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군번을 아세요?"
[인터뷰]6·25참전용사 김시한씨
“6·25, 더도 덜도 아닌 사실그대로 가르쳐야”
"6·25를 (젊은 세대들에게) 정확히 인식되게 해야합니다. 과장 할 것도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참전용사를 홀대하고 곡해하며,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으니 6·25전쟁이 남침이 아닌 북침 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도 참전용사와 미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안경너머로 조용조용하게 말을 이어 나가는 老 참전용사의 눈가에 순간적으로 쓸쓸함이 배어 나오는 듯 했다. 어느새 57년째가 되는 6·25지만 해가 거듭될 때마다 쓸쓸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고 했다.
|
쉰 일곱 돌 6·25 기념일이 하루 지난 26일 오전 기자는 6·25전쟁 발발 3개월 후 부산 피란지에서 징집돼 일본에서 훈련을 받고 미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조금 특이한 경우로 K-군번을 부여받은 참전용사 김시한(77세, 서울 숭인동)옹을 만났다. 그는 K-군번에 대해 우리 군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전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 교편을 잡다 군에 입대, 제대 후에는 지금까지 50 여 년 동안 古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 참전용사는 기자가 사무실과 겸하는 서점으로 들어서자 인자한 할아버지 얼굴 모습 그대로 환한 미소와 함께 반갑게 맞이했다.
자리에 앉아 채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그는 곧장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말했던 것처럼 6·25전쟁을 통해 자신이 겪은 체험과 자료를 어딘가에 알리고 전해주는 일이 6·25에 대한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있다며 작성중인 초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
한국 고서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있는 김시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당시 책자 식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앨범자료를 꺼내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한국에서의 3사단이라고 표지에 인쇄된 앨범과 자료집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3사단의 전투상보와 활동 내역들이 상세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그는 여기서 3사단에는 자신처럼 한국군도 일부 있었지만 특히 그리스 군은 별도의 부대로 편성되고 그들은 어떤 부대보다도 엄정한 군기아래 전투에서의 활약상 또한 뛰어났다고 회상하고 그런 내용이 담긴 자료를 주한 그리스 대사관에 설명했더니 복사본 1부를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신과 같이 훈련을 받은 K-군번(K- 1134423) 출신은 소수인원으로 우리 군내에서도 6·25전쟁 참전자로 K-군번 출신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하고 이런 내용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
한국 고서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있는 김시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당시 책자 식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앨범자료를 꺼내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한국에서의 3사단이라고 표지에 인쇄된 앨범과 자료집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3사단의 전투상보와 활동 내역들이 상세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그는 여기서 3사단에는 자신처럼 한국군도 일부 있었지만 특히 그리스 군은 별도의 부대로 편성되고 그들은 어떤 부대보다도 엄정한 군기아래 전투에서의 활약상 또한 뛰어났다고 회상하고 그런 내용이 담긴 자료를 주한 그리스 대사관에 설명했더니 복사본 1부를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신과 같이 훈련을 받은 K-군번(K- 1134423) 출신은 소수인원으로 우리 군내에서도 6·25전쟁 참전자로 K-군번 출신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하고 이런 내용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
그는 또 연대장이 전선지역으로 지휘 차 이동을 하게 되면 연대장 호위를 위해 짚차에 50미리 포를 설치하고 연대장 차량 후미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면서 미군 연대장은 부대를 지휘할 때면 항상 선두에서 용감하게 지휘해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군들은 한국을 위해 그렇게 어려운 힘든 전투를 하면서도 단 한번 한국을 비하하거나 싫은 내색 한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우호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였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특히 "겨울철 북한 지역에서의 임무수행 중 어려웠던 점은 추위와의 또 다른 전쟁으로 야전에서 참호를 파거나 야간 보초임무를 수행할 때가 가장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 토로했다.
그는 흥남철수와 관련해 훙남부두에 몰린 피란민 대열에 대해서도 전쟁의 아픈 상흔을 상기시킨데 이어 부대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대거 투입으로 15연대가 흥남을 최후까지 사수하다 크리마스를 하루 앞둔 1950년 12월 24일 흥남에서 부산으로 철수, 이후 51년 4월 경 한강도하작전 참가 등 54년 제대할 때까지 미 3사단 15연대에서 미군들과 생사를 함께 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전역 시 부대원들은 특별히 제작한 앨범과 사단 전투상황이 담긴 자료집을 기념품으로 주어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일부 전우들과는 지금도 태평양을 건너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끝으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 6·25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바르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6·25전쟁과 참전용사를) 보는 것 같다. 6·25전쟁은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었고 참으로 대단한 전쟁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바른 교육을 누차 강조했다.(Konas)
이현오 기자
- 관련기사보기
-
"노병은 죽지 않고 살아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라는 견지에서 김시한씨의 K-군번이야말로 6.25전쟁을 생생하게 사실그대로를 생생하게 전할수가 있는 분이라고 할수 있다. 정말 좋은 기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8 오전 9:17:35이런 분들의 인터뷰를 많이 녹취해 둬야 합니다. 역사기록이며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참전용사들의 인터뷰는 유언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언론이 앞장서서 아직 살아있는 6.25참전용사들을 많이 접촉해 전쟁의 비극과 교훈을 발굴해 내시기 바랍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8 오전 8:5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