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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기]실패한 혁명

Written by. 김병관   입력 : 2007-04-19 오후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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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흘러 차있지 않고
 타오르다가 꺼지는 불꽃 보게나
 해는 뜨되 금방 지며
 보름달은 어느덧 이지러짐을
 세도가 하늘을 뻗는 사람에게도
 무상의 바람은 한결 같아라.


 월남의 전성기 티우대통령의 호화판 별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죄업 보응경에 있는 시한수가 뇌리를 스친다. 동서 냉전의 또 하나의 각축장 베트남 여행의 기회는 평소 살갑게 지내온 토요포럼 회원들과 이루어졌다.

 여행의 설레임보다는 세계전쟁의 전술 역사 속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는 길고긴 월남전의 상흔이 아직도 얼마나 남아 있는지가 궁금했다. 특히 월남전의 특수로 우리경제가 크게 도약한 반면에 우리의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자유의 화신이 되어 희생되고 아직도 많은 전우들이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면서  그들과 우리가 풀어야하는 숙업이 남아있는 것만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심경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5시간여의 비행 끝에 호치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영문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환영 인파에 기가 질려버렸다. 알고 보니 월남 패망 후 미국으로 탈출한 300만의 보트피플 중에서 구정명절을 맞아 30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찾아오는데 친척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1970년대 중반, 공산화된 조국을 등졌던  보트피플들을 향해 “이제 안심하고 조국으로 돌아오라”며 포용정책을 펼치는 중이였다.
 
 공산 혁명을 거부하고 조국을 탈출한 반항아들을 환영하는 베트남 인민들을 바라보면서
모질고도 처절한 투쟁으로 쟁취한 공산혁명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거부하고 공산혁명을 성공시켰다면 당연히 계획경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를 역행하고 자본주의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쟁에는 승리하였지만 여느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공산화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공산통일 이후 인민들이 집단농장에 참여하지 않아 메콩강 유역의 옥토마저도 황무지로 변하여 쌀을 수입하였다고 하는데,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한지 21년이 지난 지금은 쌀과 커피 수출이 세계2위로 부상 했다고 한다.

 아직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우리의 60년대 말 수준이지만 최근 몇 년간 7-8%의 성장세를 이어온 경제가 돈과 일자리를 안겨주며 잘 살아보자는 의욕과 희망을 일궈가고 있었다.
1986년 114달러에서 2005년 640달러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한 셈이다. 경제가 호황을 이어가면서 베트남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2002년 6%였던 실업률은 2005년에는 5.3%까지 하락했다고 한다. 경제 성장이 낳은 베트남의 이런 활기찬 모습은 요즘의 한국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베트남과 한국이 대비되는 대목은 한둘이 아니다. 현재 베트남 인구는 8300만명(2005년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63%가 1975년 전쟁 이후 태어난 30세 이하 연령층이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꼽히며, 무한한 청년 인력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선진국의 투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요인이였다.

 특히 요즘 베트남의 고도성장은 과거 한국의 개발독재 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을 모델로 삼아 ‘한국 따라잡기’에 나선 후진국이라는 시각이 베트남을 바라보는 한국여행객들의 눈길에 은연중 묻어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개미떼 같은 오토바이 행렬이 바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변화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왔다. 공산체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무었을 위하여 그토록 질기고 모진 투쟁을 했는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레닌의 선구자격인 트카체프가 1세기 반전에 설파한 것처럼. “현재나 미래나 인민은 사회혁명을 실현 할 수 없다. 오직 혁명가들만이 사회 혁명을 실현 할 수 있다. 각종 사회적 이상은 인민에게는 생소하다. 그들은 혁명적인 소수세력의 사회철학에 종속된다.”고 설파했다.

 호치민을 비롯한 소수의 민족세력들이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독립과 공산혁명을 이룩한 역사적인 쾌거는 드카체프의 말처럼 그들 소수의 야망만을 채운 역사적 과오가 아니고 무었인가. 호치민시에서 1시간 남짓의 거리에 있는 구찌 땅굴은 현재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무려 16000여명의 배트콩들이 이곳 땅 굴속에서 숨어 살면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원시적인 전법으로 유린한 전설적인 본거지였다.
 
 당시의 치열했던 유격전의 실상을 영상물을 우리말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미군과 연합군은 괴뢰군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베트콩 4명중에 여자 베트콩이 1명씩 배치되어 함께 생활하면서 땅굴 생활의 고독을 달래고 투쟁의 의지를 더 강화했다고 한다. 승전 후 그 여인들은 영웅대접을 받아 국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으나 결혼 후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기형아를 출산하여 파혼당하는 등 결국 그들은 슬픈 연가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고엽제로 인해 기형아가 된 쌍둥이 태아를 인큐베이터 안에 보관하여 잔인한 전쟁의 후유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동행한 기업인들마저도 미국이 이 평온한 정글에 와서 왜 잔인한 전쟁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들 이였다.
 
 인류최상의 가치로 이미 입증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고자한 미국의 절박한 선택은 폄하되고 미국의 패권주의만이 비난 받고 있었다. 대부분이 한국인들인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수 십대의 관광차로 이곳을 방문하여 당시의 참상과 자유의 화신이라 자랑스럽게 여긴 우리의 참전 용사들이 괴뢰군으로 둔갑한 현장을 목격하고 어떤 심정으로 돌아 갈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사법고시를 합격한 친구들마저도 주적이 미국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이 위험수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도층들마저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와 북한의 참상을 보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소극적인 공생을 도모하는 민족공조를 외치며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는 등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전술에 놀아나고 있는 시점이라서 더 더욱 마음에 걸렸다.

 대 국민 각성운동을 전개 하여 잘못된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만이 선진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각오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리 향군들의 힘겨운 노력에 이곳 구찌 땅굴은 찬물을 끼얹는 것만 같아 개운치 않은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에는 우리 교민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인 만찬을 가졌다. 호치민시에만 우리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100여 곳이나 있다고 했다. 현지인의 명의신탁으로 운영한다는 우리식당에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음식상이 대부분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고질적인 우리 외식문화가 이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개운치 않았다. 

 다음날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인(4350km) 메콩강 하류에 형성된 삼각주인 정글 미토시를 관광했다.
 
 통통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가는 도중에 우리함께 뱃노래를 부르면서 여행의 진수를 만끽했다. 부인 3명에 딸이 12명이라는 어느 그늘 집에서는 전통악기로 몇몇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그 집 딸들이 노래로 여행객들의 피로를 달래주고 있었다. 우리도 함께 어울려 아리랑을 부르면서 흥이 많은 우리의 진면목을  원주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정글 탐험은  현지주민들이 운영하는 카누를 4명씩 나누어 타고 앞 뒤 사공2명과 함께 노를 저어며 야자 밀립수를 탐사하면서 원주민 흉내를 내보았다.
 
 아무근심 없어 보이는 그들의 표정이지만 1달러씩 수고비를 주자 '깜은'(감사하다는 베트남 말)이라고 밝게 웃었다.

 우리의 기업들이 베트남에 많이 진출하는 관계로 대학에서 한국어과는 영어 다음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특히 월남전 당시에 우리 한국주재원들과 월남 여인들 사이에 태어난 '라이 따이한' 들은 한국기업에서 특채를 하는 관계로 지난날에는 신분을 숨기다가 이제는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젊은 청년은 우리에게 자신의 자리까지 내주면서 아버지의 나라사람들을 반겼다. 보통상식으로 파병군인들이 라이 따이한을 만든 줄 알았는데 대부분이 월남 특수로 돈벌이가 좋았던 기업인들과 주재원들이 현지처 또는 정식 결혼하여 생활하다 공산통일 후 눈물을 머금고 훗날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공산월맹과 적국이기 때문에 북한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정치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베트남 지도자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예컨대 지난 4년간 한국의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에 집착하는 동안 베트남은 ‘과거 불문’ 정책을 펴온 것이 역력했다.. 이같이 베트남 지도자들의 유연함은 1992년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1995년 미국과의 수교 등 과거 전쟁을 치렀던 나라들과도 거침없이 손을 잡게 만들었다. 미국은 현재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2005년 59억달러)이며, 중국은 최대 수입국(2005년 58억달러)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아직 투자 규모로는 베트남 투자국 중 4위(2006년 투자승인액 7억6000만달러) 정도지만 최근 들어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베트남 경제의 최대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이익이 된다면 과거를 묻지 않고 협력한다는 실용주의 노선이다.
 
 가이드 알랙스군의  안내로 고급 아파트촌을 방문해 보았다. 아직도 내부는 좀 엉성하기는 했지만 평당 270만~280만원대로 43평 크기 아파트 가격이 1억1000만원~1억2000만원 정도로 호가 한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미만인 나라에서 1억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은 아직 외국인에게는 부동산 소유를 금지하고 50년 단위 임대만 허가하고 있지만 월세를 놓기 위해 아파트를 분양 받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쭝화 지역의 경우 방 3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450 ~600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의 명의신탁으로 집을 사서 공증을 해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 있었다.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범법행위를 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호찌민시 외곽 푸미헝 지역에는 1995년부터 약 4500㏊ 규모의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데, 3억원이 넘는 60평 규모의 신축 호화 아파트도 속속 분양되고 있다고 한다. 호찌민시에는 연 소득이 50만달러 이상인 사람도 5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공무원들의 월급은 30불 정도인데 뇌물로 들어오는 검은 돈이 10배가 넘는 다고 한다. 여느 개발도상국처럼 부정부패마저도 비공식 에너지로 작용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었다.
 
 베트남의 마지막 밤은 휴양지로 이름난 붕따우 해변에서 보냈다.
휴일을 맞아 찾아온 피서객들이 새벽부터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하루정도 묵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귀국을 위해 호치민시로 돌아와 북한이 운영하는 대동강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이념의 도구화가 되어있는 북한 친구들이 베트남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자못 궁금한 일이기도 했다.

 호치민시의 또 하나의 명물 선상 만찬을 즐기고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가수 “비”가 공연을 끝내고 수많은 인파들이 흩어지는 관계로 도로가 마비되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우리의 대중 스타들이 타국에서 까지 이렇게 인기가 폭발하는지 미처 몰랐다. 월남전 개전 초에 미국이 패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던 탄허 선사께서 21세기는 한민족이 대웅비하여 세계의 주도국이 된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베트남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업들과 한류스타들이 국력의 바로미터인 셈 이였다. 월남전의 교훈을 거울삼지 않는 좌파근본주의자들이 더 이상 국정을 농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선진화의 최우선 과제임을 자각케 하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konas)
 
 김병관(서울시 재향군인회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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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베트남이 안보불감증으로 망했듯이 오늘의 우리의 국가안보 불감증에 대해 우려를 아니 할수없다 . 김정일 정권의 전략전술의 시나리오에 광대 역할을 하는것이아닌가 생각이든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20 오전 9:49:32
    찬성0반대0
  • 마이산 어른    수정

    우리 국민들이 안보 불감증이 위험 수위에 있으며,우리의 지식층 마져도 소련의 붕괴와 북한의 참상을 보면서도 교훈을 얻지못하고... 김정일 대남 전략전술에 놀아나고 있습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19 오후 3: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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