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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共 빨치산의 피로서 얻어낸 서해 5도와 NLL

Written by. 이창선   입력 : 2007-10-06 오후 7: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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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NLL 유감

 잊혀 진 전쟁에서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지역 빨치산에 대한 원고지 1,500매 정도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쓰면서 나는 장거리를 여행하며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야했다. 이미 6년이 소요 된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았고 주요한 답변은 회피되었으며 죽는 순간까지 허위를 놓지 않는 인간의 허약함을 보아야했다. 기간 중 서해 5도에 대한 도상정찰을 해 오다가 금년 봄 비자문제가 해결되어 겨우 급하게 현지답사를 할 수 있었다.

 백령도는 평화로웠다. 완성된 원고들은 한국학에서 Micro History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손에 들려져 있지만 출간은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일 년간 원고를 검토하던 백모 교수는 너무 부담이 간다고 포기했고 나는 절망감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부담이 무었인지 지금 밝힐 수는 없다. 대청도와 연평도 사이의 바다가 낙조에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서해의 섬들은 어떻게 지켜진 영토인가? 생계형 좌파들과 집권 386들의 국체를 훼손하는 철부지 같은 행동을 좌시해야하는가? 그들이 NLL의 역사를 알기나 하는가? NLL을 김정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바치는 공물쯤으로 여기는가?       

 1950년 12월 서해의 도서로 밀려난 북한 피난민 중 빨치산 항거로 총을 든 사람은 7백 명 정도였다. 이들은 51년 2월 1천여 명, 4월에는 4천여 명 그리고 휴전 직전에는 2만 2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유엔군의 통제가 시작된 51년 3월부터 북한 빨치산 부대는 한국전쟁 기간 총 69,094명의 적을 사살한 전과를 올렸다. 미군측은 북한 빨치산 작전 연구보고에서 이 수치를 기술하면서 한국전쟁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군이 개입하기 전 북한지역에서 가장 격렬한 순수 반공 빨치산 투쟁이 전개된 1950년 9월부터 12월 사이의 전과는 수치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엔군 통계에 기록된 북한 출신 빨치산 전사자는 7천여 명이다. 이들은 빈약한 무기, 굶주림, 남한 당국의 무책임 속에서 오직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는다는 신념 하나로 싸웠다. 미군의 개입으로 나중에 8240 부대로 개편된 이 부대들은 압록강 하구의 대화도, 가도, 탄도 청전강 하구의 운무도 그리고 납섬, 황해도 구월산을 바라보는 웅도, 초도 등 38선 이북의 모든 섬을 장악하고 자유세계의 깃발을 세우고 폭정의 전초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이 비밀리에 형성한 제 2 전선으로 북한은 12만 5천여 명의 인민군과 중공군 병력을 해안선에 배치해야 했다.

 1953년 말까지 북한의 해상은 이들로 인해 봉쇄된 상태였다. 유엔군이 38 이북의 섬에서 철수 하는 조건으로 휴전 회담을 제의하자 북한은 감지덕지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100 보 양보한 휴전조건으로 북한 빨치산의 피의 대가를 헐값으로 매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보상으로 빨치산들은 겨우 남한 영토에 상륙할 수 있었다. 인천 부두에 내린 그들이 받은 대우는 알랑미(안남미) 쌀 한 포대뿐이었다. 일부는 병역 기피자로 오인되어 다시 국방군에 끌려 가야했다. 38선 이남에 있던 백령도를 비롯한 5개 도서가 자유 대한민국의 영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들의 공이다. 이것을 지금 좌파정부는 날 채로 양보하겠다고 하며 파쇼적인 단체 매스게임을 (필자는 이것에 “아리랑”이라는 고운 이름을 붙이기도 싫다) 보며 희희덕 거릴 거란다. 

 현재 약 1천 5백여 명의 북한 빨치산 출신들이 한국과 미국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생존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80이 넘은 고령으로 해가 갈수록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좌파 정부가 아무리 마지막 발버둥을 한다고 하더라도 김정일 독재 체제는 결국 북한 내 반공 빨치산의 봉기로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그 혼혈한 정신, 준열한 신념의 강은 면면히 북한의 지하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konas)

 글쓴이: 이창선  

▲ 이창선씨의 저서 '한국인 탈레반'. 표지 인물은 아프간 잠입당시의 필자의 모습이다.

 필자 이창선씨는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육군고등군사반, 한국 육군대학, 파키스탄 지휘참모대학,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주립대학 등을 거쳤다. 정보장교로 근무하면서 해외정보업무, 기술정보분석, 한미 군사정보교류 업무를 담당해 왔으며, 소령으로 예편 후 1999년 미국으로 이민해 현재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저서로는 90년대 후반 모종의 임무를 받고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 잠입, 아프간 내 중국계 부족인 신드(sind)인으로 분장하고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한국인 탈레반'(도서출판 맑은 소리)이 있다.

 이외에도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미국 유수의 일간지에 이슬람과 중동문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고 국방저널에도 인천상륙작전 비사에 대한 글을 기고한 바있다.

 현재는 1945년-1954년 사이의 북한 내 반공 빨치산 투쟁의 역사적 사실을 종합한 다큐멘타리를 집필 중이며, 동시에 일인칭으로 기술한 개인적 관점의 논픽션 소설 '물속의 섬'(가제)도 집필 중에 있다.

 (김영림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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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령도    수정

    NLL을 지키는 해군장병들을 생각하라. 그들은 이 시각에도 우리의 영해를 지키려고 파도와 싸우고 있다. 서해바다에는 호국의 영혼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국군보다 적군을 더 생각하는 몽매한 위정자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10-07 오후 7:14:54
    찬성1반대0
  • 이백림(rhee4972)   

    이창선씨 걔들이 그 진실을 알아도 완전이 친김 좌경화된 놈들인데.... 국가관도 없는 놈들임니다. 그러나 이창선씨 실망 마시요!!! 12월19일 대선에서 친북세력 몰아냅시다. 반공 빨지산들의 애국충정은 반듯이 국가와 애국국민이 보상할것임니다. 서해오도를 목씀으로 사수한 반공빨지산용사 들이요!! 그 애국충성 길이,길이 빛나라!!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

    2007-10-07 오후 6:59:08
    찬성0반대0
  • 양한별(super007)   

    구월산 유격대가 피로서 지켜낸 백령도를 사수하자</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10-06 오후 9:49:07
    찬성1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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