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집착증
노무현 정부 임기말이 되면서 남북정상회담 얘기가 구체화되고 있다. 집권당 대표인 김근태 의장은 조건없이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특사파견을 대통령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내년 3∼4월이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라고 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남북정상회담은 양쪽 정상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과제이며 언제나 살아있는 현안』이라고 말했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그동안 취해온 일련의 대북유화책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깔아놓은 레드 카펫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몽골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 보자고 수십번 얘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후에도 노 대통령은 『북한은 결코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유화적 발언을 계속 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했음에도 정부가 내년도 남북협력기금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인 1조원 규모로 편성한 것도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과연 있는 것일까. 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일의 생각은 두 가지로 모아질 것이다. 하나는 내년 대선에 북한이 개입하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은 금년도 대남전략의 골간인 남한내 「반보수(反保守) 대연합전선」 형성의 연장선상에서 내년에는 보수정권의 집권을 막고 친북좌파정권의 재집권을 측면지원하려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김정일이 정상회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김정일이 정상회담의 대가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5억 달러를 건넸다. 북한은 정권 초반 힘있는 남쪽 대통령과 만나는 데도 그 정도를 챙겼으니, 정권 말기 힘이 다 빠진 지금 대통령과의 회담 비용으로 그 몇 곱절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문이 통과된 뒤 북한에 거액의 현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북한이 원하는 현금을 건네려면 뭔가 편법을 써야할텐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이 점에서 정상회담 개최는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가정할 때 언제 어디서 열리며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라는 커다란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내년 3~4월이 적기라고 여당측은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장소는 금강산과 개성 등 북측 지역과 함께 한반도가 아닌 제3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회담의제는 남쪽이 생각하는 북핵 문제 및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와 북쪽이 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문제가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핵문제를 포함한 평화정착 문제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해결하겠다는 북한이 이 문제를 남한과 깊이있게 논의하거나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일은 원론적이고 수사학적인 말로, 얼버무리면서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측은 이것이 핵과 평화정착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나 되는 것처럼 확대 포장하여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면서 집권측은 내년 대선을 '평화세력 대 냉전세력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전략을 짤 것이다. 그들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평화와 화해 무드가 조성될 경우 현 정부의 국정실패를 호도하고 지리멸렬한 지지층을 재결집 함으로써 재집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신기루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그것은 남북정상회담이란 카드가 갖고 있는 효용성이 전에 비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국회의원 총선거 3일전에 발표함으로써 선거에 이용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지지도도 정상회담 직후 90%에 육박했으나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고 3남 홍걸씨가 구속되는 등 대통령 친인척 비리사건으로 그해 10월부터 50%대로 뚝 떨어졌다. 더욱이 지금은 6년전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제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장본인으로 행세하고 있다. 햇볕정책에 식상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상회담을 한다해서 놀라거나 거기에 큰 기대를 걸 사람도 많지 않다. 오히려 대선을 앞두고 치루어지는 정상회담에 대해서 구태의연한 북풍(北風)으로 인식하거나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이벤트 정도로 치부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임기말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열어 국가안위와 관련된 중대현안을 결정하는 것은 다음 정권에 큰 부담을 주게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집권측은 성사 가능성도 희박하고 설령 열린다해도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을 정상회담에 대한 꿈을 아예 접어야 한다.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Konas)
송영대 (평화문제연구소 상임고문, 前 통일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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