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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급 구축艦 5년내 확보

Written by. 국방일보   입력 : 2003-11-12 오전 10: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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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해군창설 58주년-  
 

11일 창설 58주년을 맞은 해군은 21세기 대양해군을 향한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창설 초창기인 1946년 10월 미군으로부터 상륙정(LCI) 2척을 인수,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한 해군은 2008년께 ‘차세대 꿈의 구축함’이라 불리는 이지스급 구축함을 확보할 계획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군은 55년 유엔군으로부터 해상작전지휘권을 인수하면서 명실공히 한국해역을 독자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전력증강에 힘써왔다.



70년대 들어 우리 국력이 신장하면서 수상·수중·항공의 ‘입체전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80년 최초의 국산 호위함(FF)인 울산함이 진수해 국산 호위함 시대를 맞았고, 90년대에는 군수지원함(AOE)과 신형 상륙함(LST)을 확보했으며, 92년에는 우리 해군 사상 최초로 수중전력인 잠수함 장보고함을 인수함으로써 새로운 잠수함 역사를 써 나가게 됐다.



특히 1번함인 장보고함만 독일에서 도입했을 뿐 92년 10월 2번함인 이천함부터 ‘현대과학의 총아’라 불리는 잠수함을 국내에서 건조함으로써 해군은 물론 우리나라 조선업계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잠수함을 운용하게 된 해군은 그동안 ‘100번 잠항(潛航)하면 100번 부상(浮上)한다’는 안전의식으로 초창기 잠수함 운용의 어려움을 극복, 지난해 10월 잠수함 운용 및 무사고 10주년을 달성했다.



이와 함께 96년부터 하와이 근해에서 개최된 환태평양훈련(RIMPAC)에 참가하면서 원양항해 능력과 잠대함 유도탄 발사 능력을 입증받는 등 짧은 운용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해군의 위용을 당당히 펼쳤다.



또한 95년부터 해상초계기인 P-3C를 확보·운용하면서 명실공히 우리 해군의 전력이 입체전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90년대부터 세계 최고수준인 해운력에 걸맞고 급변하는 미래의 해양안보환경에 대비하고자 차세대 구축함사업(KDX)을 시작하면서 자주국방 역량을 극대화하는 전력증강사업에 착수, KDX사업의 첫 단계 결실인 광개토대왕함을 비롯한 3척의 3000t급 구축함을 98년부터 확보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4000t급 구축함인 KDX-Ⅱ 충무공 이순신함의 진수식을 가진 데 이어 올 4월에는 문무대왕함을, 12일 오전에는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주요 내빈과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3번함인 대조영함의 진수식을 가질 예정이다.



오늘의 해군이 있게 된 것은 해군 선각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다.



해군은 광복되던 해인 45년,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손원일(孫元一)제독을 중심으로 일부 선각자들이 해군 창설의 큰 뜻을 품고 8월21일 해사대(海事隊)를 조직하고 9월30일 해사보국단(海事保國團)과 통합해 조선해사협회를 발족시켰다.

45년 11월11일 서울 표훈전(表勳殿·현 종로구 관훈동)에서 손제독을 단장으로 7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해안경비대의 성격을 띤 해방병단(海防兵團) 결단식을 가졌다.



해방병단은 46년 6월 조선해안경비대(朝鮮海岸警備隊)로 개편됐고 48년 정부수립과 함께 해군(海軍)으로 발족됐다. 이러한 연유로 해군은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 창설일을 오늘날의 해군 창설일로 기념해 오고 있다.



해군은 49년 6월 함정건조기금거출위원회를 결성, 박봉인 해군장병의 월급에서 일정한 액수를 거출하고 해군부인회도 봉사활동을 펼쳐 성금을 마련하는 등 기금을 모아 나갔다.



이렇게 모아진 6만 달러로 미국에서 함정을 구입, 50년 4월 진해에서 백두산함(600t급·PC-701)이라고 명명했다. 전투함을 갖고자 했던 해군의 끈질긴 바람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해군은 함정 30여 척, 장병은 해병대를 포함해 6000여 명에 불과했다. 비록 물자와 장비에서 보잘것없었지만 바다 곳곳에서 적을 격퇴했다.



특히 동해의 옥계 해전과 대한해협 해전을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전쟁 초기 제해권 장악과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려는 북한의 기도를 분쇄했다.



53년 7월 정전협정 조인으로 3년간의 전쟁이 종식된 이후 해군은 본격적으로 그 기틀을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정부와 함께 부산으로 이동한 해군본부가 60년 9월 서울 동작구 대방동 신축 청사에 입주, 이와 함께 ‘한국함대’를 창설하고 함대조직과 해상전력을 정비했다.



또한 해군대학 및 교육단을 창설해 장차 해군을 이끌어 나갈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54년 해군사관학교 제9기 생도부터 순항훈련을 시작, 해군장교의 자질향상과 군사외교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전세계 우방국들에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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