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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후보자- 그의 '친북성향'에 분노한다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6-11-20 오전 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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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 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史實)이다. 그러나 이 상식을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주사파(主思派)들이다. 386세대라야 '주사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50∼60대의 '정신적인 주사파'도 적지 않다. 명색이 성직자 출신인 이재정(李在禎) 통일부장관 후보자에게서 그런 느낌이 묻어나는 것은 웬일일까.

 이(李) 후보자는 17일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6·25는 남침(南侵)인가 북침(北侵)인가"라는 국회의원(정몽준) 질문에 "여기서 규정해서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어 "수백만 동포가 희생된 6·25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회피하는 거냐. 역사적 사실은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라는 질타가 이어지자 "남침이란 사실은 이미 나온 것이다. 부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꼬리를 돌렸다. 그에게서 받아낸 답변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그것은 듣기에 따라서 '남침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또는 개인적으로는 '북침'으로 믿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지극히 모호한 반응이다. 이 같은 줏대 없는 답변은 지나친 '북한정권 눈치보기'가 아니라면 '좌파로서의 얼굴 감추기'일 것이다. 이처럼 확고하지 않은 대북관(觀)과 역사인식이 대한민국 안보 관련 부문 장관의 자질일 수는 없다. 

 북침설의 근원은 이렇다. 미국 시카고대의 수정주의 학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북침설을 지지하는 듯한 논리를 폈었다. 그는 당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었고 해방 당시 한국의 사회혁명은 외세와 정통성을 결여한 남한정부 때문에 좌절됐었다고 썼다. 이 책은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에게 '경전(經典)으로' 받아들여졌었다.

 6·25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에 대한 수정주의 관점의 연구는 이외에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최초의 주장이 한국 땅에서 운동권 외에는 뿌리내리지 못했던 것은 '전쟁을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가 아직도 우리 곁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북한의 남침을 증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르스 커밍스는 1997년 6월 방한 시 "나는 북침설을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입장을 바꾸었고, 그해 출간된 '한국의 양지'(1997)라는 새 저서에서 뒤늦게 '6·25 한국전쟁에 대한 김일성의 중대한 책임'에 대해 못박았다. 잘못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북한은 6·25전쟁을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공모에 의한 북침(北侵)에 대항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북한의 이 주장은 구(舊)소련에서 발굴된 수많은 자료로 인해 이미 오래 전에 날조된 것이었음이 입증됐다. 소련 측이 공개한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는 '수정주의적인 시각'을 무력화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국 역시 중국공산당 기관지 '백년조류(百年潮流)'에 한국전쟁 '북침' 주장을 철회하는 특집을 꾸몄었다. 그것도 이미 90년대 후반의 일이다. 한국전쟁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주도로 일어났으며, 모택동(毛澤東)의 동조는 스탈린에게 이용당한 대실수였다고 지적했다. 중국마저도 반세기동안 공식적으로 견지해온 북침 주장을 이처럼 포기했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재야단체 홈페이지 등에 '역사가 본 조선전쟁' '역사의 고발'이라는 제목이 붙은 방대한 자료집을 계속 올려가며 '남한의 북침(北侵)'을 주장해왔다. 북한만이 할 수 있는 파렴치한 짓거리이다. 이재정 후보자는 결과적으로 바로 그 날조된 메시지에 일종의 신앙을 갖고 집착하고있는 것이 된다. 

 그는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도 "역사가 할 것이며, 과거사(過去史)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자신의 이 같은 평가는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도 "현 북한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어줍잖은 답변이 이어졌다. 

 김일성(金日成)은 남침으로 남북한 양쪽 진영의 인명 피해만도 3백만 명(사상·행불·포로 등 포함) 이상을 기록하고 1000만 이산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 주범 아닌가. 그런데도 그에 대한 평가를 역사의 몫으로 돌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철저한 궤변'이다. 이(李) 후보자의 부정확하고 불분명한 역사 인식은 그의 이념적 바탕부터 의심하고 검증해보아야 할 지경이다.

 그는 또 "북한의 주체사상과 선군(先軍)정치가 북한 주민과 통일에 바람직하다고 보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도 "그것은 그쪽의 하나의 통치이념이다. 바람직한지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선군정치를 지지한다는 거냐"는 다그침 끝에 "그건 아니다"라는 답변이 이어지긴 했다. 실패한 북한체제를 기를 쓰고 옹호하지는 않았을망정 세습군주제(君主制)나 다름없는 북한 독재체제를 비난할 의사가 추호도 없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의에도 이(李) 후보자의 무성의하고 석연치 않은 불투명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4·19 혁명 이후에 군사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고 18년간 재임하면서 상당한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박정희의 치적(治績)에 견주어 볼 때 그의 평가는 사실상 '폄하(貶下) 이상'이다.

 싱가폴 이광요 전(前)수상은 그의 자서전에서 "아시아에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위대한 정치가 3인은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한국의 박정희·중국의 등소평이다"라고 썼다. 민주화 투사였던 백기완씨 역시 "박정희는 나 같은 사람 4000명은 괴롭힘을 받았으나 국민 4000만 명을 잘살게 해준 인물이다"라고 평했다. 이 두 사람의 평가가 '인간 박정희'의 진면목일 것이다. 

 이(李) 후보자가 중단된 남북 장관급회담의 재개 의사를 적절한 통로를 통해 북한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렇다. 북한의 7·5 미사일 도발에 아랑곳없이 열렸던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부산)에서는 북한 대표단장으로부터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준다"는 망언을 듣다가 결렬됐었다. 북한의 10·9 핵실험 도발 이후 북한 핵 위협 등은 여전한 현실에서 UN안보리의 결의사항 이행을 촉구하지는 못할망정 쌀과 비료 등 대북(對北) 퍼주기 명분을 만들기 위한 '알맹이 없는 회담'을 열자는 것은 대한민국이 북한 핵의 인질이 될 것을 자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후보자(62)가 성공회 사제(司祭) 서품을 받은 것은 지난 1972년  이다. 올해로 34년째이다. 그는 고려대 독문과 졸업 후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8년(그의 나이 44세 때)부터 신학대학인 성공회 신학교에 재직했었다.

 그는 재야에서 활동하다 99년3월 열우당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국민정치연구회 책임자 자리를 맡아 정치에 입문했으며, 그해 새천년민주당 창당작업에 참여하여 당 정책위의장으로 일하다 2002년 대선 때 선대위 유세본부장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섰다. 이번의 '장관직 내정'은 4년 전의 정치 도우미 역할에 대한 논공행상(論功行賞)인 것이다. 그는 당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아 노(盧)후보에게 전달한 혐의로 한때 구속됐던 인물이다.

 이 후보자는 한 라디오 인터뷰(10/18)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은 다른 나라의 예에 비추어 '필연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확대해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햇볕론'을 뛰어넘는 '친북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취임하기도 전에 이런 대북관(對北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후 그의 행보가 과연 어떠할지 지극히 우려된다. 그는 북핵을 제거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입으로만 평화를 외쳐왔다. PSI 불참 결정 등으로 한미관계가 악화되어있는 상황에서 그의 향후 행보는 이렇듯 한미우호에 찬물을 끼얹는 우매한 발언만 거듭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국민의 평균적인 의식수준보다 못한 그의 대북(對北)의식과 안보관이 놀랍기만 하다. 이 (李)후보자가 친북적 본색을 드러내어 국가안보의 위상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는지도  모를 우려를 덜기 위해서도 그의 좌파성(左派性) 여부를 철저히 규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도 기필코 저지되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이념적 비판의식이 수반되지 않는 해괴한 통일정책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는 없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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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북한빨갱이정권의 통일부수장인지 625전쟁을 김정일이 눈치보는 것인지 아니면 실재로 대북관에 문제가 있는것인지 판단이 안선다 전 국민이지켜보는 가은데 답변은 625전쟁시 목숨바친 호국영령과 부상자 참전유공자들의 공덕을 무색케하는 언행이였으며, 죄파운동의 선봉에선 신부임이 밝혀졌다 . 대한민국의 통일을 담당라기엔 대북관이 없으므로 직함을 박탈함이 옳을것 같으니 자질이 있는자로 교체함이 마땅하오!</title><

    2006-11-21 오전 10:17:58
    찬성0반대0
  • 빨갱이는 안돼    수정

    이재정은 안돼! 왜냐구? 빨강이니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1 오전 10:16:38
    찬성0반대0
  • 국민    수정

    이재정이 사제라고? 그 눈빛과 행색을 보아하니 사제가 가져야 할 순수함, 정직함, 진지함... 뭐 이런 것들 하고는 담 쌓은 놈이로구만 내 눈에는 사기꾼 아니면 양아치... 빨갱이 축에도 못 드는 빨갱이팔이 사기꾼이 틀림없어 보인다.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1 오전 10:14:28
    찬성0반대0
  • 부산블랙베르   

    통일안보의 의사결정을 주도할 장관을 이토록 불투명한 사람을 지정한 숨은 뜻은 무엇일까? 왜 노정권은 이토록 국민에게 불안을 주는지 정말 알 수가없구나</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1 오전 9: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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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공선생(joung-dm)   

    현 정부의 주요 실세들은 386 주사파들이 대부분이다. 요소 요소에서 정책 입안의 중요 부분을 이들이 맡고있는 셈이다. 이러니 어찌 제대로된 나라의 틀이 갖춰질 수 있겠는가? 이참에 좌익 책임자들을 몰아내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1 오전 9:10:02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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