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사 41주기 추도식
19일 오전 10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서거 41주기 추도식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內 현충관에서 박유철 국가보훈처 장관을 비롯해 약 300여 명의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이승만 박사 유족인 이인수 교수 내외는 식전부터 현충관 입구에서 추도객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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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장 입구와 단상에는 화환들이 세워져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최규하 前대통령, 노태우 前대통령, 박유철 국가보훈처 장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등이 보낸 화환이 보였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노당 등과 김영삼 前대통령, 김대중 前대통령, 전두환 前대통령 측에서 보낸 화환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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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정각,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홍구 前총리의 개회사로 추도식이 시작됐다. 이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초대 대통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이런 위대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도식은 기독교式으로 진행됐다. 국민의례가 끝난 후 이원태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원로 목사의 기도가 이어졌다. 이 목사는 기도를 통해 하와이에 한인교회와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에 힘썼던 이승만 박사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이승만 박사님께서는 항시 하나님께 남북통일을 간절히 기도했었다"면서 "이제는 북한을 변화시켜 이승만 박사의 기도를 이뤄 달라"고 기도했다.
이 목사의 기도 후 성경봉독, 찬송, 설교가 이어졌고 이 박사의 생전 육성 녹음도 들려줬다. 1942년 6월 13일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고국의 동포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이승만 박사는 육성 녹음에서 “왜적이 멸망을 재촉하느라 주인이 없는 틈을 타 하와이와 필리핀을 침략해 여러 백 명의 인명을 살해한 것을 미국 정부와 백성이 잊지 아니하고 보복할 결심”이라며 “얼마 아니해서 (왜적에게) 벼락불이 떨어질 것이니 이들의 멸망이 멀지 않은 것을 세상이 다 안다”고 해방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 박사는 “희망을 가지고 이 소식을 전하니 곧 자유의 소식”이라며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비치나니 일심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하자”고 고국의 동포들에게 역설했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분향 후 추도사를 낭독했다. 박 보훈처장은 추도사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박사님의 영전에 삼가 고개를 숙인다”며 “박사님께서는 일제 암흑기에는 겨레의 등불로써,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으신 건국의 아버지로써 우리 민족사에 우뚝 서 계신다”고 칭송했다.
그는 이승만 박사 덕분에 대한민국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우리나라가 앞으로 풀어나갈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며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이뤄나가야 하고 세계 속에 우뚝선 선진 한국을 만들어야 하며 사회 갈등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때야말로 박사님의 저서 ‘독립정신’을 통해 강조하신 말씀은 저희들에게 소중하다”며 “앞으로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부강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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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대표인 이인수 명지대 교수는 “반갑고 귀하신 분들을 모두 소개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직접 오시지는 못했지만 화환을 보내주신 대통령님 이하 많은 분들과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konas)
전경웅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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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0 오후 2: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