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메모리얼
십년 후 한 이라크인 여행객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이라크전 파병 기념비에 새겨진 이 같은 글을 읽을 것입니다. 한국의 비전투병들은 후세인 잔당과 게릴라들의 공격대상이 되어 안타깝게도 전몰하였습니다. 한국은 그들의 목숨을 헛되게 할 수 없어 전투병을 파견하면서 전쟁에 점차 깊숙이 빠져들었습니다. 곧 끝날 것만 같은 전쟁은 그 후 수 년이 지난 후에야 완전히 끝났습니다.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들에게는 어느 쪽이 승리했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명분에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래 지속된 전쟁에는 양쪽 모두 많은 희생자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야만적인 전쟁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고 어리석은 패자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국가 손익 계산이 없는 순수한 반전주의에는 휴머니즘적인 숭고한 보편적 가치가 있습니다.
한편 전쟁불가피론자들에게는 무력없이 자유와 평화가 불가능합니다. 국제 정치외교적 노력도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한계를 갖고 있지요. 때로 직접적인 무력충돌이 없이 외교적으로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실 무력의 잠재적인 힘에 의해 해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는 이를 위협하는 세력과 끊임없는 무력시위와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와 자유의 획득에는 언제나 피로 얼룩진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위의 두 가지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논리도 있고 설득력도 있습니다. 문제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선택과 신념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재보고 따져보았자 상대 주장을 완전히 제압할 완벽한 논리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단순하지만 결국 양자택일적 선택만이 주어지게 될 뿐이죠.
현재 한국은 이라크 파병 문제로 파병론과 파병반대론이 대치하며 여론이 두 동강 나 있는 상황입니다. 대통령, 정부, 국회의원들은 파병문제에 있어서 국익을 우선하겠다고 말하면서 국내 여론과 미국의 눈치보기에 바쁩니다. 파병론자나 파병반대론자도 모두 국익을 내세우고 손익계산서를 만듭니다. 모두들 파병부대 성격과 규모 및 파병지역을 결정하느라 잔머리를 굴리고 있지요. 전쟁의 성격 규정과 가치, 윤리의 문제는 고려할 여유도 없습니다.
파병반대론은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국민 목숨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어디 있겠습니까. 파병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나든지 어떠한 전쟁 결과가 있든지 사람 목숨을 비참하게 앗아가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이상주의적 평화주의 노선은 충분히 그 정당성을 보장받습니다.
그런데 전쟁과 국제정치는 현실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파병을 강요하지 않으며 한국의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내심 많은 전투병 파병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한국전에서 많은 희생을 하고, 그 후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었다는 피의 부채를 떠 안고 있습니다. 한국은 주권 국가이지만 자주 국방을 하지 못하고 국방, 외교, 경제적으로 미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전략적 사고를 한답시고 잔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하나 파병신중론은 약자의 시간벌기식 눈치작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젠 확실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파병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단 둘이 담판지어 결정할 사안도 아닙니다. 대통령이 전투병 파병결정에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국민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그런 국민 투표가 대통령 재신임 투표 같은 것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있겠죠. 대통령의 책임 부담도 덜 수 있구요.
사실상 파병반대론자의 주장은 언제나 파병전이나 파병 후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파병반대론은 파병론에 비해 주장하기 쉽고 논리적 근거나 정당성을 세우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도 적고요. 파병하지 않음으로써 향후 떠안게 될지 모를 경제, 외교, 국방 차원의 부담이나 부정적 영향이란 것도 사실상 책임을 물을 정도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설사 그것들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 국민의 목숨을 빼앗지도, 자국민 목숨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보편적 가치를 지켰다는 윤리적 우세를 압도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파병론자의 주장은 상황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을 뿐입니다. 파병론은 전쟁 개입으로, 이라크에 자유민주주의와 평화가 정착되고, 한국군의 희생이 최소화되면서 한국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재확인하며 대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게 될 때에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죠. 그러나 전쟁과 전후 재건의 문제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파병론은 이렇게 많은 부담과 조건을 갖고 제한적인 정당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파병 논란에 있어서 어떠한 주장도 자국민의 아들과 딸들을 이국 땅에서 피흘리며 죽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주장도 국익을 도외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파병문제에 있어서 상대 논리를 비약시켜 과장시키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비전투병 파병이나 전투병 파병이나 이미 전쟁에 개입한 것은 마찬가집니다. 비전투병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누구를 돕기 위한 파병입니까. 눈가리고 아웅하며 몸 사리고 이것저것 눈치보다가는 국론이 혼란상태에 빠지고, 정책없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모습만 비춰질 뿐입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주변의 눈치를 그만 보고 정책혼선에서 하루빨리 탈피하기 바랍니다. 이라크는 전쟁 중이고, 한국은 휴전 중입니다. 전쟁과 파병문제를 현실로 볼 것인가, 혹은 이상적 가치로 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후에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제가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비 앞에서 착잡한 심정으로 서있을 때 아일랜드 방송사의 카메라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코리언이냐고 물어보면서 기념비 앞에서 제 가족과 한국말로 전쟁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그들이 전쟁을 어떻게 보고, 저의 대화 장면을 어떻게 편집하고 바라볼 것인지도 그들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끝으로 진실을 고백하고 글을 끝마쳐야 할 것 같군요. 서두에서 말한 가상 기념비에 새긴 글은 실제로는 수도 워싱턴 한복판의 링컨 기념관 앞 공원에 있는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글임을 밝힙니다.
워싱턴에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비는 한국 땅에 뿌려진 뜨거운 피의 영혼들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자리가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습니다.
나, 여기 왜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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