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의 길'을 밟고있는 김정일
북한의 핵실험 결행(10월9일)으로 국내 정국이 다소 혼란을 겪고있던 시기에 매스컴에 잠시 떠올랐던 외신(영국 선데이타임스)기사가 있었다.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루마니아 혁명 사례와 '루마니아 민중봉기 당시 소련의 선택'에 관해 연구하고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내용은 소련이 차우셰스쿠 제거를 원했던 것처럼 1989년 루마니아에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처형으로 몰고 갔던 민중봉기가 북한에서도 일어나 김정일이 제거되기를 중국 역시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다른 외신(AFP)은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났던 당시 정치상황을 중국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차우셰스쿠 처형 이후 정권을 이어 받은 이온 일리에스쿠 전(前) 대통령으로부터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루마니아 일간지 '에베니멘툴 질레이'는 "소련이 차우셰스쿠 제거를 원했듯이 중국 역시 김정일을 제거하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김정일이 차우셰스쿠와 비슷한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리베라'라는 루마니아 언론매체는 이 같은 움직임과는 다른 각도에서 '핵을 개발한 김정일, 차우셰스쿠의 종말을 연구하다'라는 제하(題下)의 기사를 싣고 "김정일도 당시 북한 지도자들에게 차우셰스쿠가 처형되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시청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차우셰스쿠의 처형'을 담은 비디오를 측근들에게 1주 내내 보여주면서 "반동분자들을 억누르지 않으면 우리도 인민들에게 이렇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의 보도 내용이다. 북한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고 있었던 김정일로서는 인민들을 더욱 철저하게 감시 통제하도록 측근들을 단금질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은 달랐다. 차우셰스쿠와 30년 동안 10여 차례나 만났을 정도로 붕우(朋友)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당 간부들과 차우셰스쿠 처형 비디오를 함께 보던 자리에서 '고문을 당한 듯 초췌한 차우셰스쿠 부부'가 끌려나와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 이르러 "우리도 개혁하지 않고 인민에게 베풀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고 했다고 한다. 중국계 미국 학자 벤저민양이 쓴 '덩샤오핑 평전(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차우셰스쿠 사후(死後) 김정일은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살려 주민을 배불리 먹이기는커녕 핵실험으로 7000만 민족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세계를 협박하는 길을 선택했다. <덩샤오핑이 걸어온 길>이 아닌, <차우셰스쿠의 길>을 밟고 있는 것이다.
차우셰스쿠는 어떤 인물인가. 1971년 평양을 방문했던 그는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드는 북한의 우상화에 감동하여 귀국하자마자 '루마니아판 주체사상'을 밀어붙였다. 김일성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고, 자신의 '정치적 사부(師父)'였으며, 루마니아는 '동구(東歐)의 북한'이었다. 아내를 제1부총리에 임명하고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등 족벌통치도 '북한 식' 그대로였다. 국가기념일에 루마니아 역사 영웅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그에게 통치권을 부여하는 의식(儀式)은 '우상화 작업의 극치'일 것이다.
북한의 주석궁을 돌아 본 그는 방(房)이 1만7천 개가 넘는 대통령궁을 세웠고 양복만도 8000벌에 이르는 사치를 부렸다. 차우셰스쿠는 1989년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군중에게 발포했다가 붙잡혀 총살되기까지 그는 24년간 집권했다. 반(反)정부시위를 벌이던 군중에게 무차별 유혈 진압을 강행하다 오히려 수세에 몰려 봉기에 나섰던 군중에 항복한 무장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3일만에 총살된 것이다. 그런 차우셰스쿠가 인민들의 손에 처형당하는 것을 본 김일성 김정일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980년대 말 동구권 사회주의 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 북한 김일성은 "우리 인민들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구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인민 봉기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었지만, 인민들에 의해 여전히 '어버이 수령님'으로 떠받침을 받은 김일성으로서는 북한 주민들이 더할 나위 없이 '참 좋은 인민'이었을 것이다.
북한 노동당은 스스로 '인민의 어머니 당(黨)'이라고 부르지만, 북한 주민들은 엄청난 아사 사태를 겪으면서 당과 수령이 어머니도 어버이도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며, 어버이만 믿고 있다가는 그대로 앉아 죽는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온몸으로 깨우쳤을 것이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북한 주민들 아닌가.
북한은 외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는 5∼6년, 대외교역이 봉쇄된 상태에서는 2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이 있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원(IIE)의 마커스 놀랜드가 그의 분석적인 연구서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에서 언급한 진단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역시 10월13일 자(字) 보고서에서 "경제제재로 인한 대외교역 감소는 북한의 거시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훨씬 더 심각한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북한 정권은 이래저래 1980년대 말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지경에 놓여있다. 인민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기로에서 김정일은 오히려 인민을 가일층 가혹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운명이 온갖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 독재자 김정일의 선택에 매어있다는 것은 엄청난 '민족적 비극'이다.
시판중인 북한 관련 책자 중에 <김정일의 숨겨진 전쟁>(번역서)이 있다.일본인 하기하라료(萩原遼)씨가 저술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루마니아의 독재자인 '차우세스쿠 식 종말'이라고 적고 있다. 김정일의 괴기한 행동의 원동력은 민중봉기로 인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되겠다는 몸부림에서 연유하고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북한의 어용 매체들이 90년대에 자주 외치던 슬로건이 있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가 그것이다. 북한 내부 도처에서 자주 목격되던 구호이기도 하다. 이 구호에서 우리는 루마니아 등 동구(東歐)의 체제 변혁을 두려워한 북한 정권이 주민감정을 무마하고자 했던 고육지책을 읽을 수 있다. '지난 날의 중국'과는 달리 강온 양면작전을 펴고있는 중국의 행보를 주의깊게 예의 주시해야 할 시점을 맞은 것 같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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