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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창설 50주년: 세계사적 의의와 한-EU관계

Written by. 조홍식   입력 : 2007-04-25 오전 1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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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5일 유럽연합은 로마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1957년의 로마조약은 1951년 파리조약을 통해 설립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라는 부분적인 시도를 경제 전체로 확대하여 유럽경제공동체를 설립하는 조약이었다. 그 후 반세기 동안 유럽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경제에 한정되어 공동시장으로 불리던 유럽공동체는 정치적 영역까지를 포함하는 유럽연합으로 발전하였고, 서유럽의 6개국으로 출발했던 유럽호는 이제 27개국을 포함하는 거대한 함선이 되었다.

 이 작은 글에서는 우선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의 심화와 확대가 인류의 역사에서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짚어보도록 한다. 그리고는 유럽연합의 미래발전 방향과 해결해야 하는 여러 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마지막으로 한국과 유럽연합의 상호 관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우리 나름의 50주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세계사적 의의

 1950년대 유럽 창설의 가장 커다란 목표는 유럽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장기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반세기 이상의 평화를 누렸으며 이는 폴라니가 지적했던 1815-1914년의 ‘백년의 평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훨씬 더 평화적이고 협력적이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경쟁적이고 대립적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핵심으로 하는 유럽의 건설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다른 지역에도 시사적이다.

 공동시장으로 불리는 유럽경제공동체는 변화를 적절한 속도로 조정해 가면서 유럽 내부의 경제 성장을 촉진시켰고 유럽을 다시 세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공동시장에서 더 나아가 단일시장과 단일 화폐를 실현함으로써 유럽은 경제에 이어 금융과 화폐에서도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유럽 통합이라는 서로 다른 국가와 사회의 교류와 결집은 분명히 평화를 낳았고 번영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이러한 기여가 더욱 놀라운 것은 계속적인 확대를 통해 그 영역을 점차 넓혀왔다는 점이다. 서유럽 일부에서 시작된 운동이 이제는 철의 장막 건너편 과거 공산권이었던 국가들까지도 포함하는 진정 대륙적 규모로 확산된 것이다. 유럽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서 주변의 국가들에게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였으며 안정적 민주주의의 실천을 가장 핵심적인 가입 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의 남유럽에서 권위주의의 청산과 구 중·동유럽에서 공산주의를 청산하는데 유럽 가입의 홍당무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현재 가입 후보국인 터키의 변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 통합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통합이 결국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시장통합 과정의 일부분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단일시장의 형성과 유로의 출범과정 및 운영방식을 보면 지난 20여 년간 유럽통합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통합이 동시에 반시장적 공동농업정책이나 사회구조정책, 대외원조정책 등에 앞장섰다는 점이나 세계적으로 추진하는 친환경적 주도권 등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세기의 유럽 건설사는 지역통합의 모델로서 민족주의와 민족국가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잘못 이해하는 것처럼 민족국가를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지 않으면서 이들의 협력과 화합을 이끌어 냈다는 점은 비단 유럽 뿐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통합이 관심을 끄는 이유이다.

 유럽연합의 미래

 유럽연합이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현재 유럽헌법조약으로 대표되고 있는 제도적인 문제이다. 유럽헌법조약은 ‘헌법’이라는 용어를 통해 상징적으로 유럽연합을 ‘국가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실제로는 점차 불어나는 회원국의 수를 감안하여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어내는 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 조약은 어렵게 체결되어 18개국에서 이미 비준을 하였지만 지난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어 비준 과정이 중단된 상태이다. 이 조약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원하듯이 부활시킬 것인지, 아니면 사장시키고 다른 조약을 다시 추진할 것인지는 프랑스의 대선이나 영국의 수상 교체 등 다양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베를린 정상회담에서는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 이전까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기간에 대한 선언만을 담고 있어 그 내용면에서는 유동적이다. 다만 27개국의 유럽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를 찾아내는 것은 유럽 건설이 대면하게 된 새로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둘째, 유럽의 내부적 균형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회원국들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과제이다. 2004년 확대에서 유럽에 가입한 10개국들의 평균 경제 수준은 기존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은데 이런 심각한 경제수준의 불평등을 성공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는 미래 유럽의 성패를 판단하는 데 핵심이다. 또한 선진국 수준의 경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도 영국, 아일랜드, 에스파냐 등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그리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낮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경기 조정 능력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유럽에 대한 일부 국가 국민들의 여론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의 문에서 40년을 넘게 기다려온 터키를 과연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21세기 전반기 유럽 확대의 가장 큰 딜레마이자 관건이라고 하겠다. 터키의 가입 여부에 따라 유럽의 정체성이 보편성을 지닌 지역통합 모델인지, 아니면 기독교 문명권의 통합 모델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경제적 거인이지만 정치적 난장이로 불려왔던 유럽이 과연 이 불균형을 극복할 수있을지의 문제이다. 유럽은 미국과 공동의 가치와 사상을 공유하는 부분이 큰 반면 세계 주도에 있어 경쟁적이거나 대립적인 차원 역시 안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유럽의 분열은 이러한 시도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향후 유럽의 외교안보정책의 공동화 성패에 따라 21세기 세계의 정치적 지형은 크게 좌우될 것이다.

 한국과 유럽연합

 한국과 유럽연합의 상호관계는 그 실질적 중요성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가시성은 크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물론 이런 상황에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한국의 경우 안보 중심적 사고는 ‘주변 4강’의 중요성을 확대하였고 냉전시대의 대미 종속적 사고는 미국 이외의 국가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였다. 유럽의 경우 통합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외부에 외교력을 집중할 만큼 여유가 없었고, 여유가 생긴 다음에도 동아시아는 뒷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소원한 관계는 1990년대 들어서부터 조금씩 변화해 왔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안보 부문에 비해 경제 부문의 중요성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도 유럽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유럽 역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역동적 경제가 그들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이에 유럽은 1993년 신아시아 전략을 수립하기에 이르렀고, 1996년부터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가 제도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유럽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계기는 1997년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내에 투자되었던 외국 자본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유럽이, 그리고 다음을 일본이, 마지막으로 미국이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유럽의 역할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 2005년 3월 현재까지도 국내에 투자된 외국 자본의 31%인 245억 유로는 유럽연합에서 도입된 것으로 유럽이 미국이나 일본에 앞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으로도 유럽연합은 미국을 앞질렀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부당하게 평가되는 유럽의 중요성이 그나마 재고되었던 것은 2000년 ASEM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면서이다. 당시는 아직 유럽연합의 중·동구 확대 이전이라 수는 지금보다 적었지만 한국에서 수십 명의 국가 원수 및 정부 수반들이 모이는 회의였던 만큼 외교력이 집중되었고, 그 결과 유럽을 향한 지적·사회적 동원을 경험하였으며 몇 가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였다. 2001년부터 한국과 유럽연합 사이에는 무역과 협력을 위한 기본협약이 발효되어 양자관계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고, 최근 2006년에는 과학기술협정이 체결되었다. 한국은 또한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갈릴레오 위성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럽이 한국에게 중요하게 다가온 또 다른 분야는 대북정책에 있어서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려는 유럽연합의 입장에서 한반도에서의 대화와 화해, 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모두 작지만 소중한 자원으로 작용하였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2001년 5월 당시 의장국인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 대외관계 집행위원 패튼, 그리고 외교안보 고위대표인 솔라나 3인방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유럽연합 대표단은 또 2007년 3월 6~7일에도 북한을 방문하는 등 한반도의 대화 채널로 적극적인 역할을 희망하고 있다.

 유럽은 북한의 핵실험 사태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유엔의 사치품 수출 동결과 같은 제재조치에 참여하면서도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또 이와 동시에 2006년 11월에는 유엔 인권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제안함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한국의 입장에서 유럽연합은 하나의 외교적 방향의 기준이 될 수 있고 자원이 될 수 있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일방주의적 경향을 자주 보여주는 미국이나 과거 부정적이고 중상주의적 성향의 일본, 그리고 기본의 정치적 가치에 있어 우리와는 전혀 다르거나 멀리 있는 러시아나 중국과 공유할 수 있는 외교적 가치와 문화는 많지 않다.

 유럽연합은 스스로가 여러 국가의 연합이기 때문에 자국 또는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고,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온건한 해결책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노력을 행동 및 제재와 적절히 병행하는 깊은 역사에서 비롯되는 실용주의적 경향이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유럽의 모범적 노력이나 이란과 지속되는 대화와 타협 등은 위와 같은 경향의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끝으로 우리가 유럽 통합의 반세기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통합의 동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유럽 사람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통합하기로 결심한 것은 수백 년 동안 민족주의들 간의 내부적 경쟁과 전쟁의 결과가 모두의 파멸로 귀결되었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긴 과정이 똑같이 불행하게 반복되지 않고 곧바로 민족 간의 공존과 통합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konas)

 조홍식(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akebe@freechal.com)
 출처: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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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한국도 이제는 아시아권 경제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본다 . 일본경제를 뒤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현시점에서 EU와의 FTA 체결은 다양화되어가는 국제 경제질서에 앞장서가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26 오전 9: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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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수정

    한국이 EU와도 FTA체결할려는데 코나스가 시기적으로 좋은 글을 올려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코나스 편집진에게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25 오전 1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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