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지혜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50여 년간 전쟁걱정 없이 경제발전에 전념하여 왔다. 경제발전에 맞추어 군사력도 무리함 없이 착실히 증강해오고 있다. 북한의 소규모 무력도발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이 있었으나 전면전·국지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핵무기 포함)와 117만의 대군을 유지하고 있어도 우리는 69만의 병력만 유지했다. 북한의 770만 예비군에 대응하여 우리는 304만 예비군만 유지하고 있다. 예비군훈련도 북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 이유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한이 남침할 경우 연합사와 유엔사에 의해 미국, 유엔과 한국전 참전국(영국 등 15개국)이 자동으로 참전하게 된다. 주변국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에도 연합사 조직에 의해 미국이 참전하게 되어 있다. 연합사의 임무에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항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국을 방어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완벽한 군사동맹체제이다. 그래서 세계가 모두 우리를 부러워했다. 군사적 약소국가인 한국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동맹의 상징인 한미연합사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2006년 12월 ‘국방개혁2020’이란 ‘자주국방’의 청사진을 법제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앞당겨 2012년 4월 17일에 하기로 한·미가 합의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됨에 따라 앞으로는 우리 힘으로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 자주국방이란 자국의 국방을 타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성을 가지고 자기 책임 하에 나라를 지키는 것으로써 자주방위이라고도 한다.
자주국방을 마다할 국가와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우선 국가의 능력이 갖추어진 후에 국제환경을 판단해서 면밀히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국가안보는 국가생존이 달린 중대사이다. 서둘러서 졸속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정부가 추진하려는 자주국방의 방향이 맞는지 원점에서 검토해보자.
첫째, 외부의 군사위협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주적(主敵)인 북한은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해 선군정치를 강화하면서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공갈과 협박으로 쌀과 비료 등을 강탈해가고 있다. 이제는 2008년에 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 전쟁재발 운운하면서 공공연히 겁을 주고 있다. 1992년부터 시작된 북한 핵문제가 언제 해결될지도 미지수다. 설사 핵무기가 모두 제거되더라도 탄도탄·화학무기·생물무기는 남게된다. 핵무기의 위협에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는 핵이 없다.
잠재적인 적국인 중국·일본·러시아의 위협도 만만치 않다. 한반도에 대한 영토야욕을 갖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영토인 이어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동북공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영유권 주장을 변함없이 계속하고 있다. 동북아에는 유럽의 나토와 EU와 같은 조직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가간의 영토분쟁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어도와 독도 등에서 주변국과 국지분쟁이 발생할 때에는 전적으로 우리가 단독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우리혼자 감당할 수 없는 강대국들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있는 김장수 국방장관도 3월 27일 국방부를 방문한 마이클 헤이든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에게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는 우리 국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3월 29일자 중앙일보 보도)
둘째, 우리 군사력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북한이 재래식 전력으로 남침 시에 우리는 미국의 즉각적인 지원 없이는 반격은 고사하고 방어자체도 곤란하다. 대남전용 스커드 탄도탄(사거리400~600km, 600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무기는 아예 없다. 이런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국방개혁 2020’에 따라 병력을 69만에서 50만으로 감군 중이다. 군 복무기간도 24~27개월에서 6개월을 추가로 줄이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벨 연합사령관(유엔군사령관)은 한국군의 전력약화를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우리 국민은 자주국방을 외치면서 ‘미국의 핵우산 제공’과 북한 남침 시 ‘미국의 해·공군 지원’만 있으면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국방개혁2020에 반영된 차기전차·신형전투기·이지스함·순항유도탄 등을 확보한다고 해서 자주국방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전쟁에서 육·해·공군의 병력과 장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조기경보능력·우주통제능력·수중통제능력·전자전능력·원거리타격능력·해양투사능력·미사일방어능력구비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분야에는 극히 초보단계이고 어떤 분야는 입문도 못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단 기간에 달성이 가능하지도 않다. 작년 가을 북한의 핵실험 장소를 몇 번이나 번복해 발표하는 수준이 우리 정보능력의 현주소다.
주변국에서 한국의 군사력을 ‘순수방어용’으로 평가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중국·일본과 대항하여 이어도와 독도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은 전혀 없다. 일본의 군사력은 우리보다 질적으로 우세하고, 중국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국력과 국방비의 차이로 인해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 국방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국방개혁2020’에 약 6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둔화로 시작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우리 경제력은 세계 경제에서 1.1%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경제전문가에 의하면 앞으로 경제력이 6~7배로 강해져야 어느 정도 국방투자가 가능하다고 한다.
자주국방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외부위협에 대응이 가능한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어야 억제가 가능하다. 북한과 주변국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돈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일본과 독일은 경제력에서 이미 국방투자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달리 독자적인 자주국방을 추진하지 않고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현 NPT체제 하에서 핵무기 보유가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자주국방이 불가함을 이들 국가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재래식 전력에 돈을 과도히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구소련(USSR)은 경제사정을 고려치 않고 무리하게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다가 결국 국가가 해체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지금 북한·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의 위협에 둘러싸여 있다. 100년 전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시기보다 더 위급한 안보상황이다. 우리의 군사력도 태부족이다. 경제력도 미약하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지정학적 환경도 세계에서 유일하다.
국가안보에는 겸손해야 한다. 우선 감군계획과 군복무기간 단축계획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모두 제거되고, 그들이 적화통일정책을 포기한 연후인 ‘평화공존기’에나 추진이 가능한 일들을 첨예한 ‘남북대치기’에 서둘러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한마디로 적전(敵前)에서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지금은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주국방을 추진할 시기가 아니다. 계속 현재의 국방정책을 추진할 경우 한국의 생존이 위태롭다. 유엔사는 북한의 위협이 소멸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연합사는 한국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계속 존속해야 한다. 북한과 주변국의 군사위협을 억제하고 한국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합사·유엔사를 유지하여 전쟁 걱정 없이 살면서 국토를 온전히 보존하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부족한 분야(조기경보능력 등)의 군사력을 점진적으로 확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한국적 자주국방인 것이다. (konas)
김성만(前 해군작전사령관, 예비역 해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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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0 오전 9:5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