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자금 관련 '황당한 일들'
北 내부 들여다보기
美 부시행정부가 안팎의 강력한 반발을 받으며 북한의 BDA(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동결 자금 2,500만달러 전액을 돌려주기로 했다. 이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의 목소리는 매우 거세다. 데이비드 애셔 前 국무부 동아태 담당 자문관은 “BDA자금 해제는 굶주린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격”이라고 부시행정부를 맹비난했다. 또 Wall Street Journal紙는 20일자 사설에서 “BDA 자금 반환으로 김정일이 미소 짓고 있을 것”이라며, “검증방법이 없는데, ‘인도적·교육적 목적’에 쓰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원칙에 어긋나고 실익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부시행정부 내에서 일했던 존 볼턴 전(前) 유엔대사는 “2.13합의는 美행정부 스스로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부시행정부의 ‘정책 급(急)전환’을 비난했으며, AEI(美기업연구소)의 니컬러스 에버슈타트도 ‘2.13 북핵합의’를 “전쟁 없는 패배”라고 질타했다.
그런데 문제는 참 엉뚱한 데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이 BDA자금 전액을 돌려주기로 결정했음에도, 북한에 돈을 이체시킬 중국은행이 돈 받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북한의 ‘불법 자금’을 다루다가 자칫 공신력(公信力)에 손상을 입어 국제금융거래에 지장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한다. 또 계좌 예금주와 관련된 북한 내부 사정도 문제라고 한다. 북한 예금주의 신원이 거의 불확실하고 가(假)차명(借名)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속성상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뜻밖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북한에 돈을 건네기 어렵게 되니, 한국측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아무리 (송금)하려 해도 기술적 문제로 못한다...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정권에서 ‘반미(反美)’ 발언으로 비판받았던 송민순 외교부장관도 “북한은 골치 아픈 집단으로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을 정도다. 회담장 주변에서 “도대체 그런 집단이 국가냐?”라는 개탄의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돈을 못받으면 핵협상을 진척시킬 수 없다고 떼를 쓰고 있다.
북핵 협상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암초를 만난 것이다. 이런 경우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듯하다. 성경에 유대 어린아이를 살해하라는 애굽 왕의 명령을 조산부(助産婦)가 “유대 여인은 몸이 건강하여 제가 당도하기 전에 이미 애를 낳았더이다”고 지혜 있는 거짓말로 넘어간 일이 있다. 조산부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臨在)한 덕분이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북한 내부 기강이 점차 와해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계획경제-명령경제’는 가동을 멈추고 암(暗)시장이 크게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며, 북.중 국경 부근에서 경비를 보는 군인이 탈북민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뇌물 받은 군인은 처벌이 두려워 탈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폭정(暴政)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하나의 ‘통치 체제’로서 북한은 무너지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과연 그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 무너지느냐이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북한 붕괴는 필연적이고 피해갈 수 없다. 우리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 주변 4국은 北붕괴에 대비 비밀 시나리오를 작성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김정일 이후의 북한을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닛케이신문 편집위원 스즈오키 다카시 씨는 “김정일 이후의 북한” 제하의 글에서 4국의 속셈을 분석하여 흥미롭다(미래한국신문, 3/24일자).
그에 의하면, 중국은 北붕괴 이후 ‘핵 없는 친중(親中) 국가’를 희망한다. 북한이 민주체제로 되는 것은 결코 달가와 하지 않는다. 북한 민주화는 중국 내의 민주화 요구에 불을 지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 의한 통일한반도국가’를 중국은 크게 두려워한다. 연변 지역의 조선족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 내의 소수민족이 그 지역과 인접하는 보다 발전된 같은 민족과 연계되는 것을 경계한다. 중국 내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운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면, GDP 2만 달러의 한국과 5,000달러의 연변자치구가 이웃하게 된다.
미국은 북한이 ‘친미(親美)적 민주국가’로 되어 한반도가 ‘자유민주통일’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 희망을 실현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면 쉽게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부시 행정부가 대북전략을 현실주의 노선으로 전환한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번 ‘2.13합의’도 한.중의 非협조로 대북 압박정책이 난관에 부딪치자 지금까지 ‘악(惡)의 축’이라 부르던 상대와 쉽게 타협한 것이다.
대다수의 일본사람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납치 피해자 전원을 돌려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이제 “김정일정권 하에서는 그 어느 것도 실현되기 어렵고 이 문제의 해결은 김정일정권의 붕괴 밖에 없다”고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충격적인 것은 “김정일정권이 소멸하면 북한은 중국의 컨트롤 하에 들어 갈 것이며, 중국은 휴전선을 개방하여 북한난민을 한국에 떠맡길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이는 그야말로 한국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다. 통일도 못하고 北붕괴의 쓴 짐을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난민을 맡는 것은 의당 해야 하는 일이나, 통일에 실패해선 안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北붕괴 이후와 통일 방안에 대한 목소리가 별로 없고, 또 이 문제를 제기해도 크게 취급되지 않는다. 집권 좌파 세력은 6.15공동선언, 합의통일, 대북지원 등으로 날이 새고, 북한인권을 주장하는 단체들도 ‘북한의 민주화’를 역설하며, 야당도 남북공존과 남북 경제공동체를 거론하고 있다. 단순히 대외용 ‘레토릭(rhetoric)’이라면 이해가 가나,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북한의 현실을 토대로 판단할 때, ‘민주화’나 ‘경제개방 개혁’ 등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무너져가는 철권(鐵拳)독재를 가능한 충격을 작게 마무리하여 ‘통일’로 연결시켜야 한다.(konas)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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