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경제협력, 서독의 '티포태(tit for tat)'전략을 본받아야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이전’과 핵실험을 한 ‘이후’의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 그것은 마치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기 이전의 상황과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다음의 상황이 다른 것과 같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이브가 순진무구했다면,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다음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들은 지상낙원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정부가 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상식의 정치’를 벗어난 행태 바로 그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계속되고 있고 개성공단 경협도 지속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포용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때아닌’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혹자는 햇볕정책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그렇다.
햇볕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 햇볕정책을 ‘도그마’처럼 믿고 집행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춤은 죄가 없다. 나이트클럽에서도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시점에서 개성공단에서 춤을 춘 사람은 그 무신경 때문에 비판을 받아야한다. 지금은 춤출 때가 아니라 반성해야할 때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종업원과 춤’을 춘 것이 ‘늑대와 춤’을 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여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 핵실험이 위기임에 분명한데도 위기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핵불감증’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안보불감증’이라고 해야 하나. 남한지역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면서도 검출량이나 장소는 공개하지 않는다.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도 정부가 밝히지 않으니, 국민들만 불안해 할뿐이다. 정보공개요구라도 해야 할 판이다.
노무현 정부의 위기불감증이 도를 넘은 것인가. 국민들이 ‘사재기’에 나설까봐 그런 것인가. 사실 위기를 관리하려면 위기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정부나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층빌딩에서 작업을 하면서도 안전모를 쓰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면서도 안전모를 쓰지 않는다. 왜일까. 안전불감증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식 때문이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긴장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노무현정부가 인지부조화 현상에 빠진 것은 포용정책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강해 포용정책의 실적에 비하면 핵실험도 큰일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혹은 핵은 핵이고 포용정책은 포용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한국이 위기 속에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평화 속에 산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안쓰럽다.
생각해보면, 북한의 무장을 해제하겠다는 의미의 햇볕정책은 원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바람과 해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고 했었다. 그것은 분명 군사적 긴장완화와 무장해제다. 그런데 우리의 햇볕정책은 오로지 경제협력정책뿐이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후에 활성화된 것은 경제협력일 뿐 군사적 긴장완화조치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서해교전과 같은 것들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포용정책을 추진해왔던 사람들은 군사적 긴장완화조치도 없었는데,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한마디로 ‘눈뜬장님’이었던 것이다.
지금 오히려 파산된 햇볕정책에 책임을 져야할 전도사들이 더욱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어 유감이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온 평화가 햇볕정책덕분이었다느니, 혹은 상징적인 대북제재라도 하면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날것처럼 겁을 준다. 그리고 북한 핵에 재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전쟁광이 아니냐”며 몰아붙인다.
왜 이렇게 국제관계의 상식과 순리를 벗어난 사고와 행태가 판을 치는 것일까. 이렇게 된 데는 “남북문제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 쳐도 된다”는 의식이 그 주요원인이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은 항상 고자세를 취했고 우리는 북한이 받아 주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최소한의 상호주의도 실종되었다.
액셀로드(R. Axelrod)는 효과적인 ‘상호주의’를 ‘티포태(tit for tat)’전략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처음에 먼저 협력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좋은 정책에 협력하고 나쁜 정책에는 비협력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의 경우, 북한의 나쁜 정책에도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우리에게 오히려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기막힌 정책을 써왔다. 그러면서 햇볕정책전도사들은 그 사례로 전가의 보도처럼 서독을 든다. 그러나 통일 전 서독은 철저한 ‘티포태’전략을 사용했다는 점을 잊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핵실험이전처럼 그대로 산다면, 인질범에 사로잡혀 겁에 질려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인질의 신세를 곱씹을지언정 당당하게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포용정책의 전도사들은 최소한의 대북제재라도 하면 전쟁이 날수 있을 것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런가.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평화를 이룩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금강산관광을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하면 이 땅에 평화가 오는가. 또 개성공단에서 종업원과 춤을 추면 평화가 오는가. 또 북한과 민족공조를 하면 북한 핵은 우리를 겨냥하지 않는가. 그러나 평화는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사는 입증한지 오래다. 돈을 대주고 미소작전을 쓰면 오히려 평화보다 전쟁을 초래한다는 것을 2차대전전의 뮌헨협정보다 먼저 로마의 베제티우스가 지적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전쟁을 준비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제재는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경제제재조차 하지 않고 협력만 계속하면 국제사회는 물론 북한으로부터도 ‘평화애호가’라기보다는 ‘겁쟁이’라는 비웃음만을 살뿐이다. 또 북한의 요구는 더욱더 거세질 뿐이다. 아예 핵무기개발비용을 대라고 하지는 않을까. 금강산 구경을 가고 춤을 추면서 마치 태평성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또 크루즈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위안을 삼는다면, 자기착각에 빠지고 있다는 증거다. 적어도 우리가 평화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면, 금강산 관광이라도 잠정적으로 중단해야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안보국가가 될 수 있다.(Konas) (출처:자유기업원)
박효종(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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