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의 實益과 당위성(국방일보)
Written by. 강석승
입력 : 2003-11-13 오후 3:32:21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의해 결정된 이라크 파병 문제다. 이라크에의 추가파병 문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규모나 형태·시기 등을 놓고 다양한 입장이나 어프로치(접근론)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한 실익(實益)과 정당성은 여러 가지 점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필자는 우선 우리의 냉혹한 분단현실과 연계하고자 한다. 즉 우리의 국력이 세계 11위권에 육박했다고는 하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가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부문은 ‘안보’ 부문의 정책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라크 파병의 단초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한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한다면 ‘민족상잔의 대비극’으로 불리는 6·25전쟁이 재연될 수 있어 이는 결국 한반도의 초토화 내지 민족공멸의 처참한 결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 하에서 우리 내부의 현실만을 내세워 동맹국인 미국이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이라크 파병을 거부한다면 반세기가 넘고 있는 혈맹적인 한·미관계에 금이 갈 우려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안보가 취약성을 드러낸다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 영향은 경제에 거의 그대로 투영될 것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는 치유하기 힘든 깊고도 굵은 주름이 파일지 모른다.
또한 우리는 6·25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친한 친구는 어려울 때 그 진가(眞價)가 나타난다”는 정황처럼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반대론을 펴는 사람들은 “애당초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은 명분이 없는 전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전투병력 파병도 명분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의외로 그 해답은 간단히 나온다. 즉 사담 후세인이 이끌었던 이라크는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압과 압제를 일삼아 온 독재국가였으며 이런 상태 하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라크 국민들은 고귀한 인권을 유린당하며 ‘인간다운 삶’을 억압당해 왔던 것이다.
특히 2년 전 수천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9·11테러 사건의 참상을 회고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화합과 평화의 시대에 이라크와 같은 테러지원국이자 ‘악의 축’인 1인 장기독재국가를 방치한다는 것이 미구(未久)에 얼마나 엄청난 비극과 참상을 가져오게 할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한다면 1960~70년대의 베트남전 참전에서 얻은 것 못지않은 우리 군의 전투력 향상과 실전 경험 배양에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주 실리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각종 건설·통신공사 등 전후 복구사업에 참가할 수 있는 우선순위를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70~80년대 우리가 중동시장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수 있음과 동시에 이런 특수(特需)를 이용, 많은 노동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실업문제도 해결하는 등 유·무형의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외에도 매우 현실적인 당위성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이 제출한 ‘이라크 사태와 관련한 수정 결의안’을 이미 10월 중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결의안은 미군 사령관의 다국적군 구성을 인정하고 이라크의 재건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하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는데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이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이라크 파병은 조속히 결정돼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그래서 새로운 비상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대우교수·行博 강석승>
이런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한 실익(實益)과 정당성은 여러 가지 점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필자는 우선 우리의 냉혹한 분단현실과 연계하고자 한다. 즉 우리의 국력이 세계 11위권에 육박했다고는 하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가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부문은 ‘안보’ 부문의 정책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라크 파병의 단초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한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한다면 ‘민족상잔의 대비극’으로 불리는 6·25전쟁이 재연될 수 있어 이는 결국 한반도의 초토화 내지 민족공멸의 처참한 결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 하에서 우리 내부의 현실만을 내세워 동맹국인 미국이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이라크 파병을 거부한다면 반세기가 넘고 있는 혈맹적인 한·미관계에 금이 갈 우려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안보가 취약성을 드러낸다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 영향은 경제에 거의 그대로 투영될 것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는 치유하기 힘든 깊고도 굵은 주름이 파일지 모른다.
또한 우리는 6·25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친한 친구는 어려울 때 그 진가(眞價)가 나타난다”는 정황처럼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반대론을 펴는 사람들은 “애당초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은 명분이 없는 전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전투병력 파병도 명분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의외로 그 해답은 간단히 나온다. 즉 사담 후세인이 이끌었던 이라크는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압과 압제를 일삼아 온 독재국가였으며 이런 상태 하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라크 국민들은 고귀한 인권을 유린당하며 ‘인간다운 삶’을 억압당해 왔던 것이다.
특히 2년 전 수천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9·11테러 사건의 참상을 회고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화합과 평화의 시대에 이라크와 같은 테러지원국이자 ‘악의 축’인 1인 장기독재국가를 방치한다는 것이 미구(未久)에 얼마나 엄청난 비극과 참상을 가져오게 할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한다면 1960~70년대의 베트남전 참전에서 얻은 것 못지않은 우리 군의 전투력 향상과 실전 경험 배양에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주 실리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각종 건설·통신공사 등 전후 복구사업에 참가할 수 있는 우선순위를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70~80년대 우리가 중동시장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수 있음과 동시에 이런 특수(特需)를 이용, 많은 노동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실업문제도 해결하는 등 유·무형의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외에도 매우 현실적인 당위성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이 제출한 ‘이라크 사태와 관련한 수정 결의안’을 이미 10월 중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결의안은 미군 사령관의 다국적군 구성을 인정하고 이라크의 재건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하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는데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이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이라크 파병은 조속히 결정돼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그래서 새로운 비상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대우교수·行博 강석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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