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체제 붕괴 급변사태 준비해야
지난 21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는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 주최로 ‘북한정권 붕괴가능성과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아래는 이날 세미나 발제를 맡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발제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편집자>
북한체제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존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체제 생존의 첫째 이유는 공산권에도 유례없는 「절대적 통제」에 있다. 60년대 들어 소련에서도 사회적 자유의 공간이 더 넓어져 가령 미술과 같은 취미생활을 위한 단체도 생겨났다. 동유럽 국가에서는 이러한 자유가 소련보다 더 컸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공산권을 따라가지 않았다. 북한정권은 주민들에게 「무조건 복종」과 「불같은 충성」만 요구했다. 소련과 동유럽 「개혁」을 처음부터 위험한 정책으로 판단했고, 80년대 말 「개혁」에 대한 의심이 심해졌으며, 결국 「개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전략은 아사자를 낳는 식량난을 초래했지만, 金왕조와 측근들 입장에서 보면 옳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백만의 주민이 굶어 죽을 때도 수만 명에 불과한 평양의 특권층은 벤츠를 타고, 일본식 스시를 먹고, 자식들을 비싼 해외학교에서 공부시켰다.
북한정권의 생존이유 중 또 하나는 국제정세다. 냉전시대 미국 등 서방진영은 공산주의 체제를 지정학적 도전으로 보고 이를 내부에서 훼손시키려는 노력을 벌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대외압력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북한체제 붕괴를 바람직하게 보는 해외세력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분단유지를 환영하고 북한을 완충지역을 보는 것 같다. 러시아 역시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지지한다. 일본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수단이 별로 없지만, 통일한국의 등장을 별로 좋은 소식으로 보지 않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남한도 독일통일 경험과 국내정치 변화로 말미암아 북한붕괴를 악몽으로 본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체제 변화를 소망하는 나라는 미국뿐이지만 사실 핵문제를 제외하면 북한은 결코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북한정권 장기적 생존 불가능>
그래도 장기적으로 북한정권 생존은 불가능하다. 식량난과 경제위기는 정부의 통제력을 매우 약화시켰다. 공포·테러·쇄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통제 및 감시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체제 「장기생존론자」들은 북한이 단계적 개혁(改革)을 통해 변화(變化)하는 것을 바람직한 시나리오로 주장한다. 이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사례를 인용하며 시장화 정책을 하나하나 해나가도록 김정일 정권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기반이 된 이 장기통일의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중국에는 「또 하나의 중국」이 없고, 베트남도 「또 하나의 베트남」이 없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하려면 나라의 문을 더 열어야 하는데, 이 경우 해외생활 특히 남한생활에 대한 정보에서 북한 주민들을 격리시키는 방법이 없어진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번영을 보게 되면 같은 문화, 같은 민족으로 「극적인 충격」을 받을 것이다. 남한이 북한보다 수십 배 높은 생활수준을 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북한 주민들은 자기 정권을 나라를 다스릴 권리가 있는 정통성(正統性)있는 정부로 보지 않을 것이다.
중국식 개혁·개방은 북한식 통제시스템과 양립하기 어렵다. 여행증 없이 마음대로 출장도 가지 못하면 시장경제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을까? 독립회사에서 출신성분을 지식과 능력보다 더 중시한다면 이런 회사가 경쟁력이 있을까? 약화된 통제체제는 북한체제 생존의 필요조건인 「공포심」을 자아내지 못할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해 북한 주민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소식을 많이 배우기 시작했다. 향후 남한의 번영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보위부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북한 주민들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로 만든 金日成·金正日 정권을 정통성 있는 정부로 계속 인정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그래서 자신들의 생활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남한과의 통일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견딜 수 있을까? 그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동유럽에서 볼 수 있듯 체제 위기는 너무 빠른 속도로 전개될 수 있다. 북한체제가 언제 무너지기 시작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지금 이러한 급변사태를 준비해야 한다. 어쩌면 벌써 늦었는지도 모른다.(konas)
안드레이 란코프(국민대 교수)
요약·정리: 김성욱(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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