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북핵문제
금년 10월은 유난히 대한민국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0월 1일 59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군(軍)의 유연한 “전략적 사고”를 당부했다. 10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및 신고 등 한반도 비핵화 2단계 조치와 관련한 제 6차 북핵 6자회담 2단계 회의 합의문이 공개됐다. 한편, 10월 4일 평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 서명한 8개 항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발표됐다. 이 모두가 한국안보의 근간을 흔들기에 족한 것들이다.
지금 동북아의 안보·군사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동북아 강국들의 적극적인 군사혁신 추진과 이에 따라 심화되는 군비경쟁 가열화, 점차 현저해지는 강대국 이해관계 중심의 국제관계와 갈등·마찰요인의 상존, 북한의 핵실험 및 핵무장 가능성 등은 모두 한국의 군사적 입지를 점점 어렵게 할 소지가 많은 현상들이다.
노 대통령은 이와 같은 동북아정세 변화를 의식하면서 군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했을 수 있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요구는 다분히 정부의 대북 정치적 화해·협력 추진에 걸맞게 군사적으로도 유연한 입장에서 대북군사태세를 누그러트릴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친다. 즉, 대북 민족공조로 주변정세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이 요구는 북한의 대남군사태세가 여전히 적대적이고 더욱이 핵으로 무장한 군사력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간과하고 있다. 즉, 북한의 핵개발 불용(不容)을 말로는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대남공격용이 아니라는 등 북핵위협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대북인식과 정책성향이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 후 발표된 10·4 공동선언문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대한민국 군통수권자로서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핵개발 포기와 기존 핵무기, 핵물질 등의 완전 폐기를 강력하게 촉구한 흔적이 없다. 상대방이 듣든 안 듣든 정상회담 내용 기록 목적에서라도 단호하게 촉구했어야 옳다.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6자회담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간주하는 것 같다. 10·4 ‘노·김 공동선언문’ 제4항 말미에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단 한 줄의 말이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안보의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북핵문제가 이렇게 가볍게 취급된 것이다.
한편, 지난 10월 3일 발표된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 결과 발표문 내용 또한 북핵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 언급 없이 그대로 덮어두고 넘어 갔다. 북한이 올 연말까지 핵시설 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를 완료하기로 약속한 것은 진일보(進一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행될지, 또는 그 이행이 북한의 핵포기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등에 대해 아무런 보장도 없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불능화 방법,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 및 핵무기 등의 신고 여부, 신고의 정확성에 대한 검증 등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6자회담 대표들은 그간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 쌓인 상호신뢰관계에 비추어 모든 문제들은 앞으로 협의를 통해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는 모습들이다.
북한은 앞으로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양손에 쥐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을 피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북과 10·4 ‘노·김 선언’은 북한 김정일 체제와 그의 핵관련 입지를 강화해 주었다. 또 북핵폐기가 보장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 사업과 성급한 서해(西海) 군사환경 변경조치 등을 추진함으로써 남북 민족공조를 통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변화 추이에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결과가 됐다. 대한민국 안위와 정통성의 수호가 지금부터의 과제다.(konas)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미래한국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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