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해 낸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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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9월 15일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지 57주년이 되는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불법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전력이 열세였던 아군은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함락 당하고 후퇴를 거듭하여 8월 초에는 금강 방어선마저 무너졌다. 아군은 적의 대공세 앞에서 120마일의 낙동강 전선을 거점으로 결사적인 방어작전을 펴야 했다.
1950년 9월 15일 결행된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이 작전계획을 수립하는데도 가용한 시간이 너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작전을 실시하는데 있어 극복해야 할 장애요인과 난관 또한 세계 상륙전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우선 인천과 부산이 450㎞ 이격되어 있어 유엔군의 병력이 분산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고, 일본 주둔 미 육군 7사단을 한국전에 동원할 경우 일본의 치안유지에 어려움이 예견되었다.
또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미 해병대의 병력을 상륙작전에 투입할 경우 당장 부산 방어선을 위태롭게 할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상륙작전용 함선의 부족 등으로 인한 작전상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인천의 지형과 기상에도 숱한 어려움이 내재해 있었다.
즉,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최고 시에는 10.8㎝나 되었고 간조 시에는 개펄이 6㎞이상 드러남으로써 아예 상륙작전이 불가능했다. 하루 2회의 만조 시에도 상륙용 주정의 접안이 가능한 수심 7.6m를 고려할 때 약 3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맥아더 장군이 이 작전을 군사적 예지와 탁월한 리더십에 바탕을 두고 구상하였고, 여기에다 금상첨화격으로 유엔군이 정확하게 상황판단을 하고 항공 및 해상 우세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상황 하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미 해군 및 해병대의 노련한 상륙작전 전문가들이 실전경험을 이때 되살려서 철두철미하게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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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작전에는 8개국 261척의 함선들과 상륙주력인 미 해병 제1사단을 포함한 7만 5천여 명의 병력이 참가하였다. 우리 해군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과 15척의 함정, 신현준 대령이 지휘하는, 귀신 잡는 우리 해병대 4개 대대가 참전하였다. 그리고 후속부대로서 미 육군 7사단과 우리 육군 제17연대가 참가하였다.
이 상륙작전은 만조시간에 맞춰 2단게로 나눠 실시됐다.
아침 만조시간에 인천항 입구에 위치한 월미도를 최우선 공격목표로 삼아 확보한 다음, 저녁 만조시간에 인천항을 공략하는 계획이었다. 9월 15일 오전 6시 33분, 드디어 새벽의 여명과 함께 공격명령이 내려졌다. 때맞춰 순양함과 구축함에서 시작된 함포사격의 엄호 아래 한·미 해병대가 월미도를 점령했다. 이어서 이날 오후 5시에 밀물이 절정에 달하자 인천 시가지와 가까운 레드비치와 남쪽의 블루비치를 향하여 본격적인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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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낙동강까지 뻗어있던 북한군의 허리를 완전히 끊어 전세를 일거에 바꿀 수 있었다. 9월 17일을 기해서 유엔군사령부가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결행하자 북한군은 큰 충격을 받고 오합지졸로 전락하여 지리멸렬되고 말았다. 맥아더 장군의 위대한 결단 덕분에 당시에 문자 그대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려있던 우리나라를 극적으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틀림없이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 초기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한국 참전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더 장군은 한국의 은인이다. 지금 인천 자유공원 정상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1957년 9월 15일, 인천시민들이 한푼 두푼 성금을 모아서 높이 5m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재작년 여름에 장군의 동상이 철거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우리 민족 련방제 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라는 단체가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운동을 주도했는데 이들은 "맥아더는 한국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 범죄자이며 한반도를 분단시켜 남한을 미국의 종속국가로 만든 장본인이다"라고 그 이유를 내세웠다.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는 지 참으로 우리의 귀를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국민들과 인천 시민들이 합심하여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반드시 지켜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핵을 보유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의 실체는 현재에도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과거 50여년 동안 우리나라 안보체제의 핵심 역할을 해 온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세대 간, 계층 간에 심각한 갈등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조그마한 동판에는 이런 글이 씌어져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 아들, 딸들에게 우리는 경의를 표한다.」비록 전후세대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3년간의 전쟁에서 미군은 위기의 우리나라를 구해주기 위해 무려 34,000여 명이나 전사했고 92,0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3,700여 명이 실종되었던 사실을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겠는가!
휴전 후에도 1개 사단 이상의 지상군 및 해·공군 전력을 갖춘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시킨 결과 오늘날 우리가 미국의 아보우산 하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꽃피울수 있었다. 제2의 한국전쟁을 억제해 준 미국을 생각할 때 고마움을 금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 전사에 길이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항상 되새기면서 맥아더 장군과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잠시도 잊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보았듯이, 세계 최강국 미국과의 연합작전태세를 강화한다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가장 훌륭한 방책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의 청소년들이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천상륙작전 5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다짐이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konas)
공정식(전 해병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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