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를 국가기념일로 제정한다고?
노무현 정부가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채택된 공동선언문의 발표일인 6월 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14일 ‘6·15공동선언 기념일’이라고 정한 공고 제2007-53호를 통해 관련 의견 수렴 운운하며 12월 3일 공청회를 연다고 밝힌 게 바로 그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에 또 하나의 대못질을 하려는 것으로 작금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 차원의 6.15 기념일 채택은 부적절하다. 기념일이란 본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국가 기념일은 사상, 이념,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학연, 지연 등을 떠나 국민의 절대다수가 공감하는 사건 내지 사안에 대하여 채택하는 것이 맞다. 또 이미 완료된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기념할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존재할 때만이 제정할 수 있다. 현충일이나 국군의 날 등이 그것이다. 또 특정 분야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지지와 격려를 해 줄 필요에 따른 경우도 있다. 과학의 날, 경찰의 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6.15 공동선언에 대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그 입장이 극명하게 갈려 있다.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화해․협력의 토대를 마련한 ‘민족통일선언’이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북한의 통일전략이 가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민족반역선언’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또 6.15 공동선언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취사선택의 관점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일부 살릴 것은 살려 남북관계 발전에 이용하자는 절충적, 현실적 입장도 있다. 말하자면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6.15 공동선언 채택과 그 이행은 현재진행중인 사건이다. 아직 이 선언의 공(功)과 과(過)를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6.15 공동선언 기념일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하겠다.
법리적으로나 형평성의 관점에서 볼 때도 말이 안 된다. 지금까지 60여년간 대한민국 정부는 특정 합의문을 생산한 날을 기념한 적이 없다. 현재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20045호) 별표에서는 모두 40개의 기념일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 중 어느 특정의 조약 채택일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채택일을 기념일로 제정하기는 커녕, 지난 2003년 10월 1일 한미동맹 50주년이 되는 날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기념행사도 거행하지 않았다.
그런 노무현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일(2월 19일)은 기념하지 않으면서, 왜 유독 6.15 공동선언 채택일만 기념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 6.15 기념일 채택의 부당성은 6.15 공동선언 자체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그간 북한은 6.15 공동선언 2항이 ‘련방련합제통일방안’ 곧 남측 연합제와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의 절충적 통일을 담고 있으며(2002년 평양출판사 간 『김정일장군의 조국통일론 연구』 참조), 따라서 “6.15 북남공동선언은 북과 남이 연방제통일을 지향해 나갈 것을 밝힌 문서”라고 주장해 왔다(2002년 2월 5일자 ‘민족자주통일은 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이란 평양방송 논설 등 참조). 이렇게 본다면, 연방제 통일의 경로, 곧 낮은 단계 연방제가 담겨 있다는 북한의 주장이 구현돼 있는 6.15 공동선언의 채택일을 국가 차원의 기념일로 제정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6.15 공동선언은 당면한 최대의 안보위협 요소인 북한 핵실험을 막지 못하였다. 지난 10월 4일의 평양 남북정상선언은 북핵을 사실상 용인(?) 혹은 우회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또한, 6.15 공동선언은 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들에게는 자유를 가져다 주었지만, 국군포로․납북자들에겐 여전히 강제억류와 억압을 방치하는 문서로 남아 았다.
또한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통해 ‘우리민족끼리’ (반미) 민족공조노선, 냉전수구-반통일세력 척결노선을 선전 선동하는 외에도,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앞세운 친북반미의 남북공동행사를 거행하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그런데 뭘 기념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6.15 기념일 제정은 북한의 정치문건인 2007년도 신년공동사설에서 주장해 온 부당한 요구에 우리가 줏대 없이 굴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선언에 불과한 남북 정상선언(1항)과 그 후속조치인 남북총리회담 합의문(제1조 1항)에 근거해 6.15 기념일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하겠다. 국가 차원의 6.15 기념일 채택이 부적절하다면, 정부는 하루빨리 남북간의 잘못된 약속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민간단체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6.15 선언 채택일을 기념하도록 안내, 지도하는 것이 타당하다.
차제에 정부는 사리에 맞지 않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북한인권의 날’ 제정을 적극 고려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konas)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출처: 프리존 http://www.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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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1 오후 6:45: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