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5·16, 어떻게 볼 것인가?
필자가 외국을 방문하는 사이 국내에서 뉴라이트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사단이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다. 교과서포럼의 현대사 기술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듣고 있다.
주로 4.19와 5.16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성격규정은 학자에 따라 갈린다. 혹자는 전자를 아래로부터의 혁명, 후자를 위로부터의 혁명(특히 군사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전자를 혁명, 후자를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한다. 최근 모 유명 정치인은 이러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다소 다르다. 다음에서는 주로 법적인 측면에 착안하여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 보기로 한다. 정치학자의 수만큼이나 정치학이 많다는 이야기처럼 정치학적 관점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그것은 다소 주관성에 흐를 수 있기 때문에 법적인 틀 안에서 논의하는 것이 더욱 정당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4.19는 혁명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다’이다. 헌법에서 말하는 혁명의 의미는 ‘주권자의 변경’ 혹은 ‘헌법의 파괴’를 가리킨다.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군주의 주권에서 시민 내지 국민에게로 주권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바스티유 감옥 등 체제파괴적인 활동이 행해졌다. 볼쉐비키혁명은 짜르(혹자는 ‘쯔아’라고도 한다)의 절대주권에서 프롤레타리아로 주권이 옮겨갔다. 바로 이것이 혁명인 것이다. 단순히 정권의 하야나 정권의 교체가 혁명이 아님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혁명이 이루어지면 통치구조 등 국가운영 방식과 정치경제생활의 원리가 대폭 바뀌게 된다. 즉 정치사회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진다.
4.19 이전이나 이후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여전히 국민이다. 따라서 4.19는 혁명이 아니다. 만일 4.19가 혁명이 되려면 4.19 이후 헌법제정권력을 발동하여 대한민국의 주권자를 국민에서 ‘인민’ 혹은 ‘민중’ 혹은 ‘프롤레타리아’ 등으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주권자’라는 주권재민원칙 혹은 국민주권의 원칙은 민주공화국이란 국가형태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념에 의해 보장되고 실현된다.)이 변경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이승만 정권의 하야는 혁명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4.19는 무엇인가? 4.19는 독재에 항거한 집단적 정치행위, 곧 ‘국민의 정당한 저항권 행사’이다. 그러므로 4.19 의거라는 말은 지극히 적절하다. 그러나 이를 민중항쟁으로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중은 일부 계급 내지 계층을 가리키는 계급적 관념이 개재되어 있고, 항쟁은 불법적 요소와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만일 민중항쟁으로 규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극우적인 시각이 될 것이다. 반면 4.19를 ‘혁명’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4.19에 대한 지나친 미화 혹은 잘못된 인식으로서 이 역시 부적절하다.
다음 5.16은 무엇인가? 5.16은 혁명 혹은 군사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군부가 일으킨 군사정변, 곧 쿠데타라 할 수 있다. 5.16은 성공한 쿠데타인 것이다. 그러므로 5.16은 당초에는 불법적인 것이었다. (만일 박정희 장군이 5.16에 실패했다면 군형법에 따라 엄중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5.16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경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선거의 의미는 국민이 5.16의 불법성을 ‘정치적으로 사면(긍정적인 심판)’한 것이다.
(오늘의 잣대에서 5.16을 불법적인 군사쿠데타로 단순 매도하는 데는 다소의 객관성을 상실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1961년 당시 우리 국민이 군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은 30여년의 군사정권을 거친 후인 지금의 인식과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6.25 때 목숨을 바쳐가면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군대와 군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았다. 정치인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라가 혼란한 상황에서 나온 군인에 대해 일부에서는 기대까지 가지고 있기도 했다. 더욱이 1950-60년대는 쿠데타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등에서 쿠데타가 연발했다. 이러한 사정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신 이전까지의 박정희 시대를 독재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문제는 10월 유신 이후 이른바 제4공화국 시절이다. 물론 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10월 유신의 명분과 당위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제창했다. 북한의 대남적화혁명 노선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그러한 주의/주장을 내건 데 일면 타당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 동의나 추인을 받지 못했다. 유신헌법의 제정절차나 장충체육관에서의 대통령 선출방식, 그리고 각종의 긴급조치 등은 외형상으로는 합법성을 얻었지만, 민주성과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제4공화국의 민주적 정통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는 ‘독재’라고 칭함이 타당하다. 일부 학자는 이 시기의 통치방식을 두고 3권의 위에 있는, 명실공히 최고의 통치권자라는 점에서 ‘영도적 대통령제’(칼 레벤슈타인)라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 전체'를 군사독재시대로 폄하하거나(개발독재라는 표현도 그의 경제개발 정책과 성과를 깎아 내리기 위한 표현인 것으로 생각된다) 5.16의 쿠데타성을 집중 부각하려는 자세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5.16에 의하여 정치적 기득권을 잃은 자들이나 친북좌파들은 강력한 안보를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낸 박정희 시대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최근에 들어와 일부에서 유신까지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걱정된다. 그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며, 결코 뉴라이트적인 가치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대변인으로서 일부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면 단호히 배격한다는 입장을 여기서 밝히고자 한다.
요컨대,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혁명은 없었다. 앞으로도 혁명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혁명의 하나는 북한이 추진하고 대한민국 내의 친북좌익세력이 동조하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전략=NLPDR에 기초한) 남조선혁명인데, 이것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다. 혁명 대신에 점진적인 개혁 내지 개선이 있으면 족한 것이다. 당면하게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중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바꾸려는, 곧 혁명을 꿈꾸는 인사들을 민주화 인사로 둔갑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인데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반드시 싸워야 할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은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 이 글은 정치웹진 프리존(www.freezone.co.kr)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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