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지탄광 강제노역이 북의 공공조직 근무인가?"
국군포로 양한섭씨 국가유공자 불인정 판결에 가족들 분통
6.25 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가 30년 가까이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한 양한섭씨(83세)가 자신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것에 대해 당사자들이 항소를 추진중이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패소사유인 북의 공공조직에 가입해 대한민국에 간접적 적대행위를 했다는 국방부 판단이 납득가지 않을 뿐만아니라, 이러한 판례가 인혁당사건 피해자 등의 판결과 형평이 맞지 않고 다른 국군포로들에 대해서도 심대한 불이익을 가져 올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6일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의 도움으로 <코나스>와 인터뷰를 한 양한섭씨의 동생 양성추씨는 내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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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추씨는 98년 자신의 형인 양한섭씨가 북에서 생존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래, 일명 '고난의 행군'기간 동안 중국의 친지를 통해 형을 몰래 보살피고 2004년에는 마침내 한국으로 귀국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
그는 "어째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아오지탄광에서 강제노동하고 장애인까지 된 사람이 북의 공공조직에 일했다는 사유로 유공자가 되지 못하는 것인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당사자인 양한섭씨는 6.25 전쟁 당시인 1952년 입대해 수도사단에서 복무하다 금화전투에서 북의 포로가 된 후 억류당해 1953년 북한 공민으로 편입된 후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아오지 탄광에서 노역에 종사해야 했다.
북한에서 그는 월남자 가족이나 유엔군 협조자 등과 함께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탄광 등지에서 일하며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을 받았으며, 도중 안전사고로 왼쪽 손가락과 오른쪽 발가락을 절단당해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상태이다.
뿐만아니라 참전 당시에도 소총 노리쇠 충격으로 오른손 중지가 잘리기도 했으며, 탈북 전까지 공식적으로 전사 판정을 받았고, 화랑무공훈장에 추서되어 있었다.
양한섭씨가 국가유공자 인정 신청을 한 것도 이 때문이며, 장애인의 몸인 만큼 말년에라도 보훈병원에서 치료받는 혜택을 누리는게 목적이었다.
이미 양한섭씨는 2004년 10월 북한을 탈출한 뒤 입국했을 때 국군포로 귀환자 후속조치에 따라 2005년 8월 만기전역 처리됐고 북한에서의 억류기간도 복무기간으로 계산하여 소정의 퇴직수당과 연금 등을 받아 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 판결에서 북의 공공조직에 가입해 간접적으로 대한민국에 적대적 행위를 했다면서 국가유공자 불인정 선고를 내린 것은 양한섭씨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처사였다.
증인으로 역시 같은 탄광에서 일하다가 탈북한 허재석씨 등 2명도 양한섭씨의 유공자 포상사유를 설명했고, 허재석씨는 이미 북에서 입은 부상에 의해 상이용사로 인정 받은 바가 있기에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이라는 것이다.
양한섭씨의 탈북을 도왔고 이번 인터뷰를 주선했던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이를 두고 최근의 인혁당 피해자 판결과 비교해서도 도저히 형평에 맞지 않을 뿐 더러, 이번 판례가 악용돼 국군 포로 및 납북자들의 처우에 불이익을 가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강제로 억류당해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한 것을 북의 공공조직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이러한 판례가 정착 될 시에는 사실상 '인질'이나 다름 없는 신분에서 자신의 의사와 반하여 어쩔수 없이 북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했던 모든 납북자, 국군포로가 졸지에 대한민국에 간접적인 적대행위를 한 것처럼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양한섭씨와 동생 양성추씨, 그리고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즉각 항소를 준비하며 이런 판결이 시정되기를 원하고 있다.(konas)
[관련기사 보기]北 탄광 끌려간 국군포로 국가유공자 불인정김영림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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