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귀환 국군포로 故 조창호 (예)중위 鄕軍葬 치른다
장례식은 21일 오전 7시30분 분당 서울대 병원‥동작동 국립묘지 안치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6-11-20 오전 9:19:31
자신을 "돌아온 사자(死者)"라고 늘 표현했던 귀환 국군포로 1호인 조창호 예비역 중위가 별세했다. 19일 새벽 0시 30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76세를 일기로 직장암으로 사망한 것이다.
故 조창호 중위의 장례식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의 첫 향군장(鄕軍葬)으로 치러진다. 향군이 조 중위의 장례를 향군장으로 하게 된 것은 향군육성과 국가안보에 공로가 큰 사람이 사망할 경우 향군장으로 치를 수 있도록 지난 3월21일 '향군장 규정'을 제정했으며, 故 조 중위가 첫 대상자다. 박세직 향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손병익 사무총장이 집행위원장을 담당한다.
향군은 조 중위가 귀환한 지난 1994년 서해로 탈출해 귀환한 그해 12월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고 조씨에게 향군종신회원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故 조 중위는 1950년 연세대 1학년에 재학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 직속 포병 101대대 관측담당 소위로 참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1년 강원도 인제전투에 중국군에게 포로가 돼 43년 동안 북한에 억류됐다.
북한은 조 중위가 끈질긴 전향 회유를 거부하자 1952년 2월 '월남을 기도한 반동분자'로 몰아 12년 6개월간 덕천, 서흥, 함흥 등지의 수용소에 가뒀다가 1975년 중강진 구리광산으로 배치했다.
장기간 탄광노동으로 규폐증을 앓던 조 중위는 1994년 10월 가 1994년 목선을 타고 서해로 중국어선을 타고 탈출해 귀환했다. 그 해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역식을 하고 육군중위로 전역했다.
정부로부터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은 조 중위는 경기도 용인에 정착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윤신자(66세)씨가 남한에, 2남1녀는 북한에 있다.
故 조 중위의 장례식은 21일 오전 7시 30분 분당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거행되며 유해는 화장된 뒤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동작동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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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조창호 중위의 장례식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의 첫 향군장(鄕軍葬)으로 치러진다. 향군이 조 중위의 장례를 향군장으로 하게 된 것은 향군육성과 국가안보에 공로가 큰 사람이 사망할 경우 향군장으로 치를 수 있도록 지난 3월21일 '향군장 규정'을 제정했으며, 故 조 중위가 첫 대상자다. 박세직 향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손병익 사무총장이 집행위원장을 담당한다.
향군은 조 중위가 귀환한 지난 1994년 서해로 탈출해 귀환한 그해 12월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고 조씨에게 향군종신회원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故 조 중위는 1950년 연세대 1학년에 재학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 직속 포병 101대대 관측담당 소위로 참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1년 강원도 인제전투에 중국군에게 포로가 돼 43년 동안 북한에 억류됐다.
북한은 조 중위가 끈질긴 전향 회유를 거부하자 1952년 2월 '월남을 기도한 반동분자'로 몰아 12년 6개월간 덕천, 서흥, 함흥 등지의 수용소에 가뒀다가 1975년 중강진 구리광산으로 배치했다.
장기간 탄광노동으로 규폐증을 앓던 조 중위는 1994년 10월 가 1994년 목선을 타고 서해로 중국어선을 타고 탈출해 귀환했다. 그 해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역식을 하고 육군중위로 전역했다.
정부로부터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은 조 중위는 경기도 용인에 정착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윤신자(66세)씨가 남한에, 2남1녀는 북한에 있다.
故 조 중위의 장례식은 21일 오전 7시 30분 분당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거행되며 유해는 화장된 뒤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동작동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Konas)
정미란 기자 sori@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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