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갈등·민족분열'만 가져 온 8·15통일축전
北이 취소한 '8·15민족통일대축전' 어떤 행사인가
북한이 14일부터 평양에서 개최키로 합의했던 '자주·평화·민족대단합을 위한 8·15통일대축전'(이하 8·15축전)을 취소한다고 지난 1일 우리측에 전격 통보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집단체조와 아리랑 공연도 취소한다고 알려왔다. 이유는 폭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그동안 8·15축전과 아리랑 공연을 체제선전과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잘 활용해 왔다는 점에서 년초부터 애써 준비해온 '국책 이벤트'를 포기했다는 데서 폭우 피해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아리랑 공연으로 35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북측이 남측보다 폭우로 인한 피해를 더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이 밝히지 않은 8·15축전 취소 이유가 또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또다른 이유는, 첫째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준전시적 위기관리 체제에 돌입했다는 점과, 둘째 지난달 12일 부산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선군정치가 남한을 보호한다'고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우리측에서 식량 등 대북지원을 취소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장관급 회담 이후 일체의 남북교류를 중단하고 대남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남북 장관급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행사 중단을 선언했고 금강산에 건설 중인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공사 인부들까지 내쫒으며 분풀이를 했다. 개성 관광도 중단시켰다. 지난달 31일 밤에는 동부전선 비무장지대 북한군 GP에서 우리 군 초소를 향해 사격을 가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출했고, 우리 적십자사가 수해복구를 돕겠다고 제의한 것 마저 뿌리쳤었다.
또 일본 산케이 신문은 지난 2일 북한이 아리랑 공연을 취소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이 만경봉호 입항 금지 등 대북 제재조치를 취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대북 제재로 인해 조총련의 자금과 물자가 북한으로 유입되기 어려워졌고 일본으로부터의 관람객 1만2000명 동원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취소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떤 이유건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2006년 8·15통일축전이 취소된 것은 순간적으로나마 남남갈등의 소지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8·15통일축전이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를 통해 화해와 협력의 저변을 넓히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였지만 첫번째 행사 때부터 남남갈등의 진원지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는 행사로 오명을 남겼기 때문이다.
8·15축전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듬해인 2001년 북측의 제의로 시작된 남북 공동 민간행사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2001년 8월15일과 16일 양일간 평양에서 남북이 공동 개최하는 형식으로 처음 열렸다.
북한은 2001년 1월 1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정부·정당·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를 열고 6월15일 ~ 8월15일 기간을 '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으로 정해 8월15일을 전민족 통일대축전으로 장식하자고 우리측에 제의했다. 이에 한국정부는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북측 제의를 수용하고 6·15공동선언 1주년을 맞는 6월15일부터 광복절인 8월15일까지 두 달 동안 남북 공동으로 사회·문화·예술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는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북·미관계가 냉각되고 남북 당국간 대화도 중단된 상황이였다. 정부는 6·15남북정상회담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식이든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나온 북한의 제의는 기회였다. 따라서 민간교류만이라도 성사시켜 보려고 급한 마음에 통일축전의 형식에 대한 남북간의 구체적인 합의도 없이 북측의 제의를 덥썩 받아들였던 것이다.
서둘러 이뤄진 행사는 그러나 시작 첫날부터 말썽을 불러왔다. 남측의 행사 참가자 일부가 돌출 행동을 보임으로써 남한 사회에서 심각한 남남갈등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행사를 제의한 북한은 겉으로는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정치적 꼼수를 품었고, 남한 당국은 방북 대표단의 구성에 이적단체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옥석을 가리지 않은채 서둘러 방북을 승인했었기 때문에 나온 예정된 결과였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행사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2001년 초에 남북이 합의한 바에 따라 북한은 8월 10일 남측에 팩스를 보내 8·15축전의 개·폐막식 행사를 평양 통일거리에 새로 건립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 갖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남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북한은 남측 단체들을 선별적으로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8·15축전 일정에 맞춰 북한이 하루전인 14일에 준공한 '3대헌장 기념탑'은 조국통일 3대원칙(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등 북한의 통일방안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로서, 6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높이가 30 미터나 되는 대형 선전물이다. 북한은 이곳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개·폐막식을 갖고 싶어했다. 남측 참가자들에게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이를 승인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우자 북측은 참관단 자격으로 남측 단체가 참가해도 무관하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북측의 이러한 입장을 전달받은 우리정부는 3대헌장기념탑에서의 공동행사는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파악하고 기념탑 행사 불참을 조건으로 남측 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했다. 특히 남측 행사 추진본부로부터는 정부 승인 범위를 벗어난 방북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고 방북을 허용한 것이다. 3대헌장기념탑 참관은 북한의 통일원칙을 우리측이 인정하고 공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정부가 허용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념탑을 참관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방북한 일부 대표단이 약속을 어기고 참관을 강행한데다, 강정구 교수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으로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기면서 행사는 남남갈등으로 치달았고 결국 문제가 정치권으로 비화해 당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해임결의되는데 까지 이어졌다.
이날 돌출 행동을 보인 통일연대(6·15공동선언 실천과 한반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는 그해 3월15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노총,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등 반미친북 단체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조직이다. 친북단체끼리 급조해 구성된 통일연대는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결 받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이종린을 상임의장으로 추대해 민화협, 7대 종단과 함께 '2001년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에 참여하게 된다. '이적단체'인 범민련과 한총련의 구성원 일지라도 통일연대 소속으로 방북을 신청할 경우 이를 승인하기로 정부가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정부가 불허한 3대기념탑 개막식 행사에 강정구 교수, 소설가 황석영 등 통일연대 소속 1백50명이 참관을 강행했고 나아가 강정구씨의 '만경대 필화 사건'으로까지 발전해 남쪽에서 이를 지켜보았던 국민들이 연일 규탄 집회를 여는 등 갈등이 폭발했다.
1차 8·15통일축전은 이처럼 파행과 얼룩 속에 남남갈등과 반북의식을 키우는 민족분열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당초의 행사기획 의도와는 정반대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2002년 열린 두 번째 행사는 남쪽의 인천직할시에서 열렸다. 6·29 서해교전 직후에 열린 두번째 8·15통일축전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여전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열린 행사였던만큼 서로가 서먹한 가운데 왜 만났는지의 의미도 찾지 못한채 형식적으로 치뤄졌다. 그리고 2003년 행사는 2001년에 이어 다시 평양에서 개최됐다.
2004년에는 북한이 남한 정부의 대규모 탈북자 입국을 이유로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한 가운데 북측이 8·15 축전에 이적단체인 범민련 등의 참가를 요구해 열리지 못했다.
탈북자 대규모 입국으로 인해 한동안 중단됐던 남북관계가 2005년 5월 남북 차관급회담을 계기로 재개되면서, 6·15선언 5주년 행사가 평양에서 열리고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7면담이 성사되면서 2005년 8·15통일축전 행사는 북측이 처음으로 당국 대표단을 파견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렸다.
특히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은 이 때 국립현충원과 국회를 방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우리가 현충원을 방문했으니 당신들도 방북하면 혁명열사능 같은 성역을 방문해야 한다'는 음모가 숨겨져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같은 요구는 이후 여러차례의 남북간 공식 대화에서 북측이 공개적으로 제의하기도 했다.
2005년 8·15통일축전 행사는 또 남측 당국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축구대회에 특정 시민단체 회원에게만 입장권을 배부하고 경기장 내에서는 태극기와 대~한민국을 연호하지 못하도록 해 보수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고, 대표 응원단인 붉은악마들은 아예 응원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5년간 남북을 오가며 4번이나 열린 8·15통일축전은 이처럼 민족을 하나로 묶기는커녕 갈등과 분열과 상처만 남기는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쪽은 이 행사를 통해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도 이적단체나 친북반미 단체만을 상대하는 한편으로 보수단체는 철저히 배격하는 남남분열 책동을 부려왔고, 남한 당국은 북한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행사를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또 남쪽의 참가단체들은 이 행사를 통해 북한과 손잡고 반미투쟁하는 기회로 이용해 왔다. 금년 행사가 무산된 것이 오히려 잘됐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그러나 남북공동행사는 무산되었지만은 남측이 단독으로 하는 8·15통일축전은 한총련, 범민련, 통일연대, 민노총 등 이적단체 내지는 반미친북단체들에 의해 연세대에서 진행 중에 있다.
연세대학교 당국과 교수평의회가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힌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이들의 통일축전은 여전히 '반미'를 앞세운 채 '민중총궐기투쟁'을 결의하는 정치적 행사다. 대다수 학생과 시민들이 외면한 가운데 진행되는 '자기들끼리'만의 통일축전은 결국 민족을 분열시키고 통일을 방해하는 '반민족·반통일행사'임을 그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 통일은 우리민족 앞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konas)
김 철 기자 konasnet@kor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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