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空洞化, 어두운 北核장래
2·13 베이징 합의 후 북핵 협상 과정이 참으로 참담하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2500만달러를 풀어주기로 미국이 결정한 후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북한 자금을 거래할 중국은행이 대외신용도 하락과 북측 수취계좌 불명을 이유로 BDA 자금의 대북 송금을 거부한 것이다. ‘이런 집단도 국가냐’라는 냉소적 비판이 나온 것이 이즈음이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조건 없이 BDA자금을 해제한다”며, 불법자금이라 규정한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범법자의 손에 현금을 쥐어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13일 외교적 현실주의와 대북 협력을 위해 부시 행정부가 ‘더러운 돈’의 거래에 나섰다고 비판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수중에 입금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2·13 초기 이행사항인 영변핵시설 폐쇄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이 와중에 60일의 시한 4월14일은 지나가 버렸다. 중국은 좀더 인내를 갖자며 미국을 붙잡고 있고, 미국은 “인내심이 무한하지 않다”는 경고를 하긴 했지만,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북한이 지금까지 BDA 자금 일부해제에서 전액해제로, 그리고 이제 송금절차 해결까지 요구 수준을 높여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 태도를 예측하기 어렵고, 그만큼 북핵 장래는 어두운 편이다. 설사 북한이 영변핵 폐쇄 등 초기조치를 이행한다 해도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포기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할 장애가 너무 많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포기 의사가 없다는 것이며, 군사제재 등 오직 강제 조치에 의해서만 북핵을 저지할 수 있으나, 이 방안이 타이밍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미국은 지난해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을 때 강압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지난 베이징 6자회담의 2·13 합의는 북핵 문제의 원칙과 기본인식을 허물고 혼란에 빠뜨렸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의 BDA 자금 전액해제 조치는 사실상 ‘자가당착’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북한이 주도하고 한·중이 방조하는 북핵 게임에 대안 없이 끌려가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전략 변경은 외교원칙의 금도(襟度)를 상실한 것이며, 또 정책적 유용성도 없음이 입증되고 있다. 일본만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유화·양보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 각의는 엊그제 대북 제재의 6개월 연장 방침을 결정했다. 일본의 어느 평론가는 2·13 합의를 ‘부시의 배반, 김정일의 조소(嘲笑)’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북핵 포기에 관심을 안 가진 지는 오래다. 북핵이 ‘협상용’일 뿐이라고 통수권자 자신이 누차에 걸쳐 주장했었다. 노무현 정부는 핵실험 직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밀사를 파견했었고, 2·13 합의 직전에 장관급회담을 북측에 타진하기도 했다. 북핵 해결 전임에도 대북 쌀 지원을 결정했던 노 정부는 여론에 밀려 쌀·중유 지원을 핵과 연계할 것인지 멈칫거리는 모습이다.
결국 북한이 시간벌기로 핵무장을 굳혀 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춤추는 회의’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북핵을 막을 수 없다면 북한 정권의 조기 붕괴나 교체가 대한민국 존립을 위한 방편이 되겠으나, 중국이 옆에서 북한 체제를 돕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대북 인식은 ‘평화’ ‘경제협력’ ‘경제공동체’ 등의 지극히 상상적이고 포퓰리즘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비현실적 인식과 발언은 결국 국민을 기만하고 안보의식을 약화시킬 뿐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2·13 합의의 공동화(空洞化)가 한반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냉정하게 자체 분석하면서 스스로 대비책을 강구해 나갈 때가 왔다.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 이 칼럼은 문화일보 '포럼'(4월17일자)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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