단계 연방제안'을 지칭하는 것이다.
북한은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2000년까지는 ‘낮은 단계 연방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표현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채택된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 처음 등장하게 된다. 동 제2항은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라는 표현이 사용됨에 따라 1980년 10월 10일에 발표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은 '높은 단계 연방제'안 또는 ‘완성국가적 성격(완성된 통일국가)의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면 김일성이 낮은 단계 연방제를 제안한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은 1980년대 후반에 체제 자신감과 유리한 국제환경을 이용하여 보다 적극적인 대북 및 통일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북한은 적잖이 당황하였다. 이에 북한은 평화 이미지와 통일의지를 부각시키는 한편, 한국의 UN 우선 단독가입을 저지 또는 지연시키기 위해 연방제 통일방안의 수정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요컨대, 국제정세가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국제사회에서 남북한이 별개로 행동하는 현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남북한 지역정부에 외교,국방 등의 분야에서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고 함으로써 유엔동시가입이 불가피할 경우를 대비하는 한편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의 연방제를 수용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연방제 수정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할 것이다. (konas)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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