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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서해교전의 진실③

韓哲鏞 前 5679부대장 備忘錄

Written by. 한철용   입력 : 2007-06-30 오후 2: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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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령부의 표적조사」
  
 내가 징계에 不服(불복)하고 轉役(전역)을 결심하게 된 원인은 장관과 정보본부의 정보 축소·은폐·왜곡·조작이었으나 近因(근인)은 정보본부장이 우리 부대에 대한 기무사령부의 조사 종용과 기무사의 우리 부대에 대한 소위 표적조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7월4일 정보본부에서 韓·美 간에 북한 경비정이 누구의 지시에 의해 선제 기습사격을 가했느냐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이때 정보본부의 입장은 서해교전이 우발적이고 경비정의 단독 범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보본부의 이런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회의 전에 정보본부장이 은근히 「침」을 놓는 발언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와 우리 부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다. 서해교전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선제 기습공격이고, 이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집된 정보, 특히 6월13일 침범과 6월27일 침범시의 특이 징후만 보더라도 사전 계획된 선제 기습공격이고 의도적인 도발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정보본부는 아직도 마치 어느 특정집단의 대변자인 것처럼 「우발적」이고 「경비정 단독범행」이라고 계속 주장하길래 추가적인 자료 두 건을 갖고 정보본부의 입장에 반박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정보지원 미흡으로 조사하겠다고 천명하였던 것이다.
   
  조사결과를 公表할 수 없다니…
 
  내가 추가로 발표한 정보는 이미 지원된 정보에 비하면 蛇足(사족)에 해당되는 가치밖에 없는 정보였고, 정보본부에서는 숨은 뜻을 알아낼 수도 없는 한 줄짜리 정보였다. 우리 부대의 입장과 동일한 미군 드프레이터스 준장의 주장을 묵살하고 정보본부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하여 내가 중간에 제동을 걸었더니 정보본부장이 화를 냈다. 
  
 여기서 정보본부장이 우리 부대를 조사해야겠다고 작심을 하고 기무사령관과 장관에게 조사토록 보고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는 정보사 정보처장도 합세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7월8일과 9일, 이틀 동안 기무사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7월8일 기무사령관이 조사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을 때, 『조사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니 조사하지 말고 정보지원 문제는 정보본부와 협조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나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장관과 합참의장의 지시이기 때문에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사 결과를 전비태세검열실에서 조사한 2함대사령부의 조사결과처럼 公表(공표)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된다』면서 『대통령에게는 보고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公表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장관님과 의장님께 항명하는 것이냐』고 하는 바람에 나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나의 주장을 포기했다. 
  
 조사결과를 나중에 받아 보니 완전 「표적조사」였고 우리 부대에게 불리한 내용만 기술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편파적이고 무슨 의도가 숨겨진 조사결과였다. 가치가 별로 없는 정보까지 나열하여 「정보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보고하느라 그것을 보고하지 못한 상태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6월13일과 6월27일에 있었던 결정적이고 매우 중요한 정보는 정확하게 보고된 상태였다. 그것만 가지면 대비태세를 갖추는 데 충분한 정보였다. 정보란 단어 하나라도 적의 企圖(기도)와 意圖(의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정보지원이 미흡했다고 지적한 반면, 정보본부에는 별 지적이 없었다. 지원된 정보 중에 단순 침범 징후에만 해당되는 것을 갖고 판단했기 때문에 단순 침범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정보본부에서 블랙 북에 양일간에 걸쳐 수집된 북한 경비정의 결정적이고 매우 중요한 특이 징후를 빼고 작전부대에 배포하여 작전부대가 수수방관토록 했는지에 대하여 지적을 안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왜 7월1일까지 북한군의 도발을 「우발적」이라고 했으며, 7월4일까지는 적의 「의도적인 도발」을 경비정의 「단독범행」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 지적을 안 한 이유도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국방부에서 정보를 축소·은폐·왜곡·조작한 것에 대하여서는 전혀 지적을 안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장관의 의도적인 왜곡판단과 조작은 왜 지적을 안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장관님도 정보 왜곡 판단과 조작에 관여되어 있다』고 하니, 기무사령관은 괘씸죄를 내게 씌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항공사진 전송체계 장비(KCITS) 차단과 관련해 정보본부장과 정보사령관이 한편이 되어 나와 언쟁했던 사건, 그리고 SCO(보안통제 장교) 정보사 배속문제로 인한 갈등 문제 등으로 생긴 나와 정보본부장의 불협화음이 내가 마치 본부장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판단해 본부장 등이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하여 이번에 이것까지 같이 묶어 나를 처리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대와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나를 징계하려고 했던 장관이 경질되었으니 나보고 참으라면서 만류하는 사람도 있고 軍의 명예를 위해서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우리 부대가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며, 나까지도 再평가될 것이라고 위협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나의 功名心(공명심) 때문도 아니요, 억하심정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 부대와 나의 명예를 위한 정당방위였던 것이다. 우리 해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도 우발적이며 경비정의 단독범행이라고 정보본부에서 분석 평가했을 때만 해도 울분만 터뜨리고 꾹 참고 있었다. 
  
 마침 울고 싶었는데 나의 뺨을 때려 준 것이다. 국방부 지휘부에서는 우리 부대에 대해 표적 조사를 하고 급기야는 조용히 울분을 참고 있는 나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초전으로 징계처리를 결정했던 것이다. 소장 한 명 정도는 眼中(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나를 옭아매려고 했기 때문에 내가 반발한 것이다. 내가 제3者인데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또는 다른 목적을 갖고 양심선언 같은 돌출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내가 힘이 없다고 업신여기고 함부로 취급을 하면서 나를 짓밟았기 때문에 「지렁이가 꿈틀」한 것뿐이다. 
  
 7월15일 기무사령관에게 書翰(서한)을 보내 이번 정보의 축소·은폐·왜곡 등에 대한 責任所在를 분명히 밝혀 달라고 했지만 대답은 『정보지원이 미흡했고 또 장관님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누구한테 들었느냐』는 것이 전부였다. 일주일이 지나도 책임 소재를 밝히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死守한 전투」를 「실패한 전투」로 卑下
  
 그래서 나는 정면 돌파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7월22일에 전역지원서를 전격 제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육군 참모총장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또는 총장의 결정인지 모르지만 전역지원서가 반환되었다. 총장 비서실장인 임관빈 준장(육사 32기)이 전역지원서를 반려하기 위해 나를 찾았다. 그에게 『10월 인사시에 관련자들에 대해 책임추궁을 해야지 봉합을 하면 지금 곪아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터지니까 失機(실기)해서는 안 될 것』이라 피력하자 『그렇다』고 하면서 10월에 어떤 조치가 이루어질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내가 관련자로 지목하는 대상은 장관, 정보본부장 등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다.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再신임을 받아 교체되지 않기 위하여 全방위로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서해교전은 사안이 중요한 것인 만큼 장관이 「전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면서 자진하여 사표를 제출했더라면 아마도 추앙받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무사령관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유도를 했어야 우리 軍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軍의 명예도 손상되지 않았을 터인데 기무사령관마저 장관과 의기투합해서 오히려 말렸어야 될 직책에 있는 사람이 징계를 더 부추기는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징계뿐만이 아니었다. 2함대 사령관은 보직해임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장관 개인이 살기 위해서 목숨으로 NLL을 死守(사수)한 전투를 「실패한 전투」로 卑下(비하)했던 것이다. 
  
 장관이 백령도 등 서해교전 지역을 방문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서해교전장을 찾아 散華(산화)한 젊은 장병들의 英靈(영령)을 달래고 위로하는 것으로 매우 순수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징계 발표를 듣는 순간 서해교전장 방문도 再신임을 받기 위한 手順(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너무나 허탈했다. 
  
 정보본부장은 서해교전을 우발적이고 상부의 지시를 받지 않은 경비정의 단독범행이라고 마치 특정집단의 대변인처럼 판단했다. 그러고 난 후 그것을 韓·美軍들에게 강요했다. 
  
 그동안 만류와 설득도 많이 받았다. 합참의장, 국방차관, 장성들이 그렇게 했다. 한 개인이 조직 앞에서는 무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이런 만류와 설득을 뿌리쳤다. 우리 5679부대의 명예를 위해서 또 나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더 나아가 軍 발전의 癌(암)적인 존재를 수술하기 위해서, 종국적으로는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서해교전의 진실을 때가 되면 밝히기로 결심했다. 
  
 나에게는 진실과 정의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그리고 하느님이 나를 지켜 주고 있다. (끝) (konas)

 韓哲鏞 / 前 5679부대장·예비역 육군소장
 출처: 월간조선 2002년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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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당포함피침 서해교전희생자 정보부재로 무방비상태에서허를찔려 기습 공격 받아서 희생된것임 정치군인없는 강한군대로 태어나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7-03 오후 3:16:55
    찬성0반대0
  • pakwj3697    수정

    국지적인 도발을 방지할수 잇는 대비책을 사전에 강구하여 제 2 의 서해교전과 같은 없어야할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7-02 오전 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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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교전은    수정

    김정일의 보복 명령이었다는 것은 신문에 까지 났습니다. 간첩들이 가득한 나라.... 어찌 되려나...</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7-01 오후 8:29:01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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