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정책, 앞으로 어떤 색깔이 될까
한미(韓美) 양국의 상호 불신은 북한의 핵실험을 전후하여 '사상 최악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국간 결속을 다져야 할 시점만 맞으면 동맹정신의 행방은 묘연했다. 문제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주요 고비마다 국가안보의 입지(立地)가 옹색해지고, 한미공조체제가 실종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0월말 핵 위기 속에서 열렸던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들 수 있다. '한미간의 안보 결속'은커녕 현저한 견해 차(差)를 드러낸 자리였다. '북핵대응'은 또 어떤가. UN의 대북(對北)제재에 뒷짐지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PSI)과 경제지원 재검토 요구를 거부한 것도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당사국 입장이면서도 한국은 '한미(韓美)공조체제'를 기본 틀로 하여 사태해결에 나서기보다는 허울좋은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에 휘둘리면서 '갈 지(之)자(字)'걸음으로 일관했다. 좌파정권의 행보는 우회전하겠다면서 좌회전(左回轉) 신호를 켜고 차를 모는 꼴이다.
그렇다고 남북(南北)간의 동질성(同質性) 회복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한중(韓中)관계가 서로 속내를 드러내 보일 정도로 돈독해진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를 불과 1년 여 가량 남겨두고도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국익(國益) 챙기기에 앞서 이처럼 '북한 감싸기'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 10% 미만의 열악한 지지는 다름 아닌 그의 국가안보 과목 성적표이다.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자주국방론'과 '전작권 단독행사' '느슨한 북핵 대응' '북한 퍼주기' 등으로 국민 대다수의 평균적 정서(情緖)와 안보관(安保觀)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고속도로에서의 역(逆)주행'에 견줄 만한 처사였다. 이러한 행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국민의 불안을 키워온 '더듬 수'를 두어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 위상에 상처를 입은 것은 미국이었을 것이다. 한국이 아니었다. 그간 '북한 정권의 교체'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각적으로 해법(解法)을 모색해온 워싱턴 당국으로서는 그간의 노력이 허사(虛事)로 돌아갈 수도 있는 국면에 직면하고서 매우 당혹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북핵문제 접근에 있어서 서로 그 윤곽을 달리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3년 전(2003년) 여름이었다. '체니 부통령의 비(非)군사적 방법에 의한 정권교체'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제한공격' 그리고 '파월 국무장관의 외교적 해결' 주장- 이 세 가지가 힘 겨루기를 했었다. 최종적으로 부상한 것은 '체니 카드'였다.
그러나 한국은 당시 '파월의 국무성 안(案)'에 코드를 맞춰왔었다. 대북(對北) '외교적 해결'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대응강도(强度)가 상대적으로 낮았었기 때문이었다. 미 국무부 또는 백악관 NSC 채널에 동조해온 현 정권의 색깔로 인해 '군사적 응징' 가능성이 강한 국방부 안(案)의 리더 럼스펠드와는 대립 각(角)을 세워왔었다.
청와대가 작년 초 한미연합사가 주도한 '작계(作計) 5029'에 대해 격렬히 반대했음은 정부의 대북(對北)정책 대응 방향과 강도(强度)가 어느 수준이었는가를 말해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 계획은 '김정일 유고(有故) 이후의 북한의 상황에 미군이 개입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도 노무현 정권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후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목표를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아닌 '체제변형(regime transformation·개방 유도)'에 두고있음을 천명했었다. 부시가 미 국무부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협상'에 두고있는 부시 정권의 북핵 대응 원칙은 집권2기 들어 미 국무부의 수장(首長)이 파월에서 라이스로 교체된 이후로도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호하든 다양한 '대북(對北)압박'이 가중될 것임은 분명하다.
국민이 '작전계획 5030의 존재'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일의 소재지에 미(美) 태평양사령부의 다양한 형태의 위협적인 군사행동을 취하고있음을 외신이 전하면서부터였다. 이 계획은 북한에 대해 제7함대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과 F-117 스텔스 전투기 및 B-2 B-15 대형 폭격기를 동원하는 군사적 압박을 통해 북한체제 내부의 위기를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이미 실천에 옮겨지기도 했었다.
미 국방부의 '제한공격 시나리오'나 '정권교체 시나리오'가 무력사용 시의 우려 등으로 고개를 숙이고있었을 뿐, '폐기'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은 이처럼 여전히 최후의 수단으로 숨겨져 있다.
태평양 사령부는 이미 2004년 한국군과의 연계(連繫) 없이 이 같은 군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군 단독으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작전계획 5030'에 따른 것이었다. '북한의 자유화법안' 추진·북한인권지원단체 예산 파격적 증액 등이 북한체제 개방을 위한 미국의 유연한 노력이라면, '작전계획 5030'에 따른 군사적 대응은 '겉으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비수(匕首)'에 속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부시 정부 내에서도 대북 군사행동에 관한 행보는 한국 못지 않게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럼스펠드 전(前)국방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군사적 옵션을 갖고 있다"고 했지만, 라이스 국무는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 역시 "북한은 핵과 미래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고 우회적인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이들 메시지는 결국 북한의 행동 저지에 아무런 효험도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곤욕'을 치르기는 '6자회담 중심의 해법(解法)'을 주도해온 미 국무부나 강경론 주창자였던 럼스펠드 전(前) 국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핵실험에 즈음하여 드러난 부시정권의 북핵 대응수위(水位) 조절이 대북(對北) 제재 의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워싱턴은 너무 잘 알고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현 시점은 '북한의 정권교체(change)로의 회귀' 등 다양한 대안(代案)의 선택과 방법을 둘러싸고 '정부 내의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前)국방은 로버트 게이츠로 경질(更迭)됐지만, 매파의 중심인물인 체니 부통령은 여전히 건재하다. 신임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 역시 과거 제1차 북한 핵위기(1994년) 당시 야인(野人)으로서 "북한에 대해서는 단계적인 제재나 금수조치가 아닌, 핵 시설 공격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던 매파였다.
북한의 핵실험 이전 워싱턴의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는 "미국이 지난 93년 영변 폭격 계획을 세웠고, 이를 최근까지 업그레이드 시켜왔으며, 워싱턴은 최후 순간까지 인내하다 유사시에는 공격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공공연하게 나돌았었다.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감행하거나 핵 물질과 기술을 다른 국가·집단으로 유출하려 시도할 경우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미국이 대규모 항모전단(戰團)훈련이나 폭격무기 전진배치를 통해 군사적 긴장도를 높임으로써 대화를 압박할 가능성은 상시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과 평양의 상호불신이 극(極)에 달해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이 성사된다 한들 '의미 있는 결론'이 쉽게 도출될 리 만무하다. 완성된 핵(核)만큼 강력한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이 따로 없음을 북한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은 이런 북한을 상대로 결코 쉬울 리 없는 핵 게임을 하고있는 것이다.
이미 궤도에 오른 6자회담의 방향을 바꿀 '큰 틀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미국 내 기류 변화를 장기적 관점에서 살펴가며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독자적 행동' 가능성은 매년 점차 고조될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 정권은 북한에 '전략적 유연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어 북한이 '민족공멸(共滅)의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가르쳐야 한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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