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누구를 향한 것인가, 평양에 물어야"
이동희 박사, 자유총연맹 조찬 포럼서
"북한군 탱크3대가 서울 광화문 앞에 진을 치자 시내는 금방 인민군 찬양가로 뒤덮이고 공산군 천지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의용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의용군에 징집된 아는 사람 집에 숨어있었는데 공산군은 후퇴하면서 인민군에 협조하고 부역한 그 집 주인부터 죽이고 북으로 퇴주 했습니다. 이게 바로 공산군의 본 모습이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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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아침 서울중구 장충동 자유센터에서 열린 자유총연맹(총재 권정달, 전 국회의원)주최 조찬 포럼에 강사로 참석한 이동희(전 서울산업대학교 총장) 서경대학교 석좌 교수는 '정전 54주년에 다시 생각하는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의 서울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공산군의 잔악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는 또 강연 말미에 "북한의 핵무기가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를 청와대는 분명하게 북한에 물어야 한다" 며 특유의 감각적 제스츄어와 함께 촌철 평했다.
이 교수는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이 지난 역사를 너무 모르고 또 불과 20여년 전 역사마저 가르치지 않으니 알 턱이 없다면서 카투사 장병을 대상으로 교육한 예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언젠가 미군에 예속돼 활동하고 있는 카투사 장병을 대상으로 교육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누군 줄 아느냐', '88올림픽을 이끈 박세직이란 사람을 아느냐' 고 물었더니 제대로 대답하는 아이들이 없더라" 며 "이런 식으로 교육해서 어떻게 되겠느냐" 고 역사교육 부재현상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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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11기로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을 역임한 예비역 준장인 이 교수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18살에 제2국민병으로 입대해 부산에서 16일 간 훈련을 받고 강원도 철원으로 갔다가 직후 육사에 입교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당시 훈련병은 M1 소총 몇 번 사격하고 수류탄 투척 훈련 조금 하고는 미군 잠바에 주먹밥 몇 덩이를 들고 전방으로 바로 투입되었다" 며 당시 본인을 포함한 '022' 서울 군번 입대장병들은 전원이 철원으로 이동해 9사단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으며 함께 갔던 서울 매봉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다 전사해 현재 초등학교 반 동창생은 3명만 남아있다 고 아픈 기억을 되살려 내는 모습이었다.
이 교수는 이 날 포럼 참석자들이 자유총연맹 회원인 점을 감안해서인 듯 자유총연맹이 나가야 할 길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자유총연맹이 정전 54년과 동일한 창설 54주년임을 비유하고는 자유총연맹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단체로 반공이 국시인 시절에 그 역할이 지대했음을 평가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맺은 것과 자유총연맹을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고 말해 박수갈채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또 지난 17일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미 해외참전용사초청 행사에 참석해 방한단 대표로 참석한 미 예비역 해병 대령인 위드한 씨와의 대화내용을 소개하면서 "나와 똑같은 18살의 나이로 참전한 그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코리아' 란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왔다는 말을 하더라" 며 "당시 국민소득 57달러로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꼴찌에서 여섯 번째인 그런 나라가 지금은 그 200배인 1만 5천불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에 방한한 그 분들도 깜짝 놀라더라. 당시 서울은 명당성당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폐허로 변하고 잡초만이 무성했다" 면서 그런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주역들이 바로 오늘의 우리사회 원로들이라고 앞 테이블 참석자들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는 또 서울 평화상 수상자로 우리나라에 온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이 수상식장에서 말한 '대한민국이 안보기적을 바탕으로 경제와 정치 발전을 이룩했다' 는 발언을 인용한 뒤 "공산주의 노예로 살기 보다 자유를 택한 게 한국민족이고 세계에서 공산주의와 싸운 마지막 국가가 한국이자 또한 자유총연맹"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생애에 있어 가장 큰 쇼크(충격)는 이승만 대통령과 처음으로 악수를 나눈 것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방북 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방북도 언급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방북 후 한달 만인 2002년 7월 14일 기자들과 만나 '언제쯤 통일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20, 30년 후에는 될 것으로 본다' 며 생전 처음으로 정직한 대답을 했다" 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일었다.
또 이와 관련해 백낙청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의장이 자신과 만나 노코멘트를 전제로 '자신이 만난 김정일은 40, 50년이 돼도 통일은 안 된다는 말을 하더라' 고 말했다면서 미국의 한국전쟁과 관련한 저명한 브르스 커밍스 교수의 말도 덧붙였다.
즉 커밍스 교수가 미 거주 시카고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남북통일은 김정일이 있는 한 안 된다" 고 선언한 말을 상기시키고는 "이제는 남과 북 어느 한쪽이 아닌 양쪽이 다 변해야 한다" 며 체제와 제도, 의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또 독일 통일의 예를 들면서 "독일이 통일된 것은 철저한 민주주의식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퍼주기 식으로 돈만 준다고 해서 (통일이)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시스템을 통한 동시성으로 진행해야 된다" 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는 망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둬 이념의 시대는 갔다. 문화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주인으로서의 문화적 주체성을 견지한 가운데 민족적 주체성도 지켜나가자" 고 제언했다.
그는 이와 함께 남과 북이 버려야 할 잔재로 남한의 부정부패와 배타성, 어느 일방에의 의존적 자세를 청산 대상으로, 북한은 세습하는 왕조적 잔재와 폐쇄성, 반 인권, 빈곤타파와 (김일성, 김정일을 신격화하는) 신화 배격 등 장애요소들을 배제해야 통일에의 길은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시민사회집단의 통합된 힘을 거론했다.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은 19세기 구한말 청·일·러가 대한제국을 놓고 벌이는 회담과 비슷한 꼴이며 어느 국가든 믿을 수가 없다. 이번 침몰된 선박 사건을 놓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 발표는 마치 그 당시 청국이 조선에 대해 취한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지금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중국에 매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대화는 하되 우리 스스로의 힘이 강해야 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집단의 힘이다" 고 말했다.
그는 또 김일성은 탱크로 동족을 죽이고 김정일은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오겠느냐? 청와대는 북한이 핵무기를 미국에 쓸 것인지, 어디다 쓸 것인지를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국방력이 강하고 사회적 힘이 강할 때 통일은 오게 된다 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에 앞서 권정달 자유총연맹 총재는 인사말을 통해 "정전 54주년이 되듯이 자유총연맹도 54주년이 되는 해로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며 "그렇지만 전후 세대가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는 6·25전쟁이 마치 옛 삼국시대의 전쟁으로 비유되는 것도 오늘의 현실이다" 면서 "그런 측면에서 오늘 포럼의 의미는 더 각별히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했다.(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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