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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제 반대만하지 말고 희망주는 대안을 제시하여야

Written by. 김이석   입력 : 2006-08-21 오전 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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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부모단체는 찬성, 전교조는 반대하는 교원평가제

 교육부의 교원평가제 도입에 대해 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은 이에 결사반대하면서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학부모단체들은 이러한 전교조의 행태를 평가의 무풍지대로 남으려는 집단이기주의로 보고 교원평가제 관철을 외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2. 학부모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분노

 이런 학부모단체의 외침의 밑바닥에는 분노가 숨어있다. 자녀들이 평준화된 학교에서 평준화 이전보다 더 좋은 품성을 함양하고 있다는 근거는 찾기 어려운 가운데, 입시학원 등 학교 이외의 교육기관을 전전해야하고 여기에 드는 엄청난 비용은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적재적소를 찾아주는 기능을 못하다보니, 자기 자신들은 구조조정의 여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면서 허리가 휘게 자녀의 교육비를 대었건만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여도 취직자리를 찾을 가망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교원들은 그들이 내는 “성과”와 상관없이 정년까지 안정된 보수를 보장받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의 주장처럼 학부모들의 분노는 상당부분 교사들이 아니라 교육정책 당국을 향해야하고 교원평가제는 교사들에게 교육정책의 실패를 전가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교조가 평준화와 같은 공교육의 부실을 부채질한 정책을 옹호하면서 교육당국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구나 학부모의 분노를 헤아리지 않은 채 결국 학부모의 호주머니에서 갹출될 교육재정의 획기적 증대를 요구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교육을 돈의 잣대로 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의 투입이기 때문이다.

 3. 교원평가제도: 평가의 몇 가지 측면들

 주관식 문제를 채점해보면 평가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공정성을 위해 미리 기준을 정하지만 의미 있는 정도의 차이가 아님에도 다른 등급을 주어야 할 때 고통을 느낀다. 교원평가제는 사람에 대한 평가이므로 이런 주관식 시험의 채점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평가를 하는 주체에 학부모가 포함될 경우 교수와 학생처럼 평가하는 쪽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평가 결과에 대한 강한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사실 교원평가제를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느끼는 교사들을 대변하여 교원단체들은 교원평가제를 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평가자의 전문성 부족, 교사간 협력의 상실, 자의적 통제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 등을 내세워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고 있다.

 (1) 평가의 주체와 전문성: 의사와의 비교

 누가 평가할 것인가? 이는 평가에서 언제나 핵심적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교원평가제에서도 평가의 주체 속에 학생이나 이들의 대리인인 학부모는 제외되어야 한다고 보는 이들은 전문직인 교사를 비전문가들이 평가하려는 것은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를 평가하려고 하는 것과 같이 무모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평가하려는 것은 교직이 의사직과 다름없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어떤 형태로든 직간접적으로 교육, 혹은 교사에 대한 평가에서 배제될 수 없는 존재이다.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어떤 교육이 좋을지 스스로 판단하기는 무리라고 한다면, 결국 “학생의 장래에 가장 지속적인 관심을 쏟을 학부모”가 이들을 대신하여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정치의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사람들은 투표로 정치인들을 선출한다.

 얼핏 생각하면 병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환자들은 의사들을 평가할 수 없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이 의사들을 평가한다. 과거의 진료와 치료를 통해 나타난 결과들이 쌓여 의사들의 평판이 형성된다. 환자들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결과를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쌓인 평판이 좋은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는 행동을 통해 의사들을 평가한다. 환자들은 어느 의원을 다녀야 한다고 규제받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의사로 바꿀 수 있다. 이에 비해 학생들은 배정된 학교에 얽매여 쉽게 다른 학교로 옮기지 못한다. 그리고 졸업생들이 사회에 하는 기여에 따라 학교의 평판이 정해지는 과정이 평준화를 통해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 혹은 학부모들은 환자들이 의사를 발을 통해 평가하는 정도만큼도 평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물론, 학부모가 직접 교사 개개인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여부는 학부모는 단지 학교의 평판에 근거해 자녀가 다닐 학교를 선택할 권한만 주고, 교사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해당 교사에 대한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예컨대 교장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지의 문제와는 구별된다. 후자의 경우 교사에 대해 직접 평가하는 사람은 교장이며, 학부모들은 학교를 선택함으로써 교장을 선택하고 간접적으로 교사들을 평가하는 셈이다.

 (2) 동기부여의 환경과 자의성의 최소화

 어떤 형태의 제도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 교장이 정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선생님을 뽑고 그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인지 아니면 자의적으로 교사들의 통제에 이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사립학교의 이사장과 결탁하여 음성적으로 돈을 받고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있을지 달라진다.

 좋은 타자였던 타격코치가 좋은 타자 재목을 알아보고 교사의 경험이 많았던 교장이 더 좋은 교사를 알아볼 개연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재목감을 알아보려는 마음을 항상 깨어있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교사를 선발하여 학교에 대한 좋은 평판을 얻을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게 되고 사회적 명예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명성과 무관하게 학생들을 배정받는 경우와 이런 경각심이 달라질 것은 명확하다. 이런 동기부여가 잘 되어있는 환경 아래에 있을수록 교장의 교원평가가 자의적 통제의 수단이 되는 폐해도 최소화될 것이다.

 의사가 정성껏 환자를 살피느냐에 따라 제대로 진료되고 치료가 될 가능성이 확연히 달라지듯이 교장선생님들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유지하고 학생들도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교육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것임은 물론이다. 의사가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것은 일정부분은 의사로서의 사명감이고 이를 보람으로 여기는 데에서도 기인하겠지만, 일정 부분은 분명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환자들이 자신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환경 아래에서 교육에 적합한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3) 교원평가제와 교사간 협력의 상실

 학생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교사들 사이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교원평가제는 이런 협력을 파괴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런 협력의 상실 문제와 관련된 것이 “여러 사람이 동시적으로 혹은 순차적으로 기여하여 어떤 결과를 나타날 때 그 결과에 대한 각자의 기여를 어떻게 평가해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교사들의 평가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며, 그 해결방법도 존재한다. [그 한 예가 Holland의 버킷-브리게이드-알고리즘(Bucket-Brigade-Algorithm)이라는 기여배분방식(credit rationing system)이다.] 즉, 좋은 성과를 낸 학교의 모든 구성원에게 성과를 배분해주고, 학교 내부에서도 성과를 많이 낸 학년과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주는 식으로 이를 반복하면 각자가 기여한 부분이 나름대로 평가되며, 동시에 협력의 상실이라는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이런 결과를 내는 데 “책임이 있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나누어준다.)
이런 방식으로 평가를 계속하면 교사들은 “학교의 명성”, 그 중에서도 자기 학년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동기를 가지므로 서로 협력한다. 사실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학교의 명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동기를 박탈하는 데 있으며, 교사들 사이의 협력이 손상되는 것은 협력을 통해 명성을 높이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평준화된 환경에서 그렇다. 만약 전교조가 교사들 사이의 협력의 상실을 걱정한다면, 교원평가제 반대에 머물지 말고 학교의 명성이 중요해지도록 하는 조치를 요구했어야 한다.

 4. 교원평가제의 최소한의 기능: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며 반대하여야

 전교조의 말처럼 교원평가제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교원평가제를 통해 공교육의 질적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이것은 지나친 낙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는 지금의 주어진 제도 아래 최소한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려는 몸짓으로 볼 수 있다. 청강을 한 과목은 학점을 정식으로 신청한 과목과는 달리 마지막 순간 정성들여 시험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그 과목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교원평가제도의 도입도 청강을 할 때의 느긋함을 학점을 이수해야할 때의 긴장으로 바꾸고자 하는 몸짓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작은 자극에 불과할 것임은 분명하지만 학부모들은 여기에서 본질적인 개혁을 기대할 희망의 싹을 보고 싶은 것이다. 전교조의 교원평가제 반대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학부모들이 교원평가제에서 발견하는 희망의 싹을 다른 대안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평등주의의 덫에 빠진 전교조가 이런 대안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교육재정의 획기적 증대를 되풀이해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재정을 늘리더라도 그만큼 과외비를 절약할 수 있다든가 아니면 그만큼 자녀들이 인생을 더 풍성하게 살게 된다는 확신은 아무 것도 없다. 교원평가제가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좀 더 파고 들어가 이를 해소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고등학교 평준화 폐지,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선택권 보장, 학교의 학생선발권 보장 등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에 대해 많은 제안을 하고 있다. 전교조가 이런 대안의 제시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학부모들로서는 교육의 보다 본질적인 개혁의 신호탄으로 믿고 싶은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고 단지 교육재정 확대만 외친다면, 학부모의 분노는 더 차곡차곡 쌓여 폭발할 날을 기다릴 것이다.(konas) (출처: 자유기업원 http://cfe.org)

 김이석(한국싸이버대학교 겸임교수, 경제학)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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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공선생(joung-dm)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 하지 않는가? 앞날을 이끌어 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고작 하는 짓거리가 자기 밥그릇이나 챙길려는 모습이니 온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으로 돌아보기를...</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8-21 오전 9: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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