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수교(修交) 협상을 주목한다
급변하는 동북아 국제질서
미국과 북한이 3월 5∼6일 뉴욕에서 ‘비공개’수교(修交) 실무회담을 갖는다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이 28일 밝혔다. 이번 회담에는 크리스토퍼 힐과 김계관이 대표로 참석한다. 수교 회담은 지난 ‘2·13’ 6자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의제(議題)로서는 HEU 프로그램, 미북 간 연락사무소 설치 및 국교수립,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여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및 자산동결 해제 여부, 미사일 문제, 기타 북한의 불법 활동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북 수교는 동북아 국제질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중대 현안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협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최근 북한의 외교정책이 극도로 유연(柔軟)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을 3월 둘째 주 평양으로 초청한 것을 비롯, 미국과 과감히 관계정상화 협상에 나서고 있는 것이 예전과 다르다. 마치 60년대 후반 70년대 초 월맹과 미국의 협상을 연상시킨다. 당시 월맹은 미국과의 혈전(血戰) 와중에서 미국 내 반전(反戰) 여론을 일으키는데 성공,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유인해 냈었다. 그만큼 한국민에게는 불길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정책 전환에 대해 국내외에서 그 원인과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적(敵)과의 대화’가 결국 미 외교정책 상의 ‘현실주의’ 또는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회귀(回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현실주의’란 힘의 한계에 부딪친 미국이 원칙과 이념 중시의 외교정책에서 후퇴, 국제역학 관계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3월 1일 자 뉴욕타임스 인터넷 판은 미국이 북한과 ‘수교’내용을 포함한 ‘2.13 합의’에 도달한지 불과 2주일만에, 이란 및 시리아와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한 점을 지적했다.
미국 조야와 부시행정부 내에서도 ‘정책 급(急)전환’에 대한 반발이 드세다. 네오콘의 대표주자라 할 존 볼턴 전(前) 유엔대사는 2월 27일 “2.13합의는 美행정부 스스로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부시행정부를 맹비난했다. 부시행정부가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초기 원칙을 스스로 버렸다는 것이다.
한편 AEI(미 기업연구소)의 니컬러스 에버슈타트는 ‘2.13 북핵합의’를 “전쟁 없는 패배”라고 질타했다. ‘2.13 합의’는 “외교적 승리”로 위장된 “전략적 실수”로서 “과거 대북 실수의 되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핵 문제가 앞으로 첨예한 도전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과연 대북정책이 변화한 것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오랜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고 변명하고 있으나, 그야말로 외교적 레토릭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2.13 합의는 미 대북정책의 급격한 전환이며, 엄밀히 말하면 ‘대북정책의 완벽한 실패’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평한다면, 부시행정부의 외교적 역량의 한계 곧 ‘무능(無能)’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미 외교정책의 실패는 ‘중국 외교전략의 승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주목을 끈다. 미 기업산업협의회 국가안보 전문가인 윌리암 호킨스(William Hawkins)는 3월 1일자 워싱턴타임즈(Washington Times)에 게재한 논평에서, 6자회담에 임하는 중국의 전략이 고대 진(秦)나라의 대륙 통일전략을 국제정치에 원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이 당초 약소국의 형세에서 강국으로 성장한 원인은 “분할하여 정복한다(divide and conquer)”는 전략을 충실히 따른데 있었다고 한다. 곧 진(秦)이 새로운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타(他) 국가들의 연합을 막아낸 외교전략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6자회담 과정에서 중국이 처음에 러시아와 연합했으며 그 후 남한을 자기편으로 삼는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남한이 갖고 있는 ‘전쟁 공포’와 ‘통일 염원’그리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익 기대’를 이용, 남한으로 하여금 대북 유화정책을 가속화시키도록 이용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은 부시행정부 내 진보적 인사들의 지지를 얻어 미국이 北과 직접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부시행정부를 고립시키는데 성공했다.
미북 간 직접 양자 협상은 오랜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라, 작년 말 무렵 기획되어 금년 1월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2002년 HEU 프로그램 문제로 美 고위 정책담당자가 평양을 방문한지 거의 5년만의 일이었다.
한편 중국은 미북 양자협상을 성공시킴으로써 유일하게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하며 대북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을 마침내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결국 중국은 2.13 합의를 통해 한.미.일 3국연합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이는 향후 동북아 패권국가로 중국이 흥기하는데 일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美日 동맹은 견고해질 것이지만.
이렇게 볼 때, 2.13 북핵 합의는 중국 외교전략의 대성공인 동시에 미 외교정책의 실패인 셈이다.
미북 수교 회담의 시작은 동북아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게 된다면, 미국은 그동안 北 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폭정’인식 및 ‘적대’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이에 대해 북한은 양국 수교 및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걸림돌로 ‘주한미군’을 거론하며, 그 철수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은 이 과정에서 북한의 WMD(핵, 미사일 등)의 제거를 요구할 것이며, 인권 증진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거부해 온 북한이 적당한 핑계와 눈가림으로 미국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때마침 전시작전권 전환이 확정됨에 따라, 한미연합사 및 UN司 해체가 확실시되고 한미 동맹은 외피(外皮)만 남을 정도로 형해화(形骸化)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 심화에 직면한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민족공조, 중국에 대한 굴종 외교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면, 국가운명은 참으로 암담해질 뿐이다.(Konas)
홍관희(재향군인회 안보교수·안보전략연구소장·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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