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요새와 진주성 교훈
천혜의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 남동부의 고대 산상이다. 서기 73년 로마군에 포위당한 채 2년간 항전하던 960명의 유대 저항군이 계속된 공격으로 성이 무너지자 ‘하느님 이외에는 무릎 꿇지 않는다’며 노예되기를 거부하고 전원 자결한 곳이다.
진주성은 1592년 10월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지휘 아래 3800명의 군사가 3만여 명의 왜적을 물리친 곳이다. 그러나 이듬해 이를 설욕하고자 공격하는 10만 명의 왜적에 대항해 성 안의 백성을 비롯한 7만여 명이 순절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도륙당한 뼈아픈 역사의 숨결이 흐른다.
이스라엘군 신임장교들은 마사다에서 임관식을 하면서 그들 조상이 보여 준 불굴의 정신을 새기고 ‘마사다의 맹세’로 용맹한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다. 일종의 국가에 대한 ‘충성맹세’인 셈이다.
이들은 준비해 간 병에 마사다의 흙을 담아 소중히 간직하면서 “마사다 오 로드파암!(마사다는 다시는 정복되지 않는다)”을 외치며 다시는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리고 그 외침이 1948년 독립한 이후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는 이스라엘의 생존을 담보하고 있다.
우리의 진주성, 한산도와 명량 앞바다, 그리고 행주산성에는 이스라엘 마사다 이상의 혼과 정신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을 겪는 와중에도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썼고 서애 유성룡은 이를 반성하는 징비록을 남겼다. 모두가 지금의 우리에게 그 당시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다.
병자호란에서 남한산성의 쓰라린 47일간의 기록도 산성일기와 병자록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과 교훈들은 두고두고 후세들에게 널리 일깨워지기를 긴 세월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고 그것을 통해 정신적 지주를 삼거나 깊이 새겨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임진왜란 40년 후 일어났던 병자호란에서는 임진왜란에서 얻고 간직했어야 할 것들을 찾을 수 없다. 진주성 함락 소식에 ‘나는 밤새 그대로 앉아 있었다’라고 난중일기에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 장군의 통한도, 조선 화포의 위력도 병자호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피비린내로 뒤덮인 산천, 백성들의 신음과 처절한 울음소리가 한 시대의 쓰라린 역사의 과거로 사라졌을 뿐이다.
모름지기 군인은 그러한 처절한 역사가 주는 일깨움을 늘 담아두어야 할 정서적 여백과 강박관념을 지녀야 할 것 같다. 징비록에서 서애 유성룡은 스스로는 날쌔고 용감하지만 싸움을 이끌지 못하는 당시 장수들에 대해 ‘자기가 기른 군사는 쓰지 못하고 써야 할 군사는 기르지도 않았으니’라며 피를 토하는 심경을 기술하고 있다.
치욕의 역사일수록 정신을 일깨우고 군인에게 본연의 모습에 자극과 동기를 주는 부분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을 읽어야 할 것은 읽어서 알아야 하고,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 새로 임관하는 장교들이 진주성에서 ‘진주성의 맹세’로 결의를 다지고 명량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지스함보다 당당했던 13척의 조선함대를 그려 보기를 김시민 장군과 이순신 장군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망하고 있지 않을까.(konas)
문대철/ 대령·육군본부 혁신관리과장
** 이 글의 출처는 국방일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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