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동안 남한과 북한이 상호 합의한 합의문은 수없이 많다. 가까이는 이번 달 서울에서 있었던 남북총리회담과 지난달에 있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평양)이다. 여기서 남북은 장문의 합의사항을 내 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 합의가 지켜져야 하는가에 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북한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챙기고 나면 합의서를 휴지조각으로 취급한다. 이러다가도 자기들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과거의 합의문을 꺼내든다. 일종의 교란전술이다. 이에 대한 실례를 살펴보자.
첫째, 북한은 한국의 국가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
과거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최근들어 한국에 대해 도를 넘는 내정간섭을 서슴치 않고 있다. 지난11월 18일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사회과학원 교수와의 대담을 방영하면서 “이회창 역도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6.15공동선언은 폐기될 것이고 전쟁의 참화만이 불 씌워질 것이다”라고 맹비난했다. 북한은 그 동안 지지율이 가장 높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비난해오다가, 이회창 후보가 등장하자 또 ‘전쟁설’을 들먹이고 있다.
이는 2007남북정상선언(2007.10.4)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제2항에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서명하고 유엔의 결의까지 받은 합의문을 한 달여 만에 휴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전쟁’을 운운하는 부당한 내정간섭을 받았을 경우 국가존엄성을 해친다는 차원에서 이를 중대하게 다루어야 한다. 세계사에는 이런 극언을 선전포고로 간주해서 전쟁까지 벌인 사례도 있다. 그런데 우리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꾸 한마디 않고 항상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정상국가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더구나 북한의 김정일은 제1차 정상회담(2000.6.15)에서 서울답방을 약속하고 이를 합의문에 명문화해놓고도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2차 정상회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정중히 초청을 했으나 이것조차 거절했다고 한다.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멸시요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김정일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고위관리는 그를 통 큰 지도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그와 약속한 것을 하루라도 빨리 이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방안을 악용하고 있다.
제2차 남북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라 2004년 6월 15일에 남북 해군함정 간 통신망(상선 공통망)을 개통했다. 그러나 7월 14일에 북한 경비정(등산곶 684함)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남하하면서 이 통신망을 기만통신으로 사용하고 또다른 기습도발을 시도했다. 이 함정은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에서 우리 고속정 357정을 기습공격하여 격침한 바로 그 함정이다.
국방부가 제출한 국정감사자료(2007.10)에 따르면 2004년 6월부터 현재까지 우리 측 호출에 북측이 응답해 교신한 사례는 전체 2,378회 중 850회로 3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합의한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로 경의선·동해선 철로와 도로연결이 2004년에 완료되었다. DMZ를 관통한다는 군사적 신뢰구축 차원에서 순수 우리 돈(수천 억)으로 건설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철로가 운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연결만 되면 한국의 열차가 바로 북한을 통과하여 중국·몽골·러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간다고 홍보했다. 아마 북한과 그렇게 합의를 했기 때문에 공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북한군부가 군사보장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운행을 거부하고 있다. 제2차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다음 달(12.11)부터 하루 한차례 개성공단(한국 문산역-북한 봉동역)까지만 화물열차를 운행한다는 계획이다. 개성공단만을 위한 철로라면 애초부터 건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도로가 오히려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최초의도는 한국의 지원으로 남침통로를 현대화한다는 구상이었다. 또 경의선·동해선 도로도 북한내륙으로의 수송에 기여하지 못하고 겨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사용할 뿐이다. 북한은 2차 정상회담에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와 개성-신의주간 철로를 보수해 달라고 요구해와 우리가 이를 수용해 합의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내년 북경올림픽에 한국의 응원단을 한차례 열차로 북한을 통과하여 북경에 수송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을 통과한다는 상징성 외에는 경제적으로 전혀 이득이 없다. 북한이 이런 약속마저도 지킬 것인지는 그때 가봐야 한다. 북한은 싫으면 항상 군부가 반대한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북한은 또다시 한국의 자본으로 전시물자 수송로를 현대화하자는 구상인 것이다.
셋째,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했다.
남북은 1991년 12월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1992년 2월에 발효되었다. 남북관계의 장전(章典)으로 불러도 될 만큼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 4개장 25개조에 제1장(남북화해), 제2장(남북불가침), 제3장(남북교류협력), 제4장(수정 및 발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대로만 하였으면 남북은 이미 화해협력 단계를 넘어 아마 평화적으로 통일이라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북한은 이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북한은 서해에서 무력도발을 두 차례 했다. 1999년의 연평해전과 2002년의 서해교전이다. 기본합의서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제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북한은 서해NLL을 월선하여 우리의 관할해역을 철저히 유린했다. 기본합의서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어졌다.
그리고 기본합의서와 같이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술핵을 즉각 철수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의 평화적 핵 이용(재처리 등)도 모두 포기하는 선언을 별도로 했다. 공동선언에 따르면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배치)·사용을 하지 않으며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시기에 북한은 영변원자로에서 핵무기 1~2개 제조분량의 플루토늄을 재처리했다. 결국 1993년에 1차 북한 핵위기가 발생했다. 이때부터 이 기본합의서는 효력이 무효화된 것이다. 2002년에는 북한의 제2차 핵위기(농축 우라늄)가 발생했다. 북한은 2005년에 핵무기 보유를 공식으로 선언하고 2006년에는 지하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이 합의서와 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이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고 지금까지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표적인 것만 살펴보아도 북한과의 약속이나 합의는 실천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애초부터 독자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돈·식량·비료 등 경제적 지원획득)은 이행한다. 그러나 남북이 공동으로 이익이 되는 것과 북한이 조금 손해가 되는 것은 아예 이행을 하지 않는다.
북한이 현재까지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주는 식량·비료·생필품의 무상원조, 금강산관광, 개성공단과 남북 이산가족상봉 수준이다. 여기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북한체제에 대한 위협 없이 들어오는 황금알 현금 돈줄이다. 개성공단은 아직도 80%의 업체가 적자로 허덕여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제2차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 대통령에게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는 목적은 이미 달성이 불가능하다.
이산가족 상봉도 과거의 서울·평양이 아니고 항상 금강산에서만 한다. 이것도 북한에게 현금 돈줄이 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남북한 실무회의는 대부분 북한지역에서 열린다. 과거 남북에서 교호(交互)로 열리던 규칙이 이미 무너졌다. 남북회담이 북측지역에서 열린다는 것은 우리의 회담전략을 북한이 모두 파악(도청)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 국방장관회담(11.27~29)장인 '송전각'도 일반호텔이 아니고 인민무력부가 관리하는 특수시설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과 남북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에게 너무 관대해졌다. 북한의 계속되는 약속 불이행도 눈감아 준다. 심지어 북한의 핵무기 보유도 자위권 차원에서 일리가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듣기 좋게 형님이 아우에게 베푸는 인정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저자세와 굴종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보니 이제는 북한이 한국을 아예 봉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과의 약속은 애초부터 지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이후에는 핵무기로 한국의 생존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위협 때문에 지난 11월 21일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 우리정부는 기권하는 일까지 벌어져 국제사회에서 ‘왕따’ 신세가 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이제 북한과 한국의 관계가 점차 주종(?)관계(主從關係)로 변화하고 있다고 걱정할 정도이다. 평양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것들이 보도를 통해 노정되어 국민들의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이런데도 이번 남북총리회담에서는 북한의 요구대로 많은 분야에서 대북지원을 약속했고, 무엇에 홀린 듯이 서둘러 졸속으로 후속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북한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는 남북회담이 국방장관 회담, 금강산 이산가족 회담 등 5개라고 한다.
이것도 모자라서 정부는 11월 22일 국회에 `제1차 남북관계 발전 기본계획‘을 보고했다. 향후 5년 간(2008∼2012년) 남북관계를 끌고 가기 위한 정부의 원칙과 목표, 사업방향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정부의 임기는 2008년 2월 25일까지다. 국민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는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대북사업과 회담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차기정부는 그동안 남북 합의사항을 일괄하여 재정리해야 할 것이다. 무효화·폐기할 것은 과감히 폐기하고 새 출발해야 한다. 2007남북정상선언에 대한 이행도 북한의 과거행태를 고려해서 국가이익에 부합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차기정부는 또 과거 정부처럼 북한과의 접촉에 목말라 하면서 졸속의 회담과 합의를 양산해서는 안 된다. 임기 중에 남북회담을 한번도 안 해도 좋다는 느긋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종신제(終身制)로, 우리 대통령 5년 임기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konas)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 예비역 해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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