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분단이 낳은 기구한 팔자
두 가지 북한관련 보도가 관심을 끈다. 하나는 24년전 아웅산 테러의 주범으로 미얀마 수용소에서 최장수 외국인 범죄자로 생활하고 있는 강민철이 남북한 어디에도 가기 싫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이탈주민이라는 용어의 부정적 이미지와 거부감 때문에 그들을 ‘새터민’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명칭 사용을 중단해 달라는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황장엽)의 요청을 통일부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아웅산 테러범과 새터민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조국분단이 낳은 기구한 팔자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스스로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새터민이나 망명자 문제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미국에 있을 때 어느 목사님은 자신도 북한 실향민의 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미국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재미동포들 중 북한 출신이 많다는 이야길 들려주었다. 그 분에 의하면 북한이 싫어 월남했고 한국에서 살다보니 그것도 아니다 싶어 낯설지만 결국 이민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였다.
북한이 싫어 탈북하거나 망명하고 월남하여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북한출신 동포들이 그들의 새로운 삶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해하고 있을까? 죽음을 무릅쓰고 배고프고 자유가 없는 동토(凍土)를 떠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물질이 풍부한 희망의 나라라고 동경하던 한국에 살면서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새터민들의 한국생활은 북한과 비교할 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새터민 중에는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안정된 직장도 구하고 결혼도 하여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새로운 삶을 새롭게 꾸려가는 데 성공한 사례도 매우 많을 것이다. 설사 그리운 사람들을 북한에 두고 떠났지만 한국생활에 만족해하면서 탈북을 후회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언론에 왕왕 보도되는 것처럼 새터민들의 한국 생활이 반드시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북한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새터민으로서 자본주의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헐벗고 굶주리던 북한생활을 그리워하면서 탈북한 림일씨가 쓴 “평양으로 다시 갈까?”의 책 제목처럼 후회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림일씨가 고백한 것처럼 한국사회의 어둡고 무서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거 정말, 잘 못 온 거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꿈과 희망을 안고 기회의 땅을 찾은 새터민의 대략 75%정도가 일용직 근로자 또는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소득 수준이 낮고 일반인과 교류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어느 재미 한인 목사님의 이야기가 사실일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성공하지 못한 새터민의 입장에서는 못 사는 북한을 떠나 한국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사선(死線)을 넘는 모험을 했으나 이 또한 길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쓰리겠는가?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한 새터민들이 겪고 있는 기구한 팔자와 고통의 본질은 분단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분단을 탓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부가 새터민이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발전하여 평양을 떠나고 싶지 않도록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여 동남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탈북자나 새터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실향의 설움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Konas)
홍 득 표(인하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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