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도발의 배경과 해법
북한의 미사일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북한은 지난 5일 새벽 여러 종류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함으로써 7년여의 모라토리엄(발사유예)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로써 북핵 문제를 포함, 한반도의 비확산 위기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배경과 가능한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배경에 관해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서양 속담이 시사하는 바대로 이번 사태는 북한판 공세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 군부 강경파의 정세 오판에 따른 것으로 보이나 최근 미국으로부터 위폐·마약·인권 논란에 금융제재 등으로 옥죄어오는 형국으로부터 북한 체제가 벗어나 보려는 안간힘의 한 단면이다. 여기에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베이징 북핵 6자회담에 돌파구를 만들어 북·미 직접 협상의 계기를 잡으려는 속셈 또한 깔려 있다.
둘째, 온건·협상파와의 싸움에서 군부 강경파가 득세, 주도권을 장악한 결과다. 한국을 포함한 미·일·중·러 주변국의 강력한 경고에 북한의 유엔 차석대사 한성렬이 6월20일 협상의 운을 떼고 조총련 기관지에서도 타협적인 뉘앙스를 보인 가운데 나온 돌발적 상황에서 능히 유추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북한 군부는 2005년 보수·강경 성향의 부시행정부 2기 출범과 때 맞춰 국정의 실세로 부각되고 있다. 6자회담, 남북장관급회담에서의 직·간접적 영향력 행사는 물론이고 최근 ‘분 단위의’ 완벽한 행사계획까지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진 남북한 간의 열차 시험운행 합의를 행사 직전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번복한 것도 북한 군부의 작용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셋째, 왜 여러 기의 중·장거리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했는가. 여기에는 북한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온 이른바 ‘미사일 자주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과는 달리 미사일은 범세계적인 조약법규가 없기 때문에 미사일 시험은 주권국가의 고유한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대포동미사일 시험도 그 가운데 하나임을 은연중 강조함으로써 그 파장을 희석시키려 한 것 같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발사된 날 미사일시험을 집중적으로 한 것도 미사일 자주권을 우회적으로 시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미·일의 선택지는 세 가지다. 경제 제재, 군사적 대응, 외교적 해결책을 말한다. 먼저, 경제 제재는 이미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북한의 고립경제와 중국의 지원 등으로 제한적인 효과 외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의 경제 제재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효과가 미미하고 오히려 죄없는 주민의 희생만 강요하게 된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지적 공격(surgical strike) 등의 군사적 대응은 한반도 여건상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외교적 대응 내지는 해결책이다.
외교적 대응은 다시 국제 규범적 측면과 외교협상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통합도 가능). 하나는 북한을 미사일 기술국으로 대우하여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편입시키고 나아가 유럽연합(EU)이 주축이 돼 만든 범세계적인 미사일비확산 규범인 헤이그행동규약(HCOC·2006년 현재 112개 회원국)에 가입시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이른바 ‘수요 측면의 접근(demand-side approach)’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96년 4월 베를린에서의 1차 미사일협상 이래 뉴욕과 평양, 콸라룸푸르를 오가며 2000년 11월까지 6차례나 회담을 열었으나 별 진전이 없는 북·미 미사일회담을 다자회담으로 복원시키는 일이다. 즉, 한국이 중재역을 자임, 직접적인 이해 당사국인 남북한과 미·일 4국간의 미사일회담 개최를 돌파구로 하여 그동안 교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도 재개하면서 핵과 미사일을 2원 다자회담으로 추진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2006,7.7)
김경수 /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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