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수상)의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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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들은 각각 영국, 소련, 미국, 이라크의 수상 및 대통령들의 모습입니다.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수상 처칠의 군복 입은 모습은 2차 대전 중에 찍은 사진이며, 스탈린 역시 2차 대전 당시 찍은 사진입니다. 부시 대통령 역시 군복차림의 모습인데 2003년 5월 1일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를 축출 한 이후 미국 항공모함 아브라함 링컨 호 선상에서 주요 전투작전(Major Combat Operation)의 종결을 선언 하는 사진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발발 한지 얼마 전에 찍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사진입니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 혹은 수상의 직무를 행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자신의 국가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에 있었습니다. 민간인이 군복을 입은 것이 어색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가들은 대체로 자기 나라의 국가 원수 급 정치 지도자를 동시에 자기나라 국군의 총 사령관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평시, 전시를 막론하고 대통령은 군의 최고 지휘관이요 통수권자인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 원칙을 오히려 더욱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민(民)이 군(軍)을 통제하는 것, 즉 문민지배(Civilian Control) 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이고, 문민 지배의 원칙이 철저하다 보니 국방장관의 경우도 대부분 민간인 출신이 담당하도록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공식 연설을 한 것은 현 대통령인 부시가 두 번째였다고 합니다. 군복입고 연설 한 첫 번째 대통령은 세금을 잘 내지 않던 위스키 제조업자들의 소위 위스키 반란 사건을 직접 진압한 후 연설 했던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이었다 합니다.
부시가 군복을 입고 연설을 한 모습은 테러전쟁이라는 만성적(慢性的)인 전쟁의 시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미국은 전쟁 중(America is at War)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간 정치 지도자들이 군복을 입는 것은 그들이 국가 원수인 동시에 국군의 최고 사령관 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의 최고 사령관이면서도 애써서 군과 민을 편 가르기 하는 대통령이 더 큰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국가 원수 급 정치가가 국민들에게 ‘전쟁이냐 평화냐’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더욱 난감한 일입니다. 국가지도자는 모름지기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평화라는 ‘목적’을 달성해야만 할 의무를 국민들로부터 부여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군인출신이던 아니던 당연직으로 국군 총 사령관의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지요.
최근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이 같은 측면에서 상당히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군과 민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군에 대해 이상한 적대감조차 표시한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물론 군사독재의 나쁜 기억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라면 그 자신이 군의 최고 지휘관이라는 자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당시 군사관련 학술회의를 취재하던 기자가 저에게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 묻기에 저는 생각 없이 ‘백만 대군을 잘 지휘 할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말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자가 정말 괜찮은 대답이라 하기에 저는 그게 바로 헌법에 나와 있는 것이라고 다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서 ‘평화’를 대체할 것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의 경우 그는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평화’, 즉 안전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 있어서 전쟁과 평화는 동격의 개념이 아닙니다. 평화는 최상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수단입니다. 일반 국민이라면 전쟁과 평화에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국민의 선택은 평화이지요. 그러나 정치가들 특히 최고 지도자는 그런 국민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도자의 비전, 헌신적 리더십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충성, 지도자를 따르는 국민의 존경심이 잘 조화된 나라는 국가의 능력이 막강해 지며, 그 결과 적의 공격 가능성을 대폭 줄이고 평화의 가능성을 현격하게 높이는 것입니다.
북한은 언제나 전쟁을 하겠다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가 원수의 칭호가 아예 국방위원장이며 장군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핵까지 보유한 북한의 위협 앞에 평화 이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 한다면 그것은 정말 평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다는 우려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국제정치와 전쟁은 역설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죽음을 각오하면 살리라’ (死 卽 生)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논리가 수 백, 수 천 년 동안 내려온 국제정치와 국가 전략의 진리요 금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원합니다. (konas)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 http://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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