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모병제 도입 실태와 향후 전망
오늘날 러시아군은 십 수 년 암흑기를 지나 정국 안정과 경제의 회복에 힘입어 점차 재정비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2000년 이후 국가경제가 매년 6~7%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국방예산도 두 자리 수 증액을 거듭해왔다. 2007년에도 2004~06년에 이어 전년 대비 30% 가까이 증가되었다. 증액된 예산은 중·대대 규모의 훈련 재개와 무기·장비의 개선, 사기 진작을 통한 개혁의 가속화, 핵전력의 재정비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력증강 예산으로는 110억 달러를 편성했는데, 이는 2006년도에 비교하면 32%가 넘게 증가된 금액이었다.
그런데 국방 분야의 다양한 개혁 조치들 가운데 푸틴 정부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추진해온 것은 바로 병력 충원 제도의 개혁이다. 권력 기반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자 2001년 말 푸틴은 징병제의 조기 폐지를 전격 공표하였다. 당시 러시아 국내외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군 재정난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며, 2004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포
석이라는 평가를 내놓곤 했다. 그러나 집권 2기 마지막 해인 2007년을 맞이해서도 러시아군의 모병제 도입 노력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현행 징병제는 가능한 한 많은 젊은이들이 군을 거치게 함으로써 일관된 정신교육과 신체훈련을 받도록 하기 위해 소련 정부가 1967년 10월 12일 선포한 일반의무병역법에 법적 토대를 두고 있다. 소위 ‘보편적 의무병역’(bseobshchaya voinskaya obiazannost)의 원칙에 기초한 병역제도를 통해 소련군은 매년 수백만 청년들에 대한 이념무장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전인민 교육장(全人民敎育場)으로서의 기능을 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반전사상이 고개를 들면서 고르바초프 정부는 모병제의 도입 방침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소련 말기 ‘인구 폭발’을 보이던 중앙아시아 거주 이슬람계 시민들과는 달리 아이를 하나 둘만 갖던 러시아계 시민들의 병역 기피 현상도 한 몫 하였다. 그 이후 개병제의 폐지 불가피론과 모병제로의 전환 불가론을 둘러싼 공방은 옐친 집권기 내내 십여 년 간 별다른 성과 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푸틴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병력제도의 개편 문제는 모병제 도입에 대한 찬반 논쟁 차원을 떠나 이제 실질적인 정책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2차 체첸전쟁이 한창인 시점에 정권을 인수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군사력의 재건 의지를 역설하였다. 그는 먼저 소수정예의 현대식 군대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개편과 병력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새로운 인력정책의 시행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당시 그의 정책 의지는 한정된 가용재원을 군 병력의 방만한 운영 유지에 쏟아 붓다가는 전력 저하의 폐해가 지속될 뿐이라는 상황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러한 푸틴의 의지는 2001년 11월 징병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가시화되었다. 그의 지침에 따라 과도기적 혼합병제가 채택되었다. 즉 일부 지원병들을 수용하는 징병제 체제는 점차 폐지되고 2010년경 완전 모병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개시되었다. 2004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푸틴 정부는 모병제의 도입 방침을 재확인하고 군복무 기간의 단축 계획도 재확인하였다.
그 무렵의 재정적인 한계와 군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직업군제의 도입이 현안으로 대두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징집병의 자질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도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실제로 2004년 총참모부가 밝힌 군인력 상황을 보면 놀라울 정도였다. 소연방의 붕괴가 가져온 총체적인 혼란 속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러시아 젊은이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수적으로 이미 제한된 소집 대상자들 속에서 군은 정상적으로는 받아들여선 안될 청년들까지도 수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체 사병들 중 4%가 경범죄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고, 7% 이상이 전과를 갖고 있다. 알콜에 중독된 사병이 12%를 넘고, 8%가 마약에도 손을 댄 경험이 있다. 더욱이 질병을 앓고 있는 징집병들 중 다섯 중 하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직업군제를 단계별로 도입하는 방침이 정해지자 그 첫 단계로서 프스꼬프(Pskov) 주둔 제76 공수사단이 시범부대로서 2002년 9월 1일부터 지원병만 수용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1개 연대만이, 2003년 이후부터는 다른 연대들까지 징집병들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하였다. 2003년 4월 24일 러시아 각료회의는 전투군 하사관과 사병급(209개 부대 170,000명)은 2008년 말까지 지원병으로 전원 교체할 것을 의결하였다. 아울러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 CIS 국가들의 청년들이 입대할 경우 러시아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구체적인 유인책까지 마련하였다. 그리고 해·공군과 우주군, 전략미사일군 등 전략적 비중이 큰 부대의 사병들을 모두 지원병으로 대체시킨다는 지침도 세웠다.
그러나 문제는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데 있었다. 월 3,090루블, 미화로 110 달러 남짓 하는 급여를 받고 자원입대할 젊은이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과연 이 정도의 금전적 인센티브를 갖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젊은이, 도덕적으로 건전한 젊은 인력들을 군으로 유치할 수 있을 것인가 . 결국 “프스꼬프 실험”은 실패작으로 판명되었다.
개시한지 1년여 만에 지원병들 중 44%가 낮은 급여를 이유로 계약을 파기하였고 사단 병력 4,750명중 부대에 남은 계약병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병사들은 일반 사회에서 일자리를 못찾아 자원한 탓에 낮은 직업의식으로 인해 40%나 되는 숫자가 기강 문제로 강제 전역을 당하기까지 했다. 다른 부대의 경우에도 상황은 유사했다.
그럼에도 러시아군을 직업군대로 바꿔보려는 푸틴 대통령과 첫 민간 국방장관으로서 부총리를 겸하고 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의 의지는 한결 같았다. 급기야 만5천 루블까지 급여를 대폭 올리는 지원병 단기 유인책을 시행함으로써 체첸 전장에 투입된 제42 기계화보병사단은 2만5천 지원병을 할당받을 수 있었다. 또한 체첸전에 참전하는 제76 공정사단도 징집병을 더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밖에 해군의 경우에도 월 4~5천 루블에서 6천5백 루블 수준으로 급여를 올림으로써 잠수함 승무원들도 해군보병과 함께 점차 지원병으로 교체되고 있다. 하사관급에 대해서도 급여를 대폭 올려 적어도 총원 중 3분의 2 정도는 지원병으로 채운다는 계획이 이행 중이다. 그런데 지원병들이 기껏 월 4천 루블 급여를 받는 일반 부대의 소위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되는 모순이 생겼다. 다른 한편으로 지상군 지휘관들은 생활비가 많이 드는 도심지역 부대에 필요한 지원병들의 충원 문제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부터 현행 2년 복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시킬 것이라는 정치권의 발표에 일부 징집 대상 청년들이 입영 시기를 2008년 이후로 연기하려는 혼란이 일어났다. 그 결과 군 당국은 징집병의 복무 기간을 당분간 1년 6개월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모병제를 완전 시행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군지휘부는 제76 사단과 제42 사단의 모병제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이들 병력은 실전에 참전하고 있어 일반 부대에 비해 세 배가 넘는 높은 급여가 지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러시아 특유의 혼합징모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러시아군 지휘부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전략적 비중이 큰 부대들부터도 첨단 무기체계를 운용할 만큼 제대로 자질을 갖춘 지원병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여부일 것이다.(konas) (출처:KIDA)
심경욱(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shim@kid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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