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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실 간첩사건, KAL858기 폭파사건 조작 아니다"

국정원과거사위 조사결과 발표, "이선실은 실제인물"

Written by. 김필재   입력 : 2006-08-01 오후 7: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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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과거사위)가 1일 1992년 발생한 '남한조선노동당사건'(이선실 간첩사건)과 198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이 '실체'가 있었던 '실제의 사건'이었음을 인정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은 1990년대 최대 공안사건으로 그동안 조작의혹이 꼬리를 물었으나 이날 발표된 국정원과거사위의 조사 결과 이렇다할 조작 혐의는 포착되지 않았다.

 1992년 10월 6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전신)는 수사결과발표를 통해 "북한은 노동당 서열 22위인 간첩 이선실을 남파, 김낙중 등과 함께 '조선노동당'을 구축해왔으며 95년에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 아래 입체적인 대남 공작을 수행해왔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간첩 '이선실', 월북한 제주 출신 '이화선' 확인

 이 사건은 1992년 제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개됨으로써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태우 정권의 공안 조작사건이라는 의심을 사왔으나 이날 국정원과거사위의 발표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명백한 것으로 재확인됐다.

 우선 안기부가 발표한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총책 격인 간첩 이선실(2000년 8월 사망)은 월북한 제주 출신의 이화선 이라는 실존 인물임이 판명됐으며, 실체 유무에 대한 의혹이 일었던 중부지역당도 실재했던 조직이었다는 것이 국정원과거사위의 결론이다.

 실제로 당시 안기부 수사자료에 따르면 이선실은 80년 3월쯤부터 90년 10월까지 10여 년 간이나 남북한 및 일본을 왕래하며 북한에서 직파된 공작원 10여 명과 함께 대남 공작을 총 지휘해온 인물로 명시돼 있다.

 이와 함께 이선실은 90년대 초부터 김낙중과 함께 민중당 창당을 주도하며 민중당 내 핵심당원들을 포섭, 창당발기준비대회 때는 단상에 올라가 민중당 깃발을 이우재 당시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김낙중, 김일성이 보낸 '산삼'과 '녹용' 받아

 이선실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재야인사로 활약하면서 구속자 가족모임인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을 수시로 출입, 장기표의 처 조무하, 황인오의 모(母) 전재순 등과 긴밀히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낙중과 손병선이 남파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고 A-3방송을 통해 북한의 지령을 수수했으며, 황인오와 최호경 등이 대외명칭을 '민애전'(민족해방애국전선)으로 하는 중부지역당을 결성해 강원도당으로 '조애전'(조국통일애국전선)을 조직한 뒤, 산하조직으로 '95년 위원회'를 재편한 '애국동맹'을 뒀다는 사실도 재확인했다.

 따라서 당시 노태우 정권이 사건을 사전에 기획-조작하고 유리한 발표 시점을 선택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등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국정원 과거사위는 밝혔다.

 이와 함께 "김낙중이 대남 공작의 업적을 인정받아 북한으로부터 91년 10월 '김일성 공로훈장' 91년 12월 '민족통일상'을 받았고, 김일성이 특별히 보낸 산삼과 녹용을 선물로 받은 것이 사실이냐"는 모 기자의 질문에 손호철 조사위원은 "사실"이라고 답변했다.

 김낙중, 석방된 후 소위 '통일운동가'로 활동 중

 이처럼 전후관계가 명백한 간첩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 들어 공안사범에 대한 사면이 연속되면서 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김낙중, 황인오·인욱 형제, 손병선은 물론 남파간첩 등 공안사범 103명이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석방됐다.

 석방 후 4일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양심수(?)의 석방'을 주장하기도 했던 김낙중은 현재도 통일운동가라는 직함 아래 소위 친북진영의 주요 인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01년 12월 '디지털 말'지에 실린 '겨레의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김낙중은 '북한이 남침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비합리적 생각이며, 오히려 한·미·일 공조체제의 이름으로 북한을 목 조르는 정책은 평화적 통일을 방해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요지의 글을 싣기도 했다.

 한편, 국정원과거사위는 지난 1987년 승객과 승무원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KAL 858기 폭파사건도 당시 안기부가 발표한 대로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의 폭탄 테러로 일어난 사고로 잠정 결론 내렸다.

 "안기부의 KAL 858사건 기획-공작 주장 근거 없어"

 또 당시 안기부가 이 사건을 기획-공작했거나 사전에 인지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이 사건을 당시 정부가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현희를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 15일에 압송한 것은 바레인 정부가 인도 날짜를 연기했기 때문으로 정부가 15일에 맞춰 압송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한편 국정권과거사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KAL 858기 폭파사건 조작의혹과 관련해 "KAL기 사건은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사건"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기존의 정부발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조사결과다.

 지난 87년 11월 29일 미얀마 상공에서 공중 폭발한 KAL 858기는 북한 공작원인 김현희가 장치한 폭약에 의해 폭발한 것으로 결론 났다.

 국정원과거사위는 우선 세간에서 떠돌던 각종 '설'을 부인했다. "중간 경유지에서 내린 사람 가운데 한국 국적의 사람은 전혀 없었다"며 안기부 요원이 KAL기에 폭약을 설치한 뒤 중간에 내렸다는 '안기부 자작극설'을 부인했다.

 아울러 "안기부가 북한 공작원의 테러계획을 일부러 방치했다는 설도 당시 안기부 파견관 면접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KAL 858기 잔해 추정 물체 미얀마 근해서 발견

 김현희의 실체가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본 공산당 기관지 평양특파원인 하기와라 료 씨로부터 북한에서 찍은 김현희의 어린 시절 사진 36장을 확보하면서 북한의 공작원임이 입증됐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과거사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9만에 KAL 858기의 기체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밝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국정원과거사위는 지난 5월 7일부터 16일까지 미얀마 현지 출장을 실시해 양곤(Yangon) 동남방 300㎞ 지점에 위치한 한 무인도 앞바다 해저 15~20미터에서 동체 잔해로 추정되는 인공조형물이 매몰돼 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과거사위는 이 물체가 동체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로 수중음파 탐지기를 통해 확인된 매몰체의 크기와 모양이 KAL 858기의 제원과 비슷하고, 이 지점에서 비행기의 조종석 등을 목격했다는 어부의 증언 등을 제시했다.

 국정원과거사위는 "이 물체가 KAL 858기의 동체 일부로 판명될 경우 당시 사건 상황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조형물 인양작업을 통해 이 조형물이 실제로 KAL 858기 동체로 확인되고 블랙박스도 회수된다면 19년 간 끊임없이 제기됐던 대부분의 의혹들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onas)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현 프리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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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 성향의 과거사위가 스스로 과거 공안사건의 진위를 밝히는 어이없는(?)일이 발생했습니다. ㅋㅋㅋ</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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