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은 김정일 위원장의 몫이다!
- 북한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배워라 -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살자면 친미도 하고 친북도 해야 한다”고 했다.
북미수교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들여 놓아야 한다고 국제사회가 호들갑이다. 여기에 운명의 2007 대선이 다가 오고 있다. 한나라당도 대북정책 기조변경에 나섰다. 한반도에 뭔가 커다란 틀이 꿈틀거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게 무엇일까?
한마디로 안팎으로부터의 “한반도 평화물결”이다. 남과 북이 서로 적대정책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로 한반도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남과 북, 모든 이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한쪽만 변하고 다른 한쪽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똑같이 변하자고 한다면 이는 詐術에 다름 아니다.
북한이 변화하고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기 위해서는 큰 것을 내 놓아야 한다. 북한의 시간표에는 결단을 내려야할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외견상 변했지만 북한의 본질은 바뀐 것이 없다.
평등과 자력갱생으로 지상의 天國을 만들어 보이겠다던 그날의 함성은 흔적을 찾을 수없고 인민들에게는 고통만을 안겨주었다. 한마디로 모순이다. 그들 자신의 존재이유였던 계급해방, 민족해방의 테제가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 그런데도 북한은 음습한 주체사상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빛바랜 혁명의 열기를 뿜어 대면서 현실을 옴 몸으로 거부해 왔다. 혼신을 다해 연출했던 미사일실험발사 불꽃놀이, 세계를 경악케 했던 核실험도 결코 굶주린 인민들의 배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언제까지 굶주린 병사와 인민들을 이끌고 혁명가를 불러댈 수는 없는 일이다. 질적인 변화만이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국제사회로 나 올 수 있는 유일의 출로다. 북한은 임기응변식 전술전환에 집착하기 보다는 과감한 변화를 선택하여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質的變化 가능성에 대한 실낱같은 조짐이 던져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울부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김정일 위원장은 공산주의 경제에 대한 "代案"을 검토하고 있으며, 자신은 스웨덴식 모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개방경제를 권유한 당시 중국의 강택민 주석에게 문호개방시 예상되는 사회혼란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이에 강택민은 "문호개방과 사회주의 일당체제는 양립할 수 있다"고 한 수 놓아 준 것도 이미 지난 일이지만, 김 위원장에게 변화를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김 위원장에게 북한의 실질적 변화전망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중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권한다. 오늘날의 크리스챤이 라틴어로 찬송을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민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모택동사상을 經典 삼아 투쟁과 혁명을 읊조리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중국공산당 지도부 역시 사상투쟁 대신 “사상해방”을, 계급투쟁 대신 “생산력해방”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더 이상 사상투쟁, 계급투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중국대륙 도처에는 붉은 五星紅旗가 펄럭이지만, 그들의 깊은 심연에서 붉은적기는 바람에 휘날리지 않는다. 그들은 금세기 안에 미, 일을 떨쳐내고 선진강대국 대열로 진입한다는 원대한 民族再生의 청사진을 하얀 캔버스 위에 그려대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중국대륙이다. 우리는 이처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중국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질적인 변화를 찾아 “절망과 체념의 땅” 북한이 그러한 길을 가기를 바란다.
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을 지도 모른다.
왜 그런가? 지금의 성공을 얻어 내기까지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사상이론계를 총동원하여 현대화 개혁개방정책 도입을 위한 이념적, 이론적 장치를 정교하게 마련해 왔고, 고비마다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렸었다.
돌이켜 보자!
첫째,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중국은 급진주의의 혁명적 세계관을 극복한 이후에야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중국의 지도자 毛澤東. 그는 혁명과 정치를 가장 가치롭게 여긴 인물이다. 혁명후에도 부단없는 계급투쟁과 무산계급독재로 불평등 요소를 제거함으로서 평등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경향은 여지없이 국가발전 모델을 둘러싼 이념논쟁과 노선갈등, 그리고 치열한 권력투쟁으로 투영되어 나타났고 자신을 관념적 영웅주의, 혁명적 낭만주의에 함몰시켰으며 중국대륙을 "共産風"으로 몰아갔다.
그가 발동시켰던 일련의 급진좌파적 사회주의건설운동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대륙을 망가트려 놓았다. 이후 모택동의 극좌적 오류는 계속해서 비극적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졌으며 華國鋒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잘못을 범했다. "毛 주석이 친히 선택한 후계자"였다는 화국봉 역시 현대화론자였지만 계급투쟁론자였다. 등소평과 유소기 등을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수정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정치적 대립을 자초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최고통치자였던 화국봉은 그릇된 현실인식과 맹목적 모택동추종주의로 인해 자신이 신봉했던 모택동사상의 이름으로 심판받게 되는 逆說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권력투쟁에서 패하여 중국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훗날 "모택동 비극의 유산"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의 유지와 유훈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권력세습 왕자다. 모택동과 화국봉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닌지 이제 그가 선택해야 한다.
둘째, 중국은 절대적 권위의 모택동사상을 현실로 끌어 내렸지만 모택동에 대한 추억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중국에서 해방된 프롤레타리아의 영웅들은 한때 그들의 지도자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모택동의 혁명적 유산은 빈곤과 낙후를 남겨 놓았다. 毛 사후 중국 지도자들은 "빈곤을 사회주의로 간주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개혁개방과 경제활성화 등 현대화의 기치를 올렸다. 그들은 金科玉條로 여겼던 唯物論을 한손에 움켜쥐면서도 唯心論의 경험주의를 수용하여 實事求是를 전면에 내세웠고 현실과 유리된 사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들은 이윽고 "마르크스주의가 만병 통치약이 아니며, 모택동의 급진주의노선은 대륙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모택동사상은 더 이상 중국을 구원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자신들을 옭아매어 왔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再評價와 모택동사상에 대한 再解釋이 당 최고지도부의 결단에 의해 정교하게 마련되고 실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택동의 권위를 전면 부정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택동 본인의 極左的 사상오류를 찾아내 이를 모택동사상으로 부터 분리시켰다. 모택동의 위신과 권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배려였다. 심지어 “사상해방”의 기치를 올려 경직된 사상이념의 도그마로부터 탈출하여 생산성을 높이자고 까지 했던 그들이었다. 훗날 모택동은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정서적인 것으로 남아 추억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의 위신과 주체사상의 권위를 간직하고 싶어 할 김정일 위원장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북한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모색하고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서 革命主義를 대신한 점진적 改革主義가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지난날 혁명적 주체사상은 김일성절대주의를 가능케 했고, 체제유지와 발전을 위한 메카니즘으로 완벽하게 기능하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나 변질은 그들의 신념체계에 혼란을 가져와 체제동요로 이어지고, 언젠가는 북한사회를 自己解體過程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낳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적 경험은 절대적 혁명사상도 재평가 해석되어 현실화될 수 있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또한 올바르고 현명하였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개방에 따른 사회혼란 가능성과 새로운 경제모델을 고민하고 있다는 김 위원장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김일성 없는 주체의 나라"에서 이제 결단은 김정일 위원장의 몫이다.(konas)
백 병 훈(국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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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훈 원장님 다운 통찰입니다. 김정일은 사라지던지 아니면 이 글에서 지적하듯이 북한주민을 해방시켜주고 개혁개방으로 나오든지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비정상으로 갈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이라고 봄니다. 계속 백 박사님의 건필을 부탁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
2007-03-31 오후 12:3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