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교수 70%, 국보법폐지 나서
이재정 장관과 성공회대학교-(1)
Written by. 김성욱
입력 : 2006-12-02 오전 9:47:00
<이재정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성공회신학교(~93년)를 성공회신학대학(93년~94년), 성공회대학교(94년~)로 성장시키면서 88년에서 2000년까지 교장, 학장, 총장으로 성공회대를 이끌어 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左派학자들을 대거 등용, 대학을 左派논리의 産室(산실)로 만들었다. 아래에서는 左派이론의 판도라상자 역할을 하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대한 분석 기사를 시리즈로 게재하기로 한다.>
성공회대 교수들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많은 교수들은 국가보안법폐지를 비롯해 宋斗律(송두율)석방운동, 한총련합법화 등에 앞장서왔다.
2004년 10월27일 ‘국가보안법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에는 70여 명의 교수 중 무려 50명의 교수가 서명했다.
신영복氏를 비롯해 김동춘··김진업·김창진·박경태·신정완·유철규·이종구·조효제·조희연·정해구氏 등 당시 사회과학부 교수 11명은 全員 서명에 동참했다.
성명은 국보법을 “태어나서는 안 될 악법 중의 악법”“냉전수구세력 보호악법”“反민주악법”“反문화악법”으로 비난하며 국보법의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사회과학부 교수 전원 송두율 석방운동 나서>
2003년 10월 구속 수감된 宋斗律씨의 무죄 석방에도 성공회대는 앞장섰다.
같은 달 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에는 사회과학부 교수 11명 全員을 포함, 32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성명은 송두율 구속수감을 “민족적 자산의 탕진”“민주화운동 역사에 관한 능멸”“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모독을 넘어, 민주사회의 치욕”“분단을 고착화하고자 하는 보수우익집단의 메카시적 선동”으로 비난했다.
같은 해 11월3일 구성된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사회과학부 신영복 교수는 고문으로, 신정완 교수는 운영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 위원회는 2004년 7월21일 송두율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날 때까지 각종 기자회견·장외집회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당시 항소법원은 宋씨에 대해 “조선로동당 정치국후보위원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명력은 없다”면서도 “조선로동당에 입당해 대남공작을 하고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수행을 했다”고 판시했다.
국보법폐지와 송두율석방을 주장해 온 성공회대 교수들의 주장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宋교수의 초청은 지극히 적합하고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宋교수가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조직 등 민주화운동지원활동을 한 점에서 명백히 해외민주인사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희연 교수. 2003년 10월12일 오마이뉴스 기고문 中)》
《宋 교수 사건은 정치적 맥락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의 세 유지에 이용된 측면이 강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국보법 전면폐지를 위해 2004년을 ‘국보법 폐지의 원년’으로 만들겠다. (신정완 교수. 2003년 12월10일 송두율 석방 대책위 기자회견 中)》
《국가보안법은 출발부터 악랄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은 통일과 민주의 양심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저도 구호 하나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하라’가 아닌 ‘폐지하자’고 하는 게 맞습니다. (신영복 교수. 2004년 12월28일 명동일대에서 국보법 연내 폐지 촉구 행진 中)》
《조갑제나 김용서 같은 부류가 軍을 선동하고 쿠데타를 부추겨도 척척 무혐의 판정을 내리던 공안당국이 강정구 교수를 잡아들이겠다고 한다...다양한 견해를 보듬을 수 있는 것이 열린사회의 강점이다. 이를 스스로 파괴하자고 부추기는 ‘내부의 적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한홍구 교수. 2005년 10월10일 오마이뉴스 국보법폐지 릴레이기고 中)》
《‘조선’이야말로 대립갈등 부추기지 말라 문제는 그것(국보법폐지 반대)을 당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는 한나라당과 이런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과거 지향적’(A5면)이라고 딱지 지우는 조선일보가 국론을 대립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김서중 교수. 2004년 9월14일 국가보안법 보도 비평)》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남북은 서로 고무 찬양해야 합니다. (한홍구 교수. 2006년 7월19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이재정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성공회신학교(~93년)를 성공회신학대학(93년~94년), 성공회대학교(94년~)로 성장시키면서 88년에서 2000년까지 교장, 학장, 총장으로 성공회대를 이끌어 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左派학자들을 대거 등용, 대학을 左派논리의 産室(산실)로 만들었다. 아래에서는 左派이론의 판도라상자 역할을 하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대한 분석 기사를 시리즈로 게재하기로 한다.>성공회대 교수들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많은 교수들은 국가보안법폐지를 비롯해 宋斗律(송두율)석방운동, 한총련합법화 등에 앞장서왔다.
2004년 10월27일 ‘국가보안법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에는 70여 명의 교수 중 무려 50명의 교수가 서명했다.
신영복氏를 비롯해 김동춘··김진업·김창진·박경태·신정완·유철규·이종구·조효제·조희연·정해구氏 등 당시 사회과학부 교수 11명은 全員 서명에 동참했다.
성명은 국보법을 “태어나서는 안 될 악법 중의 악법”“냉전수구세력 보호악법”“反민주악법”“反문화악법”으로 비난하며 국보법의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사회과학부 교수 전원 송두율 석방운동 나서>
2003년 10월 구속 수감된 宋斗律씨의 무죄 석방에도 성공회대는 앞장섰다.
같은 달 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에는 사회과학부 교수 11명 全員을 포함, 32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성명은 송두율 구속수감을 “민족적 자산의 탕진”“민주화운동 역사에 관한 능멸”“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모독을 넘어, 민주사회의 치욕”“분단을 고착화하고자 하는 보수우익집단의 메카시적 선동”으로 비난했다.
같은 해 11월3일 구성된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사회과학부 신영복 교수는 고문으로, 신정완 교수는 운영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 위원회는 2004년 7월21일 송두율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날 때까지 각종 기자회견·장외집회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당시 항소법원은 宋씨에 대해 “조선로동당 정치국후보위원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명력은 없다”면서도 “조선로동당에 입당해 대남공작을 하고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수행을 했다”고 판시했다.
국보법폐지와 송두율석방을 주장해 온 성공회대 교수들의 주장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宋교수의 초청은 지극히 적합하고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宋교수가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조직 등 민주화운동지원활동을 한 점에서 명백히 해외민주인사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희연 교수. 2003년 10월12일 오마이뉴스 기고문 中)》
《宋 교수 사건은 정치적 맥락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의 세 유지에 이용된 측면이 강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국보법 전면폐지를 위해 2004년을 ‘국보법 폐지의 원년’으로 만들겠다. (신정완 교수. 2003년 12월10일 송두율 석방 대책위 기자회견 中)》
《국가보안법은 출발부터 악랄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은 통일과 민주의 양심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저도 구호 하나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하라’가 아닌 ‘폐지하자’고 하는 게 맞습니다. (신영복 교수. 2004년 12월28일 명동일대에서 국보법 연내 폐지 촉구 행진 中)》
《조갑제나 김용서 같은 부류가 軍을 선동하고 쿠데타를 부추겨도 척척 무혐의 판정을 내리던 공안당국이 강정구 교수를 잡아들이겠다고 한다...다양한 견해를 보듬을 수 있는 것이 열린사회의 강점이다. 이를 스스로 파괴하자고 부추기는 ‘내부의 적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한홍구 교수. 2005년 10월10일 오마이뉴스 국보법폐지 릴레이기고 中)》
《‘조선’이야말로 대립갈등 부추기지 말라 문제는 그것(국보법폐지 반대)을 당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는 한나라당과 이런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과거 지향적’(A5면)이라고 딱지 지우는 조선일보가 국론을 대립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김서중 교수. 2004년 9월14일 국가보안법 보도 비평)》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남북은 서로 고무 찬양해야 합니다. (한홍구 교수. 2006년 7월19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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