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군포로 소련 강제이송' 사실확인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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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회의실에서 정승조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소장)을 위원장으로 총리실, 통일부, 외교통상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 팀장들이 모여 미 국방부 문서에 포함된 국군 및 유엔군 포로 소련 이송 보고서의 사실 여부를 미국과 러시아 당국에 공식 확인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국군포로 소련 강제 이송' 사실은 미 국방부 비밀해제 문서에서 밝혀진 것으로 지난 13일 미주한국일보가 처음으로 보도해 국내에 알려졌다. 미주한국일보가 11일 입수한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이라는 보고서에는, 6·25전쟁 당시 수 천명에 달하는 국군포로가 북한에서 소련으로 압송·수용돼 강제노동에 동원됐으며, 정전협정 후 포로교환 때도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냉전 종식 후 한국전쟁 미군 포로의 러시아 생존 여부 확인 및 유해 발굴·반환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설립한 '미·러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위원회'의 조사 활동 결과 중 하나로, 1993년 8월26일 러시아 측 정부문서와 관계자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보고서가 인용한 러시아측 속기록에 따르면 스탈린은 52년 9월19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유엔군 포로의 20%를 인질로 잡아놓자'고 노골적으로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런 정황을 토대로 "압도적 다수의 국군이 포함된 상당수 유엔군 포로들이 (스탈린-저우언라이 회담 당시) 이미 소련에 분포돼 있는 수용소들에 비밀리에 옮겨진 것으로 본다"고 결론지었다.
신문의 이같은 보도가 나온 직후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현재의 한·러 관계와 러시아 사회의 개방 정도를 감안할 때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일부라도 가족과 연락이 됐어야 한다"며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국군포로들이 소련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은 1993년 11월18일자 일부 국내 일간지에 보도된 적이 있다"며 "당시 실종 미군 행방 확인을 위해 구성된 미·러 합동군사위원회의 러시아측 대표인 알렉산더 올로프가 부인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날 회의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사실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방침"이라며 "필요하다면 보고서가 포로들의 이송 및 수용 장소로 적시한 러시아 남부지역의 포시에트, 지타, 몰로토프와 중동부지역 야쿠츠크의 옛 콜리마수용소 등 현장을 방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무위원회를 주재한 정승조 정책기획관은 "일단 보도내용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관련국에 확인을 요청키로 의견을 모았다"며 "이 보고서 작성을 전후해 소련 당국이 보고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했는지, 했다면 결과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범정부 국군포로대책위원회'는 국군포로와 관련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고 중장기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1999년 1월 국방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통일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 국장급이 모여 구성됐다. 지금까지 14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국군포로의 소련 이송 문제를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질의에 답하면서 "미국과 소련 등 해당국 무관에 문서 자체를 확인하도록 지시했고 외교부에도 외교계통을 통해 보도 내용을 확인해주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편 소련으로 이송된 국군포로들은 외부와 완전 고립된 채 원시적 생활환경과 중노동으로 인해 수감된지 몇 개월 이내 수백명 씩 숨진 것으로 드러나 현재까지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주한국일보가 18일 보도했다.
신문이 입수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52년 9월2일자 '한국전쟁 포로들을 위한 특정 위치의 소련 통행 수용소들' 첩보 보고서는 1951년 7월~52년 4월 소련 곳곳의 수용소에 보내진 국군포로들의 압송경로, 수용위치와 규모, 수용소의 혹독한 생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우스트 마이스크와 야쿠츠크 사이에 위치한 국군포로 전용 수용소들은 50~200m 간격으로 500~1,000명이 각각 수용돼 있고 탄광, 토목, 댐 공사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뒤 "포로들은 매우 힘겨운 육체적 노동을 하고 원시적 이하의 생활환경에서 살고 있어 '암가(AMGA)'라 한 수용소에서는 1952년 2월~4월 약 300명이 죽었다"고 밝혔다.
이는 1951년 7월부터 국군포로들이 야쿠츠크 수용소로 보내지기 시작된 점을 감안 할 때 한 수용소에서만 불과 8~10개월 새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소련으로 압송된 국군포로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받침하고 있다. (konas)
[관련기사]국군포로 문제의 실상을 밝히고, 대응책을 강구하라!정미란 기자 sori@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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