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눈물
IMF한파가 황량한 겨울바람과 함께 몰아치고 있다. 미증유 거품경제의 단꿈에 취해있던 대다수 국민들은 갑작스레 치솟은 돌개바람 한복판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에 언론은 덩달아 온갖 현학적인 신조어를 남발하여, 가뜩이나 헷갈리는 민심에 부채질을 일삼고 있다. 먼 길일수록 돌아가라 하였건만, 귀감이 되기는 고사하고 불안감만 조성하여 어쩌자는 노릇인지 묻고싶다.
허기(虛飢)하나 메워보려고 풀죽으로 연명했던 지난 60년대의 암담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사 차라리 영광에 겨운 엄살에 불과한데 마치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를 방불케 한다. 영원한 기쁨이 존재하지 않듯이, 영원한 절망또한 없는 법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남의 탓 하기 이전에 각자 스스로에 정직해야 할때이다. 논어에 君子는 모든것을 스스로에서 찾고, 소인배는 남에서 찾는다고 했다. 수십년 공든 탑 무너뜨린게 결코 남의 일 일수는 없다.
우리 선대들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죽도록 피땀흘린 기본정신은, 오직 가난을 벗어나자는 일념이었지 고작 남 탓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지는 않았다. 제 3공화국 초기 나라경제에 얽힌 애화(哀話) 하나가 유달리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당시 경제건설을 위한 외자유치가어렵던 나머지 서독에다 광부며 간호사들을 보내놓고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눈물겨운 차관을 얻어왔었다. 그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배고픈 아버지였고, 아들이며, 누이들로서 이땅의 이름없는 구국전사들 이었다.
비록 이역만리 타국이었지만 그나마의 일자리를 얻은 기쁨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여 독일국민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독일정부는 박대통령을 국빈자격으로 초빙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인 외국 순방길에 타고갈 항공기조차 없던 처지였지만, 독일정부가 배려한 특별기로 분단된 극동의 약소국 대통령이 서독의 뤼브게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쾰른 본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 국민들은 가는 곳마다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광부와 간호사들의 나라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 양국 정상은 우리 품삯꾼들이 일하는 광산촌을 방문했다. 조국의 대통령이 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시꺼먼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로 환영식장으로 모여들었다.
연단에서 그들을 내려다본 박대통령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을 누르며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조국이 못살고 가난하여, 이렇게 낯선 이역만리 타국에까지...”하고는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더 이상 연설을 이어가지 못했다.
환영식장은 예기치 않은 울음바다가 되고, 대통령은 그 석탄투성이의 광부들을 껴안고 위로하느라 몇 시간이나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 “각하! 저희들만 남기고 가십니까...” 운집한 광부들의 울음섞인 인사를 뒤로한채,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차창을 바라보는 박대통령의 눈에선 비오듯 눈물이 쏟아지고, 70세 노장의 뤼브게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어 아들 같은 박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빴다. ‘울지마시오. 잘사는 나라를 만드시오!’하는 위로를 받으면서 박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두주먹을 불끈쥐고 있었다. 이는 결코 픽션도,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그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백영훈 선생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며 필자 역시 눈시울이 젖었다. 한 지도자의 사후에야 알려진 내핍의 흔적들이, 진실의 육성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잘 살아보자’는 그의 신념과 이상엔 거짓이 없었다. 물한방울도 아끼고자 손수 변기에 벽돌을 넣었고, 유류파동이 나자 유일하게 즐겼던 수영장을 폐쇄해 그 자리에서 돈안드는 배드민턴을 치며 운동량을 메꾸었던 사람, 이같은 지도자의 작은 솔선수범이 바로 찌들었던 가난을 몰아내는 원동력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우리는 가공할 기적을 만든 민족이다. 한때, 사우디 국왕은 우리나라 근로자들을 바라보면 삶의 행복을 절로 느낀다고 했다. 웃통을 훌훌 벗은채 열사의 나라에서 흔쾌히 비지땀을 흘렸고, 일과가 끝나면 조국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국기 하강식에 임하는 투지에 찬 모습은 한 나라의 국왕까지 감동시킬만큼 성실한 민족혼의 소유자들이었다. 부지런한 부자는 하늘도 못말린다고 하였다.
근면성과 기업의욕이 세계 으뜸인 우리를 망가뜨린 근본원인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마치 몽유병 환자같은 정치선동패들과 얼치기 지식인들의 대안없는 부추김에 우리 모두가 얼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진작 살폈어야 했을 국민의 민도는 뒷전이고, 우리네 의식의 형편상 아직은 때이른 민주화만이 살길인 양, 우직하고 귀여린 근로자들을 자극하고, 기업가를 매도하여, 설익은 풋과일에만 혈안이 되어, 그저 덮어놓고 한통속이었던 업보를 톡톡히 치루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심지어 고속도로 건설현장의 불도저 밑에 누워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던 장본인들과 그 문하생들, 그들이 아직도 이나라 정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상상도 못한 비싼 값을 치루고서야 지금 그들이 명백한 정치적 미숙아임을 뒤늦게 가늠하게 된 책임 또한 우리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소위 문민으로 미화되어온 민주화 세력, 수구반동세력으로 격하되어온 근대화 세력간의 마지막 힘겨루기가 지난 대선전에서 조심스럽게 드러났다. 달러만 구걸해다 구멍난 경제를 메꾸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국가경영의 비젼을 가진 지도자와 집권세력을 올바르게 선택하여 우리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일이다.
이제는 철학부재의 지도자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199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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