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수기]"발길질에 배를 차인 임신한 여성들은 하혈하며..."
피눈물을 머금고 1998년 10월 부모·형제를 뒤로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만 가면 살길이 열리겠지 생각했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국경을 넘은지 1주일쯤 지나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吉林(지린)성 허룽(和龍)의 버스터미널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공안은 나를 허룽시 공안국에 유치시켰다가 다시 북-중 국경지역인 난핑(南平)에 위치한 중국 변방부대로 호송했다가 그 다음날 함북 무산군 칠성세관을 통해 다른 탈북자 15명과 함께 북송시켜 버렸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주변 대부분 탈북자들도 사시나무 떨 듯 공포에 질려있었다. 무산군 보위부 유치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에게 "민족반역자 새끼", "죽어야할 새끼"로 불려 졌고 잠도 안재우고 각목과 각종 고문 기구를 동원한 매질 신문이 시작됐다.
이틀간의 조사를 마치고 15일 후에 함북 도보위부(청진)에서의 한 달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지옥중의 지옥 경험이었다. 여기서 7일간의 조사는 차라리 목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감방 계호원(간수)들이 구둣발과 각목으로 뭇매를 안겼다. 구둣발과 각목으로 얼마나 맞았는지 처음엔 살이 찢겨나가는 듯이 아프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각목에 맞는 부위에 퉁퉁 소리만 날뿐 감각조차 없어졌다.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졌고 살점이 뜯겨 옷이 피범벅으로 변했다. 초죽음 상태에서 신체검사라는 것을 하는데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좋은 옷을 입었다며 또 매질을 했다. 팬티까지 다 벗긴 후 감옥 구석에 무릎을 꿇려 앉히더니 또 구둣발로 나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조사관에게 제때에 대답을 못한다고 매질하고, 정신을 잃으면 물통에 머리를 처넣고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곤 했다. 너무 맞아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맞아도 제대로 불지 않는다고 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뒤로 비틀어 묶어놓고 조사실 천장에 거꾸로 매단 뒤 또 고문을 시작했다. 피가 머리로 쏠려 괴로워 버둥거리면 묶인 팔다리가 조여와 더 고통스러웠다. 짐승처럼 매달려 있자니 매 맞는 고통보다 짐승이 된 것 같은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렇게 7일이 지나가니 인간이 아닌 진짜 짐승 같은 폐인이 되고 말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만신창이 몸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까지 찾아오니, 젊고 건장했던 내 몸은 말라 비틀어지고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도보위부에서 30일간 조사를 마치고 나는 함북 농포집결소에 이송돼 28일간을 구류됐다. 농포집결소에는 남자 60명, 여자 70명의 탈북자들이 수감돼 강제노동을 하는 곳이었다.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먹는 것이라고 콩찌꺼기로 만든 주먹밥이 고작이었다. 보위부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지만 매일 두세명의 탈북동포들이 시체가 돼 가마니에 둘둘 말려나가 땅속에 묻혔다. 강제노역장 역시 사람 죽이는 도살장일 뿐이었다. 나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여서 집결소 구석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집결소 요원들이 사람들을 모두 앞마당으로 불러 세웠다. 그때가 아마 그해 12월 초순정도 됐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 대의 지프차가 오더니 차에서 임신한 5명의 여성들이 내렸다. 내 처지도 짐승처럼 됐지만 임신부라 그랬는지 그들이 더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농포집결소 소장이란 자의 변태적 야만행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해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조국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중국 씨종자까지 배왔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어떤 심판을 받는지 똑바로 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남북한 모두 소꿉 시절 즐겨하던 놀이인 말뚝박기(북한에서는 말타기라고 함)를 여성들에게 시키고 있었다. 임신한 여자들을 허리 굽혀 늘어서게 하고 거기에 남자들이 차례로 올라타 마치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두 발로 여성의 배를 힘껏 걷어차게 하는 것이었다. 남자들의 발길에 배를 차인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하혈하며 쓰러졌고 어떤 여성은 기절한 채로 질질 끌러갔다.
정말 북조선이 갈 데까지 가는구나? 죽여야 할 적이라도 최소한 기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이 있지 않은가? 김정일 정권은 이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 타락했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말살했기 때문에 이제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konas)
** 이 글은 2004. 11. 13 조선일보 기사로 실린 탈북자 박광일씨 증언입니다.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